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의 위기-나오미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이선이 칼럼

▲이선이 목사(듣는마음상담소 대표).
▲이선이 목사(듣는마음상담소 대표).

유족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특별히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질병이나 사고로 가족의 일원이 죽게 된 경우에는 더더욱 그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다. 유족들은 바쁘게 장례 준비를 해야 되고, 장례식으로 인해 조문하러 오는 사람들로 인해 정신없이 며칠을 보낸다. 어쩌면 너무 경황이 없어 슬픔을 느낄 겨를조차 없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고인의 장례식을 마쳤다고 해서 유족의 정신적 위기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성경에 가족원들의 죽음으로 정신적 위기에 있는 나오미라는 한 여인이 나온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에 흉년이 들어, 유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갔다. 거기서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아들 말론의 아내 룻과, 아들 기룐은 아내 오르바를 맞이하였다. 나오미는 그 이름의 뜻대로 ‘희락’과 ‘행복’이 계속될 것 같았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남편 엘리멜렉은 유다의 지도자였고, 그들이 모압에 이주하여 살 때 부유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압 왕 에그론이 자신의 두 공주인 오르바와 룻을 기룐과 말론에게 결혼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나오미는 남편과 사별하였다. 게다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들 마론과 기룐이 죽었다. 나오미는 이국땅에서 졸지에 사랑하고 의지하던 가족들의 죽음으로 망연자실의 상태에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삶의 위기와 자신의 불행의 상황에서 자신의 고향 유다 베들레헴에 돌아갈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불러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룻 1:13)라고, 며느리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나오미는 두 과부 며느리에게 각자 자기 살 길을 찾아가라고 했고,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함께하겠다고 하였다. 나오미가 다시 권면하여 스스로 갈 길을 가라고 하자 두 며느리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세 번째 권면하였을 때 오르바는 돌아갔고, 룻은 나오미를 계속 따랐다. 고향에 돌아간 나오미는 보아스라는, 남편의 친척을 찾아 며느리 룻을 재혼시키는 데 성공한다. 룻은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는다. 

나오미처럼 사별을 당한 사람 앞에서는 일상적인 말로 위로하기보다는 차라리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좋다. 나오미가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고향에 이를 때에 온 성읍 사람들이 나오미냐 하며 알아보자, 그녀는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마라는 고통이라는 뜻이다.

나오미가 고통에서 기쁨을 되찾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극심한 슬픔과 분노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았을까 한다. 일반적으로 유족들은 주위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 받아들이게 되면 슬픔도 점점 가라앉는다. 그러나 초기에는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조용히 같이 있어주는 것만이 힘이 될 수 있다.

룻은 나오미에게 함께하여 주었기 때문에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다. 룻 또한 남편을 잃은 사람으로서, 나오미가 같이 있어 주는 사람이었다. 유족들에게 불면증, 식욕 감퇴, 분노 폭발 등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슬픔을 묻어 두지 말고 도피하지 말아야 한다. 억지로 슬픔을 이기려 할 필요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맛보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다. 상실의 슬픔을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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