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언어’ 아람어를 남긴, 셈의 막내아들 아람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노아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16)

▲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아람 후손들의 정착지

아람(Aram)은 성경이 노아의 손자 16명 가운데 마지막으로 거론한 인물이다. 아람은 지리적으로는 통상적으로 요단강 동북부에서부터 티그리스(힛데겔)와 유프라테스(유브라데)강 유역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아람은 수리아라고도 불렸다. 즉 수리아는 지금의 시리아에 해당하는 말이다. 아람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도시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다메섹)였다(삼하 8:6; 대상 18:6ㅣ 사 7:8). 그래서 성경은 다메섹에 대해 ‘아람의 머리’라고 하였다(사 7:8). 성경은 아브라함도 헤브론에 가는 도중 다메섹에 들렀다고 했다(창 15:2). 훗날 이스라엘의 다윗은 아람 땅 다메섹을 정복하고 수비대를 배치하였다(삼하 8:5-6, 대상 18:5-6). 6일 전쟁 당시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기습 점령한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이곳을 자신들의 몫으로 여기고 완충지대로 삼고 있는 것에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아람의 땅은 오랫동안 정치적˙지리적 통일체를 이룬 곳이 아니었다. 그저 ‘아람 사람’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던 지방을 가리키기 때문에, 명확하게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앗수르의 비문은 아람을 유브라데 강의 동부 지방에 국한하고, 서쪽은 히타이트(Hittites)나 아모리 사람의 땅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람은 네 아들을 낳았다(창 10:23).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가 그들이다. 셈의 다섯 아들 가운데 셋의 경우 성경에 그 자녀들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에 비해, 아람은 네 아들들 이름이 기록된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역대상 1장 17절은 아람의 큰아들 우스를 셈의 아들로 표현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과 밀가 사이에 태어난 아들 이름도 우스였다(창 22:21). 욥의 고향 이름도 우스였다(욥 1:1; 렘 25:20). 헨리 모리스는 아람의 아들 우스와 욥의 고향 우스는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으나, 성경적 근거는 명확하지가 않다. 어찌되었든 아람의 아들들 이름이 네 명이나 성경에 기록된 것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 아람의 가정이 번성하였음을 나타낸다.

성경은 아람의 땅에 대해 조금 달리 접근한다. 구약성경에서 아람은 아람 나하라임(창 24:10; 신 23:4; 삿 3:8-10; 대상 19:6), 밧단 아람(창 25:20; 31: 24), 아람 다메섹(삼하 8:5-6), 아람 마아가(신 3:14; 수 13:13), 아람 소바, 아람 르홉 등 좀 더 좁은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밧단 아람의 중심 성읍 하란에서 야곱은 여러 자녀를 낳고 큰 부자가 되었다(창 25:20; 31:24; 27-28장; 35: 23-26; 46:15). 아람의 후손들이 타민족과 어울려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였으며, 그런 가운데 특정 지역마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었다는 증거이다. 아무튼 아람의 후손들은 지금의 시리아 땅을 중심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흩어져 살았다.

아람 족의 흥망

아람은 “높고” “고귀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70인 역은 아람을 ‘수리아’(시리아: Suriva, Syria)로 번역하고 있다. 아람은 성경 뿐 아니라 역사 속에도 자주 등장하였다. 역사상 아람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애굽 제1왕조 시대(BC 3100 경)나 아카드어로 기록(주전 27세기-23세기 경)된 문헌에서 아람을 찾을 수 있다. 아람 사람에 관해 보다 분명한 언급은 마리 출토의 아모리어 텍스트나, 우가리트 출토의 토판(土板)에서 발견된다. 주전 23세기 아카드 왕 나람신(Naram-Sin)의 설형 비문에서는 뚜렷하게 아람 족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아람은 여러 비문에 등장한다. 주전 14세기 중엽 아카드어(신바벨론어)로 저술된, 애굽에서 발견된 유명한 아마르나 서신(Amarna Letters) 토판에서도 아흘라메(Ah˘lame=연합자)라는 이름으로 아람 족을 찾을 수 있다.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I 세(주전 1115-1076)는 앗수르의 서부 지역에 침입한 아흘라메를 물리치면서, 아흘라메를 아람 사람으로 지칭하고 있다. 앗수르의 번영 시대에도 아람족은 만만찮은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앗수르 제국이 점점 더 강성해짐에 따라 아람 도시들은 하나 둘 앗수르에게 점령을 당하기 시작한다. 앗수르인들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점령한 후(주전 722) 이스라엘인들을 아람 족속이 살던 땅으로 이주시켰고, 그 땅에는 반대로 아람인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앗수르에게 많은 지역을 빼앗긴 아람 족속들은, 한때 신 바벨론을 도와 앗수르에 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람 족속은 오히려 바벨론에게 동화되어 점차적으로 역사 속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남북 시대,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헤시온, 주전 940-915, 왕상 11:23-25; 15:18), 다브림몬(주전 915-900, 왕상 15:18), 벤하닷 1세(주전 900-860, 왕상 15:18-20), 벤하닷 2세(주전 860-841, 왕상 20장), 하사엘(주전 841-806, 왕하 8:15), 벤하닷 3세(주전 806-770), 르신(주전 750-732) 등으로 이어지던 아람 왕국은, 이스라엘보다 10년 먼저 문을 닫게 된다. 그리고 광활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걸쳐 있던 아람 족의 행동반경은, 지금의 시리아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이후 오랜 기간 타민족의 억압과 핍박을 견디어 온 시리아는, 1946년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비로소 지금의 시리아로 독립하였다.

