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칼럼 45
사람들은 말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칼로 벤 상처는 치료해서 나을 수 있지만 말에 의한 상처는 마음 속에 단단히 박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조지 클렘비스는 인류 역사에서 총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말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보았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사랑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사 시대에 말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가정의 이야기가 있다. 길르앗이라는 사람이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았다. 그 중에는 길르앗과 기생의 사이에서 태어난 입다가 있었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입다는 서자이기 때문에 적자의 자녀들에게 무시를 당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입다를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하며 집에서 쫓아내었다(삿 11:1-2). 마치 조선 시대 적자와 서자의 갈등을 보는 듯하다.
입다는 이복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였다. 그는 자신이 겪은 설움에 비관하고 좌절하면서 불량배로 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가난하고 유리하는 자들과 함께하며, 전쟁에 능한 뛰어나고 큰 용사로 성장했다.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을 때, 길르앗의 장로들은 입다에게 찾아와 자신들을 구해줄 것을 간절히 요청하였다. 당시 입다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장관이 된 입다는 싸우기 전에 먼저 사자들을 암몬 자손에게 보내면서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을 치러 왔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 자기들의 땅을 점령했으니, 그 땅을 돌려 달라는 주장하였다. 그러자 입다가 역사의 근거를 들어, 이스라엘이 이 땅에 거주한 지 이미 300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 도로 찾지 않다가 이제 와서 그 땅을 내어 놓으라고 하느냐며 암몬 자손의 억지에 항변하였다. 즉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보낸 평화 사절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삿 11:12-28).
입다는 암몬 자손과의 싸움에 나갈 때에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삿 11:30-31)라는 엉뚱한 서원을 하였다. 물론 그는 용기백배해서 싸움에 나갔다. 그리고 정말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입다가 승전가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올 때 비극은 시작되었다. 입다를 제일 먼저 반기며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입다의 딸이었다. 그 딸은 입다와 그 아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무남독녀였던 것이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승전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서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달려 나왔다. 입다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참담한 상황에 극한 분노를 표출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 되어 버렸다. 그의 아내 또한 얼마나 괴로운 심정이었을까?
결국 입다의 딸은 그녀의 소원대로 두 달 동안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서 처녀로 죽게 된 것을 애곡하고, 돌아와서 아버지가 서원한 대로 일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얼마나 참담하고 슬픈 일인지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입다의 딸을 위해 나흘씩 애곡했다. 누구든지 경솔한 서원을 멀리해야 한다.
입다의 서원은 자신의 가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말실수에 대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부부 사이는 한없이 편안하기는 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리고 함부로 말을 하게 된다. 부부 간에 허물 없이 하는 말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장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곪아서 한참이 지난 후에 아픔이 찾아올 수 있다.
부부 사이에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지켜주어야 할 경계선이 있다.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에게 소중한 배우자일수록 좋은 말, 배려의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또한 부부 간의 사랑의 말은 소통을 원활하게 만든다. 짧게라도 서로 생각났던 순간, 혹은 서로 힘이 되었던 순간을 꼭 편지, 말, 문자, 전화로 표현하는 것은 부부 사랑을 지키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