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디나와 세겜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이선이 칼럼 37

▲이선이 목사(술람미상담소 연구원).
▲이선이 목사(술람미상담소 연구원).

심리학에서 트라우마(trauma)는 ‘정신적 외상’,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의미한다. 강간(强姦)은 성폭력의 일종으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억지로 성교하는 것을 말한다. 강간은 피해자에게 중대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강간죄는 전 세계적으로 성범죄 가운데 가장 무거운 중죄로서, 국가 권력에 의한 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성폭력은 소수 민족이나 노예, 하층민, 식민지배 하의 원주민, 난민, 빈곤층 같은 사회적 약자나 형무소 등의 피수용자, 그리고 전시에 피정복 국가의 사람들을 상대로 자주 자행돼 왔다. 그리고 내란이나 전시 상황에서는 대규모 집단 강간이 자주 발생했다.

성경에 강간 사건이 나온다.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 족속의 하몰의 아들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였다.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게 되어 아버지에게 이 소녀를 아내로 얻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세겜의 아버지는 야곱의 가족들에게 서로 통혼하고 매매하며 지내자는 제안을 하고, 큰 혼수와 예물을 요구하는 대로 다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디나의 오빠들은 누이를 욕보인 것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야곱의 아들들이 히위 족속을 죽일 생각으로 할례를 받으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히위 족속 사람들이 할례를 받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을 때, 시므온과 레위는 칼을 들어 그 족속을 몰살했다. 칼로 하물과 세겜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왔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 족속을 다 노략하였다(창 34:15-31).

야곱은 이 두 아들들을 책망했다. 하나님의 법인 할례를 살인의 수단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일로 야곱의 축복에서 레위와 시므온은 제외되었다. 이 일은 나중에 후손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쳐, 가나안 땅에서의 지파 분배에서도 그 죄값을 치렀다.

디나의 사건은 개인에게 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이었다. 트라우마를 심하게 받은 사람은 고통스러운 기억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에서 긍정적인 감정이 있었던 때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더욱 더 한쪽 방향으로만 편향되어 부정적인 믿음과 감정에만 익숙해진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트라우마의 기억이 점점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트라우마의 부정적인 영향에 더욱 더 압도당하게 된다.

성폭행을 당한 사람은 트라우마로 인하여 삶의 무기력증에 빠진다. 이외에도 죄책감, 죄의식, 우울증, 불면, 불안증, 수치심 등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를 일으켰던 사건의 원인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디나는 세겜 성읍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던 것 뿐이었다.

디나의 오빠들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고 폭력과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들이 디나를 얼마나 다독이며 아픔에 공감했는지는 미지수이다. 디나와 같은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게는 가족 간의 소통과 진실한 사랑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의 도움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한다.

결혼 전에 성폭행을 당하고 자란 남자와 여자의 경우, 결혼 후 정상적인 관계를 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기 몸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리고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느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용서는 최고의 치료제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조금씩 견뎌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웃과 사회는 디나 같은 사람의 트라우마가 치유되도록 사랑과 친밀감을 보여주는 배려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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