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칼럼 41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부모의 장점만 닮으면 좋겠지만 불가피하게 단점도 닮아간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신앙의 유산을 남기는 것은 일평생의 가장 큰 과업이다. 부모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다. 조부모의 신앙이 부모의 신앙으로, 자녀의 신앙이 손주들의 신앙으로 전수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르호보암의 조부는 다윗이었고, 아버지는 솔로몬이었다. 르호보암은 암몬 여인 나아마와 솔로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야말로 그는 로열 패밀리 가문의 사람이었다. 르호보암이라는 이름도 “백성을 번성케 함”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조부가 견고하게 한 나라와 아버지가 세워놓은 화려한 왕궁의 터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을 잘 번성하게 하면 모든 것이 잘 되었을 것이다.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대표는 세겜에 모여 법적 후계자인 르호보암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여로보암을 주축으로 한 북이스라엘 열 지파의 대표와 회중은 어느 날 그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진정한다.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 하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
솔로몬이 왕궁과 성전 건축, 그리고 성벽 수축을 위하여 백성들에게 인력 동원은 물론 지나친 세금 부담을 주어 곤궁에 빠지게 했으니, 당신은 부디 짐을 좀 가볍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탄원을 들은 르호보암은 솔로몬을 섬기며 나라를 다스렸던 원로들을 초청해 의견을 물었다. 원로들은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왕상 12:7) 하며, 백성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하였다.
한편 르호보암은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보좌관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노인들과는 정반대로 백성들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더욱 억압해야 된다는 의견을 말했다. 3일 후에 백성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그는 원로들의 의견보다 젊은 친구들의 의견을 선택해 백성들에게 대답했다. "“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왕상 12:11) 백성들은 다윗의 집안과 자신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가 분리해 나갔다. 그들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나라를 분리했다.
르호보암의 아내는 마할랏이었다. 르호보암은 마할랏 외에 아내 열일곱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렸다(대하 11:21). 그는 부왕처럼 많은 첩과 함께 호화생활을 하였다. 그의 어머니 나아마는 남편 솔로몬에게 뿐 아니라 아들 르호보암에게 암몬의 우상을 섬기도록 하는 영향을 끼쳤다. 르호보암은 왕으로서의 위치가 확고해지고 세력이 강해지자 여호와를 버렸으며, 백성들도 그를 본받아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다. 르호보암은 결국 애굽왕 시삭의 침략을 받아 왕궁의 보물과 재물을 다 빼앗기고 말았다.
르호보암이 41세에 왕위에 올라 17년을 통치하는 동안 정치적 실패의 원인에는, 불신앙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한 사건들이 있었다. 르호보암의 자만의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그 배경은 어머니의 우상숭배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으며, 아버지의 사치심과 불신앙의 모습을 배제할 수 없다. 다윗의 하나님 솔로몬의 하나님이, 르호보암의 하나님 신앙으로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다음 세대의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한국 초기 개신교 역사부터 지금까지 6-7대 손의 신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초기의 뜨거운 신앙의 유산이 바르게 전달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바른 신앙과 행복한 가정생활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부부 인생의 가장 보람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