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칼럼
국가와 가정은 운명을 같이한다. 국가는 망해가는데 가정은 편안하다든지, 가정이 해체되는데 국가는 안전하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남정네들은 싸움터에 나가야 했으며, 여인들은 침략자들의 노략거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가정의 행복을 원한다면 국가의 안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언자 중의 예언자인 이사야는 그 이름이 ‘주님께서 구원하시다’, 또는 ‘주님은 구원이시다’ 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 당시는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기 전 가장 암울한 시기였으며, 백성들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었던 시기였다(사 1:1-5,30). 이사야는 유다가 하나님을 떠나 타락의 길로 들어선 때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다(사 6:1이하). 그는 주님의 부르심에 망설임 없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응답하였다(사 6:8). 그는 선지자로서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등 4대에 걸쳐 50년간 예언 활동을 하였다.
유다 아하스 왕 때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군사동맹을 맺었다. 유다가 그 동맹에 가입하지 않자,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유다를 공격했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에 다시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하여 유다를 치려 하자, 아하스 왕은 친앗수르 정책을 취하며 지원병을 요청했다.
그 때에 이사야는 아하스 왕을 만나러 갈 때에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갔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이었다. 이 이름은 유다가 어려움을 겪고 남은 자만 있어도, 하나님께서 유다를 존속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였다(사 7:1-9).
아하스 왕은 그 예언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사야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고 하여도 아하스는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 징조를 보여주실 것이라 하였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임마누엘(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이 이름처럼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하시고,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기 전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 예고했다(사 7:10-17).
하나님은 이사야의 둘째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름을 주셨다. 그 이름은 ‘노략품을 재빨리 전리품을 잽싸게’란 뜻으로, 앗수르의 약탈이 임박했다는 것을 가리켰다. 유다가 앗수르를 의지하면 앗수르에 의해 노략당할 것을 예고한 것이었다(사 8:1-4). 그러나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은 이 징조를 거부하고 앗수르를 의지했다.
이사야는 이후 유다와 주변국들이 당할 재앙을 선포하지만, 동시에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내리리라는 희망을 선포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부르심에 두려움 없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이사야의 아내는 여성 예언자였거나 예언자의 아내였다. 추측컨대 그 아내가 아들들이 예언의 산 증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그런 이름을 짓는 데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사야의 아내는 이사야와 더불어 유다 국가를 구원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한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그 행복이 사회와 국가에 흘러넘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가정은 결코 개인의 안위와 가족의 복에 머물지 않고, 복의 근원으로서 세상의 축복의 통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