아람과 이스라엘 민족

성경에 보면 아람과 이스라엘 민족은 같은 셈의 후손이면서 근접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끊임없는 접촉을 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아람 땅이라고 불리는 곳은 단순한 아람 후손들의 땅이 아니었다. 아람의 주요 도시 하란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주한 땅이었으며(창 11:31; 행 7:2, 4), 그는 그곳에서 죽었다. 아브라함과 나홀의 형제 가운데 하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있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아람 땅 하란은 나홀과 그 자손들,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 하란의 아들 롯, 브두엘, 라반의 마음의 고향이었다(창 22:20-24; 24:4, 7, 10; 25:20; 28:2). 아브라함과 그 가족은 롯을 데리고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다(창 12:4).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을 하란 땅으로 보내면서 하란을 자신의 고향, 내 족속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창 24:4).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사촌형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맞았다(창 24장). 조카와 결혼한 셈이다. 모세는 자기 조상에 대해 ‘유리하는(떠돌아다니며 살던) 아람 사람’(신 26:5)이라고 고백한다. 브두엘도 당연히 아르박삿의 후손임에도 성경은 그를 아람 족속으로 소개한다(창 25:20; 28:5).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 야곱도 밧단 아람에 사는 그의 외삼촌의 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았다(창 28:2-5). 야곱과 같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여자들 중 적어도 레아와 라헬은, 히브리 사람의 조상이 된 아람 사람이었다. 야곱은 외삼촌인 동시에 6촌지간이기도 했던 라반의 딸들과 결혼한 셈이다. 아람 사람 라반은 이렇게 야곱의 장인 어른이 되었다.

사사시대를 거쳐 다윗왕에 이르러 아람은 이스라엘과 치열한 물리적 충돌을 시작한다. 다메섹의 북쪽 레바논 산중에는 ‘소바’라고 하는 강력한 왕국이 있었다. 그 동쪽 경계에는 유브라데 강까지 미치고 있었다고 한다(삼하 8:3). 소바는 유브라데 강 지방에서 ‘비돌’이나 ‘무도기누’라는 앗수르의 성읍들을 앗수르 라비 Ⅰ세(주전 1012- 972)에게서 탈취했다. 다윗이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 에셀을 쳐서 마병 일천 칠백과 보명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兵車)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 병거의 말은 모두 발의 힘줄을 끊자, 다메섹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을 도우러 왔다고 했다(삼하 8:3-5). 아람과 소바 왕국이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다윗은 이 전투에서 아람 사람 이만 이천을 죽였다(삼하 8:5-8,10:15-18). 이때부터 아람은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람의 일부 장군은 다윗의 수하로 들어왔다. 다윗의 37용사 가운데 이갈이라는 장군은 소바 출신이었다(삼하 23:36). 다윗은 가장 중요한 측근 경호원들도 이방 그렛 사람(삼상 30: 14; 삼하 8:18; 15:18; 20:23; 대상 18:17)과 블레셋 사람들을 채용하였다. 친인척과 지연, 학연에 의지하여 측근들을 중용하다가 인사(人事)를 그르쳐 주변 사람들을 줄줄이 철창신세를 지게 만드는 우리 조국 지도자들의 미숙한 행태를 볼 때, 다윗의 용병술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솔로몬의 평화로운 통치 시기에도 아람은 이스라엘의 조공국가로 남는다. 하지만 아람이 마냥 이스라엘에 고개를 숙인 것은 아니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아람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에 큰 위협이 되는 세력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특히 북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 당시, 북이스라엘은 벤하닷 1세가 통치하던 아람과 큰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선지자 엘리사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둥병을 치료받고 돌아간 나아만 장군이, 바로 이 당시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다. 신앙심이 없던,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아람에게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정복하려고 전쟁을 벌이다 결국 아람 병사의 화살을 맞고 죽고 말았다.

