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칼럼] 관계중독, 인간중독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강선영우울증치료연구소 대표).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강선영우울증치료연구소 대표).

브랜다 셰퍼는 ‘관계중독’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린 시절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는 성인이 되어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이를 대체해 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아 나서게 된다고 했습니다. 관계중독을 보이는 사람은 전형적으로 가슴 속에 블랙홀이 있어서, 2명이 들어가 있으나 20명이 들어가 있으나 똑같이 결핍의 상태에 허덕인다는 말입니다.

‘인간중독’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불안한 사람은 더 불안하게 되고, 강박적인 사람은 더 강박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트라우마가 있는 한 남자가 부하의 아내에게 점차 빠져들며 그 여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병적 집착을 그려냈고, 마침내 슬픈 결말을 맞는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인간중독이라는 말은 관계중독이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처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있을 때 사람은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뭔가 빠져들 것을 찾게 됩니다. 그때 술을 가까이 하면 알코올중독이 되기 쉽고, 도박을 시작하면 도박중독이 됩니다. 이성에게 빠질 경우 심각한 관계중독 혹은 인간중독의 증상을 겪게 되어 상대방이 이미 결혼한 사람이어도 문제 삼지 않게 됩니다.

청소년들이 쉽게 게임중독에 빠지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허전하고 공허한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잊게 되고, 게임을 하며 즐거움을 점점 더 추구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쉽게 게임중독에 빠져듭니다. 모든 중독은 고통을 견디기 위해 병적으로 집착하는 그 무엇인가가 생기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중독 증상 이면에는 우울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계절성 우울증 등의 일시적인 가벼운 우울증이 아닌 만성우울증은 사랑과 관심의 부재, 혹은 학대의 후유증 등으로 생기는 심리적 질환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학대를 당하면 누구나 심각한 우울증의 소인이 영혼에 잠복된 채 언제든 폭발할 채비를 하게 되며 언젠가는 터져나오게 됩니다.

이미 심리적 상태가 허약해진 사람들은 쉽게 중독에 빠집니다. 생존하기 위해 뭔가에 매달리게 되는데, 이때 사람에게 빠지면 관계중독이 됩니다. 애정결핍 상태가 관계중독을 부르는 것입니다. 유아기나 아동기, 혹은 청소년기에 부모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에게 결핍된 사랑을 보상받으려고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무서운 집착을 보이기도 하는데, 상대는 질리게 되고 견디지 못하게 되면 떠나갑니다. 

이처럼 관계중독은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 미친 듯 집착하고 상대방을 지치게 만듭니다. 관계중독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의존형과 돌봄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유형 모두 애정과 보살핌의 결핍으로 인해 낮은 자존감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봄형의 사람들은 상대를 끊임없이 돌보면서 “내가 당신을 보살피는 것처럼 당신도 나를 보살펴 달라”고 무의식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관계중독이 있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는데, 잘 해주고 나서 그 사람들이 나에게 돌려주는 게 없으면 혼자 상처를 심하게 받아요.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구요. 다른 사람들 기분에 맞춰주려고 언제나 애쓰고 살아요.”

의존형은 상대방이 지칠 때까지 의존하며 상대방이 의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큰 충격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돌봄형과 의존형의 만남은 두 사람을 철저하게 파괴시키면서 파국을 맞게 됩니다. 가장 좋지 않은 커플의 모습입니다.

애정결핍의 상처 치유를 이루면서 블랙홀같이 뻥 뚫려 있는 결핍의 공간을 사랑으로 채워가야 합니다. 영혼 가득 사랑으로 채워가면 심각한 관계중독도 치유가 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좋은 사람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들 속으로 달려가 건강한 관계를 맺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가벼운 대화부터 시작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의 애정결핍 증세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는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건강한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지나온 시간 동안 형성된 상처를 치유하고 결핍을 채우며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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