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칼럼
위기는 인간에게 예고나 경고 없이 갑자기 다가온다. 사람들은 위기 때에 불면증, 식욕부진, 두통과 같은 신체적 이상과 더불어 불안과 우울, 절망과 같은 심리적 증상이 동반된다. 어떤 사람은 위기를 만나 잘 대처하여 극복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시련에 절망하여 비관과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산다. 그러므로 위기에 대한 대응 자세는 삶의 태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애굽의 왕 바로는 위기에 처했다. 나일 강의 비옥한 삼각주에서 얻은 곡식과 노예들이 바치는 노동력으로 최강의 호사를 누리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출 5:1)고 하였다.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5:2)고 대답하였다. 바로는 노예들의 신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바로는 이들의 요청에 대하여 더욱 악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노동을 부과하여 탄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우셔서 애굽에 10대 재앙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시작하셨다. 첫 번째 피 재앙은 모든 물이 피로 변하여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 개구리 재앙은 전역이 개구리로 뒤덮이게 됐다. 세 번째 이 재앙은 땅의 티끌이 변하여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올랐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끝까지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마음은 강퍅해졌다.
네 번째 파리 재앙은 애굽의 창공을 새까만 파리떼로 뒤덮이게 하였다. 이쯤 되자 바로는 모세의 요구를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러나 파리떼가 사라지자 바로의 마음은 변해 버렸다. 이어서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재앙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에도 바로는 여전히 약속하고 파기하기를 거듭하면서 더욱 악독해지기만 했다. 아홉 번째 흑암 재앙은 칠흑 같은 어둠이 삼일 동안 애굽을 뒤덮었다. 바로는 두려움을 느끼며 모세에게 애굽을 떠나서 다시는 자신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마지막 장자의 재앙은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나게 됐다. 바로는 가장 혹독한 시련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더 이상 이스라엘의 해방을 막을 방법이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바로는 위기에 직면하여 변화를 거부하였다. 그는 끝가지 자신의 고집으로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였다.
바로와 같이 위기에 적응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한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허약하여 지나친 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특성이 있다. 그들은 또한 지나치게 독립적이거나 의존적인 경향이 있다. 바로는 눈앞에 펼쳐지는 참혹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였다.
바로와 같이 계속 변화를 거부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또는 바울과 같이 역동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 우리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신 목적을 가지고 인도하신다.
우리나라는 세월호 침몰 사건이라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위기 앞에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변화되어야 한다. 책임자는 책임자대로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미래지향적인 대응을 하여야 할 것이다. 위기란 우리 삶이 전환점에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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