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건 칼럼] 일본선교를 위한 기초적 준비

강혜진 기자  eileen@chtoday.co.kr   |  

한국인과 일본인의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현승건 선교사(나가사키순교기념교회 담임).
▲현승건 선교사(나가사키순교기념교회 담임).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고 하는데, ‘정’이라는 단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폭이 더 넓고, 우정이라고 하기에는 보다 더 깊은 의미다. 오히려 사랑과 우정과 친절과 자비를 모두 포함하는, 한국인만의 미묘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은 그들의 ‘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인의 심성은 혈연과 지연과 학연이라는 집단적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속한 ‘연’의 존재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이의 존속을 위해 ‘정’을 구사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동일한 ‘연’에 소속된 사람들 간에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유대감이 형성되어, 때로는 소유의 구별과 사리의 분별을 넘어서기도 한다.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의 이면에 숨어있는 과격한 성품이 다른 집단에 대한 배타적 정서와 결합하여, 집단 간에 극렬한 투쟁의 양상을 띠기도 한다.

한국인의 집단적 정서가 근세기 한국 개신교에 있어서 눈부신 성장의 바탕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일한 ‘연’에 소속된 집단 내부의 이익을 따라 진리에서 벗어나 표류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의 성장 그늘에서 단단하게 굳어 온 개교회주의가, 21세기를 맞이한 한국교회에 암적 요소로 등장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국 기독교의 배경에서 성장한 선교사 입장에서는 “과연 일본의 기독교는 어떻게 성장해 갈 것이며, 일본선교의 틈새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함께, 이제 새롭게 태동한 일본 기독교의 미래를 위해 보다 확실한 복음 전파의 청사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사람의 특징 중 하나로 ‘키쿠바리(氣配り)’ 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키쿠바리’라는 뜻을 따라, 일본인을 단순히 ‘배려’ 또는 ‘친절’의 코드로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하다. 이 ‘키쿠바리’는 일본인의 독특한 정서를 표현하는 것으로, 한국인의 은근하고 끈끈한 ‘정’과는 전혀 다른, 좀 더 외면적이고 사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의 남을 배려하는 친절한 마음은 ‘와(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인은 외적으로는 집단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나, 내적으로는 철저한 개인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 정서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하고, 전체 집단의 공동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와’를 구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집단 전체를 위한 것이지만, 결국 각 개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 개인의 평화와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집단 전체의 ‘와’를 창출하고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그 강력한 권력은 집단 전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개인에게 엄격한 의무의 완수를 요구하였고, 이것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더 깊은 자기 방어의 벽 속으로 숨어들게 하였다.

일본인의 이러한 자기 방어적 정서가 오늘날 일본선교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과거 400여년간 계속되어온 기독교 박해의 역사는 일본인들에게 철저한 반기독교 정서를 학습하게 하였고, 오랜 역사를 통해 일본 땅에 뿌리를 내린 불교와 신도의 영향을 받아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카미사마(神)’와 ‘타마시이(魂)’의 의식은, 기독교의 ‘유일하신 하나님’과 ‘영’의 개념을 혼동하게 하고 있다.

‘와’를 추구하는 엄격한 사회 분위기와 ‘키쿠바리’에 의한 자기방어의 벽 속에 깊이 감추인 ‘혼네(本音)’를 끌어내지 않고서는, 일본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일본선교의 틈새가 존재한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물량주의적이고 집회중심적인 선교 뿐만이 아니라, 각 개인의 깊은 내면으로 찾아 들어갈 수 있는 개인지향적인 선교도 병행되어야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즉 방문 등을 통한 대면접촉이나 방송이나 문서 또는 인터넷을 통한 개인적인 접근 방법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수천 명을 상대로 설교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은 언제나 소수의 제자들을 따로 불러 복음의 비밀을 풀어주셨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개인 사역의 모범을 통해 보여주신 것과 같이, 일본선교는 소규모 제자교육을 통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특성을 살리되 일본인의 특성과 충돌하지 않도록 주의 깊은 자제가 필요하다.

먼저 첫번째로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일본인은 철저한 개인주의자이므로 함부로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지 않도록 하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여 신뢰를 쌓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두번째로 신의성실과 약속을 엄수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구두약속도 법적 효력을 가질 정도로 개인 간의 약속에 대해 철저히 준수하는 분위기이므로, 우선은 함부로 약속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부득이 약속한 경우에는 사전에 재확인이 없어도 이미 약속한 내용대로 철저히 이행하는 것이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데 매우 중요하다.

세번째로 공중도덕과 사회적 책임 및 의무를 완수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교통질서와 환경 및 공해, 그리고 쓰레기 등에 대해 철저한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고 있으므로, 초인적인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네번째로 친절한 인사와 답례를 빠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본인들은 하찮은 선물이나 친절에도 일일이 답례하는 것이 예사이며, 편지나 엽서를 받았을 경우에는 반드시 답장을 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이를 소홀히 하여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실하고 정직한 태도로 순수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눈치가 대단히 빠른 사람들이므로, 순수한 복음의 열정으로 접근하지 않고 예를 들어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거나 헌금을 걷거나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하면, 그들 안에 거부감이 생겨 선교의 길이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복음을 전할 때 진실하고 정직한 태도로 대해야 한다.

일본인을 지도할 수 있는 준비된 선교사의 조건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첫번째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교사보다는 끝까지 살아남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가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서 열매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교사의 생명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과 생명의 나눔을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을 믿기 때문이다. 450년 전에 일본에 전해진 기독교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쇠퇴하게 된 것은, 선교사들이 대부분 순교하고 남은 선교사들은 일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독교 내의 당파적 항쟁(예수회와프란치스코회의 갈등, 그리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을 벌이지 않고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일본에 잔류하거나 재진입하였더라면, 지금의 일본 기독교는 보다 더 달라졌을 것이다.

두번째로 교회의 성장을 위해 애쓰는 선교사보다는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애쓰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가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만을 구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더 나아가 자신이 이끌고 있는 교회의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의 사명은 자기 교회의 성장보다는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지역교회들과 협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왕으로 세우려는 백성들의 요구를 물리치시고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셨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을 떠난 이후 그 공백을 차지한 네덜란드가, 상업적 이익만이 아니라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일본을 복음화하였더라면 지금의 일본 기독교는 보다 달라졌을 것이다.

세번째로 명예를 귀하게 여기는 선교사보다는 모욕을 참을 줄 아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명예를 중하게 여기면 명예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선교사는 자신에 대한 사소한 개인적 모욕에도 인내하지 못하고 선교사역 자체를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버리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모욕을 참으셨다. 일본선교의 열쇠는 얼마나 일본인들의 교만과 냉대와 영적 더러움을 참아낼 수 있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네번째로 따르는 자들을 사랑하는 선교사보다는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사랑과 동정심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지만, 선교사에게는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는 영적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요구 그대로 세상을 정복하신 게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골고다의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비전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오늘날 일본을 향한 선교의 사명은 세계선교국가로서의 비전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청렴결백한 선교사보다는 다른 이들의 결점을 용납할 줄 아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우리 심령의 깊은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공유하게 하신다. 일본인들의 질서와 친절의 겉모습 속에 숨어 있는 이기심과 자만은 서로에게 극도의 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인들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복음의 내용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회개와 타인에 대한 대가 없는 용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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