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성 칼럼]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종교가 아니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야,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는 일이 더 중요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20세기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영국)의 마지막 설교 메시지는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종교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피를 토하듯 쏟아낸 설교였다. 그는 구원과 관련하여 인간의 모든 행위와 공로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을, 그가 행한 구속 사역만을 오롯이 드러냈다. 기독교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종교가 아니라면, 누구를 본받는 종교인가?

물론 기독교인의 의무는 마땅히 그리스도를 본받음이다. 특히 윤리적 삶과 가르침을 본받아야 한다. 윤리 부재의 기독교는 상상할 수 없다. 성경 가르침의 많은 부분이 도덕적 삶, 윤리적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아니다. 윤리적 실천보다 더 중요하고 앞선 것이 있다. 기독교의 존재 의의가 달린 사안이다. 기독교의 존재 의의와 사명을 윤리실천 운동으로 이해함은 잘못이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도덕적 삶을 본받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윤리 공동체로 이해하는가? 이는 정작 중요한 것은 제쳐두고 주변적인 무엇에 연연하는 발상이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신앙고백 중심의 기독론적 공동체이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때부터 그 피조물들을 돌보고 사랑하며 섭리하고 계신다.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시는 특별한 일(mission)은 선민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펼치는 인간 구원의 역사이다. 오늘날 교회에 깊숙이 들어와 세력을 펼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하나님의 세상 통치만 강조할 뿐, 그 분이 하시는 특별한 일, 구원활동에는 무관심하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 있다고 보는 신앙운동은, 예수 중심의 구원 공동체를 율법주의·도덕주의 윤리 공동체로 전락시킨다. 그 결과는 비극적이다.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부산총회가 채택한 선교-전도 선언서(함께 생명을 향하여: 지형변화 속의 선교와 전도)가 언급한 ‘지형 변화(Changing Landscape)’는 교회의 퇴락과 조종을 의미한다. 복음의 요람이던 여러 지역들의 기독교가 조종을 울리게 된 까닭은 주변적인 것을 핵심적인 무엇으로 여긴 결과이다.

중세 후기 수도사 토마스 아 켐피스가 저술한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신학도들의 필독서이다. 그는 ‘우리가 많은 신학 지식을 가지고, 또 성경을 통째로 외우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논한다 해도, 겸손이 없으면 그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탄식한다. 토마스는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기, 그리고 모방하기(imitation)를 강조한다.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거룩한 과업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인간에게 구원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영원한 생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풍성한 삶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윤리 실천 그 자체의 성공적 수행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다. 죄의 쓴 뿌리를 가지고 있다.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성령의 힘으로 거듭난다.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고, 그 하나님과 동행할 때 죄를 멀리할 수 있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는 윤리적 삶이 가능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낮은 자세, 검소, 겸손, 청빈의 모범을 보인 윤리 교사로 여기는 시각은 기독교를 왜곡시킨다. 그 결과는 비극적이다. 윤리적 관점에서 모든 종교는 동일하며, 같은 것을 추구한다는 식의 발상을 조장한다. 그리스도 예수 중심의 구원 공동체를 율법주의, 도덕주의 집단으로 전락시킨다. 자기 눈 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 안의 티끌을 문제 삼게 한다. 마음을 넓히고 사랑으로 해결해야 할 사소한 인간적 오류에 날카로운 칼을 들이댄다. 침소봉대, 공격, 비판한다. 기독교의 이미지를 추락시킨다. 기독교가 동네 개보다 못하다는 조롱을 받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회를 흠 없는 천사들의 모임으로 여기게 한다.

예수는 누구인가? 그리스도, 메시아, 구원자이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인간의 죄와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해 대속 제물로 바친 대제사장이다. 사탄을 짓밟고 죽음의 권세를 이긴 왕 중 왕이다. “내가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다”고 선언한 참 선지자이다.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시다.