아합 뿐이 아니었다. 아람 족은 끊임없이 북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와 전쟁을 치렀다. 성경에 기록된 것만 보아도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을 비롯하여, 3대 왕 바아사, 9대 왕 여호람, 10대 왕 예후, 11대 왕 여호아하스, 12대 왕 요아스, 13대 왕 여로보암 2세 통치 때 치열한 공방과 전투가 있었다. 심지어 남유다와 아람(시리아)이 벌인 3대 전투(4대 여호사밧, 6대 아하시야, 8대 요아스 왕 시절)의 승리자는 아람이었다(왕하 8:28-39, 대하 18:28-34; 대하 22: 5-6 참조).

이 같은 이스라엘과 아람 민족 사이의 끊임없는 공방은, 오늘날 소위 ‘6일 전쟁’까지 그 끈질긴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1967년 6월 7일 발생한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랍 이웃 나라들과의 전쟁이었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이스라엘군은 요르단 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며, 현존하는 유일한 고대 유대교 성전인 바위의 돔과 서쪽 성벽을 장악하였다. 외견상 양적으로 우세한 듯 보였던 아랍 동맹은, 이스라엘의 기습 선제 공격 앞에 속절 없이 무너져 버렸다. 훗날 6일 전쟁이라 불리게 되는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요르단의 요르단 강 서안을, 시리아 방면의 골란 고원을, 그리고 이집트의 방면의 가자 지구와 시나이 반도 전체를 정복하였다. 이스라엘의 일방적 승리였다. 이때 차지한 아람(시리아)의 영토 골란 고원은 과거 이스라엘의 유서 깊은 도피처가 있던 곳이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이 도피성 지역을 양보할 기미를 잘 보이지 않는다.

아람어와 유대인 그리고 성경

아람어는 주전 8세기까지 아카드어와 경합해 오다가, 주전 5세기 아케메니아 왕조(Archaemenian monarchs)의 공용어가 되었고, 주전 2세기 초까지 인도에서 애굽에 이르는 제국(특히 바사 제국)의 국제어로 사용된 셈어였다. 따라서 동방계 셈어(아카드 방언)나 남방계 셈어(에티오피아 및 아랍어 방언)와 구별되고, 북서방계 가나안어(히브리어, 페니키아어, 우가릿어)와도 구별된다. 히브리어와의 뚜렷한 문법적 차이는, 히브리어가 정관사를 명사 앞에 붙이는 데 반해 아람어는 명사 뒤에 두는 특징이 있다. 비록 아람 족이 중동의 강대국이 되지는 못하였으나, 그 지리적 특성상 언어를 통한 문화적 매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 민족이 되었다.

