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건 칼럼] 日 기독교 역사와 일본정신의 변천

강혜진 기자  eileen@chtoday.co.kr   |  

노부나가 시대의 사무라이 정신

임진왜란 전까지 한국과 일본은 사이 좋은 형제국이었다. 적어도 전국시대까지는 일본의 정신이념이 비교적 보편적이었다. 전국시대의 사무라이에게는 충과 효와 자비와 정의라는 개념이 확고하였다. 오다 노부나가의 신일본 구상으로 일본의 기독교 부흥 시대가 열리게 되었는데, 그는 불교세력을 탄압하고 기독교 선교사를 받아들여 일본 개혁을 구상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순교의 신앙으로 헌신한 초기 선교사들의 활약에 힘입어, 불과 60여년 만에 전 인구의 5%에 달하는 복음화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당시 사무라이의 충의 정신과 기독교의 신앙이 잘 합치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토요토미 시대의 무력정신

오다 노부나가의 사후, 정권을 장악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취약한 정치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농민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사무라이들을 조선으로 방출하였다. 토요토미의 조선침략전쟁으로 인해, 사무라이에게는 총과 칼의 힘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는 타락한 무력정신이 싹트게 되었다. 더군다나 임진왜란에 실패하고 정유재란으로 이어지는 잔인한 복수전쟁 이후, 사무라이 정신은 충을 바탕으로 하는 의(義)의 이념에서 이해타산을 바탕으로 하는 이(利)의 이념으로 변질하고 말았다. 이른바 충의를 존중하던 사무라이 정신의 타락이었다.

에도 시대의 상인정신

이후 정권을 차지한 도쿠카와 막부는 봉건적 사회제도를 기반으로 사농공상의 사회적 신분제도를 활용하여 각 지역의 사무라이를 통제하는 독특한 국가체제를 구축하였다. 오랜 전란을 거쳐 봉건적 통일국가를 형성한 도쿠카와 막부는, 일본이 또 다시 전란에 빠져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무라이의 무력을 봉쇄하였는데, 이것은 사무라이와 농민을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격리장치로서 사농공상의 사회적 신분 가운데 가장 하층이었던 상인 계급으로 하여금 사무라이와 농민을 격리하도록 중간에 배치한 것이다.

이른바 죠닌이라는 것으로, 도시의 중심부에 사무라이 계급을 모여 살게 하여 이들을 손쉽게 감시하고, 관리로 활용하여 통제함으로 무력을 박탈하고, 상인들로 하여금 이들 주변에 거주하게 함으로써 사무라이가 농민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격리하였다. 이는 사무라이가 농민을 군대 삼아 정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또한 봉건 영주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대외무역을 금지하였으며, 이에 따라 남만무역을 바탕으로 선교하고 있던 기독교 선교사들을 퇴거시키고 기독교를 금지하며 탄압을 가하였다. 결과적으로 상인 계급이 득세하고, 가난한 하급 사무라이와 상인 계급이 결탁하여 새로운 사회주도층이 되었다. 이렇듯 일본의 타락한 무력정신은 도쿠카와 막부의 에도 시대에 들어와 대두하기 시작한 상인정신과 결탁하여, 무력과 금력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무력적 상인정신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사무라이들은 엄격한 관리와 통제를 받아, 점차 나약해지고 적은 봉급으로 억제 당하여 경제적 약자로 떨어지게 되었으며, 검약과 절약정신을 강요당하여, 재력을 모아 권력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봉쇄당하였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상인들은 도시에서의 독점적인 상업활동을 통해 재력을 기르게 되었다. 또한 당시 이시다바이간의 심학사상은 상업활동에 면죄부를 부여하였으며, 이윽고 상인 계급은 재력을 통해 사무라이들에게 세력을 과시하게 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막부 말기의 열강 침략의 시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막부에 반발하여, 하급 무사들을 중심으로 막부 타도의 기운이 증대하였고, 무시할 수 없는 실력으로 성장한 상인 계급이 가난한 하급 무사들과 혼인을 맺어 신분상승을 노리게 되었다. 가난한 하급 사무라이들과 부유한 상인 계급의 결탁은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재력을 확보한 하급 사무라이 계급은 막부를 타도하고 고급 사무라이를 몰아내고자, 덴노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주의 이념으로 궐기하게 되었다.

명치 시대의 일본정신

손노조이(왕정을 복고하고 외세를 배격함)의 구호 아래 힘을 잃은 막부를 타도하고 명치정부를 세운중심 세력은, 도자마(변방) 번의 하급 무사층과 이들을 지원하는 상인들이었다. 막부를 지탱하던 봉건제도가 붕괴하고 덴노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국가체제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국가통치의 이념이 태동하게 되었다. 에도 말기에 대두한 상인정신과 무력정신의 결합은, 명치 시대에 보다 국가적인 이념, 이른바 명치정신으로 확립되고, 군국 시대를 거쳐 아시아 침략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막부 말기에 일어난 국가주의 이념이 명치정부 발생의 계기가 되었으므로, 명치정부의 정책은 철저한 일본지상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이것은 덴노를 정점으로 하급무사들과 상인계급이 결탁한 새로운 사회의 주도층이 관료가 되어 일본의 정권을 담당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철저한 일본지상주의에 근거하여 국가주의 이념을 확립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명치정신은 에도 말기의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를 거쳐 이토 히로부미에 이르러 명치헌법을 통해 완성되었다. 특히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은 이러한 명치정신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으며, 오늘날 일본 지도층의 사상적 이념의 토대가 되고 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의 대동아 공영 구상은, 이러한 명치정신의 적극적 실천이었다.

결국 명치정부의 통치이념으로 확립된 일본정신은, 덴노를 정점으로 하급무사 및 상인 출신의 관료가 지배하는 일본지상주의의 이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이러한 일본지상주의는 일본의 종교적 신념으로까지 발전하여, 덴노를 정점으로 관료가 중심이 되는 일본의 내면적 국교화하였다.

종전 후의 일본정신

종전 후 일본에 민주주의가 이식되었으나, 마츠시타 고노스케의 ‘일본정신의 회복’에서 보이듯이 일본의 지도적 이념은 여전히 명치정신 회복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것이 현대의 일본 지도층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오늘날 일본의 민주헌법은 특정한 국교 없이 모든 종교의 자유를 천명하고 있으나,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적 이념인 일본정신은 무력적 상인정신을 바탕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지배하는 이념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정신은 일본과 일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가능하다고 하는 일본지상주의로 굳어져 버렸다. 이와 같이 일본의 지도적 이념은 현대에 들어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150년 전의 명치정신이 아직도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지상주의는 이웃 나라들과의 사이에 영토 문제, 과거사 문제, 무역 불균형 문제 등의 갈등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일본의 고립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20세기 말 동서냉전이 종식되고 자유민주주의의 이념 아래 세계 모든 국가들이 서로 돕고 이해하는 국제협력의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전근대적인 무력적 상인정신의 이념을 유지한 채 이웃 국가들과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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