처월드-모세와 십보라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이선이 칼럼 36

▲이선이 목사(술람미상담소 연구원).
▲이선이 목사(술람미상담소 연구원).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듯이, 처가살이는 못난 남자나 하는 것이라는 낯부끄러운 의미였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 후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풍습에 삼국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처가살이는 남부끄러운 일이 아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처가 덕에 가난한 수재가 입신양명하는 일도 많았다.

이스라엘 민족 구원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한 모세는 처가살이를 하였다. 모세는 바로의 딸에 의해 양육되었으나, 동족을 구타하는 애굽인을 의분에 못 이겨 살해한 후 왕궁으로부터 피신하였다. 미디안 광야의 한 우물가에서 모세가 쉬고 있었다. 르우엘의 딸들이 양을 치는데, 어떤 목자들이 그들을 쫓아내려는 것을 모세가 도와주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믿음직한 사위를 원했던 르우엘은 딸을 모세에게 주었다(출 2:21).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일곱 딸 중 한 명인 십보라와 결혼하였다. 그리하여 광야의 방랑자가 한 여인을 만나 40년 동안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다. 모세가 첫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였는데,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모세의 미디안 광야에서의 삶이 무척 고독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엘리에셀’이었는데,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는 뜻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모세가 애굽으로 바로 앞에 서기 전,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려는 일이 일어났다. 이 때 십보라는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다가 그의 발에 갖다 대어 위기를 모면하였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면 누구나 받는 할례를 아들에게 시키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녀는 즉석에서 아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 남편 모세를 살리는 결단과 용기를 보였다(출 4:25).

출애굽 사건 이후 장인 이드로는 딸과 손자들을 데리고 모세를 만나러 왔다(출 18:2). 그 때 르우엘은 재판받는 백성이 너무 많아 힘들어하는 모세를 보았다. 그는 모세에게 천부장·백부장·오십부장의 지도체제를 건의하였다. 모세는 장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 체제를 조직화하였다. 장인은 그 후 자기 땅으로 돌아갔다.

모세는 처월드가 삶의 피신처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민족 지도자로서의 경영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처월드는 시댁을 지칭하는 ‘시월드’처럼, 처가댁 식구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현대 여자들의 사회 활동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처월드’와 관련된 갈등이 높아지게 되었다. 처월드로부터 자녀 양육이나 살림살이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남편의 사고방식이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으면 결혼 생활에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점차 중국의 부계사회 풍습을 따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대 남성은 처월드에 대한 사고의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조사에 의하면, 자존감이 낮은 남자일수록 처월드와 가까워지기를 꺼린다고 한다.

남편이 처가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시댁에게만 잘하라고 하는 것은, 아내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이다. 아내가 오랜만에 친정에 왔는데 남편이 친정 식구들과 아무 말도 안 하고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하면, 아내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명절 때마다 시댁은 빠짐없이 가면서 처가댁은 소홀히 하면, 이것은 부부싸움의 불씨가 된다.

아내가 친정에만 잘하고 시댁을 무시하는 것 또한 남편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게 된다. 처가살이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함부로 하면, 오히려 처가에 대한 심리적 위축으로 부부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게 된다.

십보라의 아버지 이드로는 결국 딸과 손자들을 맡기고 자기 땅으로 떠났다. 부부는 항상 남편과 아내의 일차적 관계의 중심을 유지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시댁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처가 식구들과의 적절한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 남편들이여, 먼저 처가 말뚝에 절을 해 보라. 아내가 어떻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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