인간이 예수를 그리스도, 구원자로 믿으면, 곧 영접하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사죄(赦罪)를 선언한다. 의롭다 칭하신다. ‘칭의’는 법정 용어이다. 칭의가 선언되는 그 때, 죄인은 하나님과 화목한다. 하나님과 인간을 가로막고 있던 죄악의 장벽이 허물어진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아버지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한 것들을 누릴 특권이 주어진다. 하나님 나라가 그에게 임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시작된다. 성령의 주시는 힘으로 인간은 죄의 습성을 꺾고 사탄의 역사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 우리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하늘의 천군천사가 기뻐한다.

이러한 인간 구원의 과정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진행된다. 믿음은 성령의 주권적 역사의 결과이다. 인간이 창조주와 화목하고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을 얻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선물이다. 구원과 칭의는 인간이 자기의 선함과 선행으로 얻어낼 수 없는 무엇이다.

구원받은 자는 오늘 눈을 감아도 그의 영혼이 하나님 품에서 눈을 뜰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때까지 유보된다는, 이른바 ‘유보적 칭의론’ 또는 ‘유보적 구원론’은 얼빠진 주장이다. 컨텍스트의 관점으로 텍스트를 해석하고, 인간의 상태를 근거로 하나님의 거룩하고 놀라운 사랑과 구원 사역을 단정짓는 모순에 빠진다,

기독교의 설교는 교양 강좌가 아니다. 설교의 핵심은 윤리실천 강화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교훈에서 멈추지 않는다. 기독교 설교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복음 선포이다.

목사는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교훈과 교리, 진리들을 골고루 설교할 의무가 있다. 장로교회는 특히 이 점을 강조한다. 목사의 설교에서 복음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일반 교양강좌나 도덕 훈화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리, 인간관계에 관한 것은 아닌가? 감동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하여 반드시 좋은 설교라 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선각자들 이야기를 듣고서도 감동받고 눈물 흘릴 수도 있다.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을 넘어선다. 윤리실천 강화(講話)가 아니다. 이는 윤리에 대한 강조와 가르침이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를 믿지만 삶이 바뀌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본다. 그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 자체가 거짓이거나 착각이거나 심리적 쏠림이거나 문화적 표현에 지나지 않은 경우일 수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 받은 기독교인이 되면, 믿음에 합당한 윤리적 삶이 뒤따른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고 성령이 내주하면 변화와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한다. 바울이 말하는 ‘본받음’은 그가 전한 복음, 복음전통을 따름이다(고전 11:2). 교황 프란치스코가 보여주고, 불교의 달라이 라마, 이슬람교의 사제, 힌두교의 구루가 보여줄 수 있는 검소, 겸손, 청빈한 삶의 모범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독교 신앙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야,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는 일이 선결과제이다. 유일한 중보자인 예수를 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zoe)을 얻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접붙임되는 일이다. 믿는 자에게는 윤리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다.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은 인류 구원의 복음이자,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도(道)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제시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은혜의 십자가, 영광스런 십자가를 만인이 본받아야 하는 아름다운 무엇이나 윤리적인 것으로 변질시키지 말라고 외친다. 옳은 말이다. 아래의 메시지는 단순한 기독교(Christianity Simplified)를 추구하는 ‘사도행전 30 운동(ACTS 30)’ 정신과 일치한다.

기독교는 여러분과 저의 작은 선(善)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내가 무엇을 행하느냐와 행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나으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내가 이전보다 얼마나 더 변화되고 나아졌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잊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 분의 흠 없고 완전한 의가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분을 믿으면 그 분의 의가 여러분에게 주어지고
여러분은 그 분의 의를 입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나 저것을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은 여러분에게 무익할 뿐입니다.
그러니 중단하십시오.
이것들은 절대로 여러분을 그 어디로도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 멀리 가기 전에 멈추십시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나가서 그리스도를 본받으려 노력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 순간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가엾고 비참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다 해서 절대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거기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면 가장 깊은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을 뿐입니다.
그 은혜의 십자가, 영광의 십자가를
만인이 본받아야 하는 아름다운 것으로 변질시키지 마십시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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