주전 6세기경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대인들도, 70년 동안 바벨론 지역에 살면서 조상들의 고유 언어인 히브리어의 표기에 당시 중동 지방의 공용어였던 아람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일상생활에서 아람 방언 사용은 빈번하였다. 36년 동안 일본에 합병되었던 우리 민족 언어에도 일본식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것과 많이 닮았다. 그 영향은 예수님 당시까지 이어져, 당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아람 방언이 통용어였다. 아람어 성경 탈굼(Targumim)이 만들어진 것도 이 같은 영향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아람어에 능통한 분이었다. 제자인 요한의 아들 시몬(‘갈대’라는 뜻)에게 지어주셨던 ‘게바’(‘반석’ 또는 ‘바위’라는 뜻)라는 이름도 아람어였다. 후에 그 이름의 뜻을 헬라어로 번역하여 ‘베드로’(반석)로 부르게 된 것이다(요 1:42 참조).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 죽음에서 살려내실 때 하신 ‘달리다굼’이라는 말도 직역하면 “귀여운 소녀야 일어나거라”라는 아람어였다(마 5:41). 두로와 시돈을 지나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 근처에 이르신 예수께,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할 때, 예수님은 조금 낯선 방법을 사용하신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에바다’라고 하셨다. 이 말은 ‘열리라’는 의미의 아람어였다(막 7:33∼37).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 마리아가 예수님을 호칭한 ‘랍오니’도, ‘선생님’이라는 뜻의 아람어였다. 몸에서 분리된 신기한 손 하나가 바벨론 왕 벨사살의 왕궁 연회장 벽에 기록한, “세고 세었으며 무게를 달고 나누었다”라는 뜻을 가진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단 5:5; 24-25)이나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께서 부르짖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도 아람어이다. 시편 22편 1절의 인용인 이 구절은 마태복음 27장 46절과 마가복음 15장 34절에 기록되어 있다. “겟세마네”(기름 짜는 틀), “골고다”(해골) 등도 모두 팔레스틴에서 통용되던 아람어였다. 우리말의 ‘아빠’와 동일어인 ‘압바’(Abba, 롬 8:15; 갈 4:6)도 아람어요, ‘마라나타’(Maranatha, 고전 16:22)도 아람어이다. 성경 에스라서 일부(4:8-6:18; 7:12-26)와 예레미야서의 한 구절(10:11), 그리고 다니엘서 일부(2:4 하반절-7:28)는 아예 아람 방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성경 여러 곳(창 31: 47; 막 5:41, 14:36 등)이 아람어로 쓰여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 성경의 아람어 역본인 아람어 ‘탈굼’이 있어 히브리어와 비교하면서 고대 아람어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성경과 역사는 이렇게 아람족과 아람족이 사용하던 아람어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

아람어가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은 주후 7세기 이슬람교의 정복 활동 때문이었다. 중동 지역을 이슬람이 장악한 이후 아람어는 급격하게 쇠퇴되어갔다. 아람어 사용 지역들은 대부분 아랍어로 대치되었고, 오늘날 아람어는 겨우 쿠르드족과 일부 시리아인(수천 명)들에게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아람 민족의 미래

아람 땅은 놀랍게도 이방인 선교에 사명을 받은 사도 바울의 최초 선교지였다.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던 사울은, 죽일 기세로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의 여러 회당으로 보낼 공문을 요구하였다.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보는 대로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였다. 사울이 길을 떠나 다메섹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그에게 비쳐 왔다. 그 순간 사울은 땅에 쓰러져버렸다. 그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괴롭히느냐?”라는 음성이 들려 왔다. 바로 예수님의 음성이었다. 사람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이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주님은 사울에게 “네가 할 일을 알려줄 사람이 있을 것이니 일어나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 눈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던 사울은, 동행하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한 채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했다. 회심하고 눈이 먼 그가 도착한 곳은, 다메섹의 직가라는 거리였다. 다메섹에는 다소 사람 바울의 회심 사건을 환상으로 보았던, 주님의 한 제자가 있었다. 바로 아나니아였다. 그는 눈이 먼 바울에게 안수(按手)하여 그가 눈 뜨는 것을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세례를 주고 다메섹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를 소개해 주었다(행 9:10-18). 이렇게 사울(‘큰 자’라는 뜻)은 바울(‘작은 자’라는 뜻)이 되었으며,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다(행 9장). 바울은 훗날 아나니아를 “주 안에서 경건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있다(행 22:12-16). 이렇게 전통적으로 아람 땅은 최초의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은 땅이었다. 지금의 시리아와 이라크가 이슬람의 핍박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유지하는 것에는, 그 선조들의 뜨거운 신앙과 핏값이 있다.

잔인한 지도자로 인해 최근 아람 땅(시리아)는 다시금 세계가 주목하는 땅이 되었다. 하지만 아람 땅은 본래 하나님의 땅이었다. 문둥병자였던 수리아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의지하여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몸을 씻어 문둥병을 고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예수님은 이 사건에 대해, 하나님의 자비는 이방인들에게도 차별이 없으심을 분명히 하셨다(눅 4:27). 예수님은 아람어를 즐겨하셨다. 예수님은 아람을 사랑하신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부르고 계신다. 셈의 후손 아람은 말할 것도 없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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