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gei 선교칼럼] 차마설

강혜진 기자  eileen@chtoday.co.kr   |  

필자는 아주 젊은 시절 ‘결혼’이라는 주제의 연극을 보면서 무척 감동을 받은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인상 깊은 것은 무대의 배우가 모두 세 명이라는 것이다. 한 여인이 의자에 앉아서 사색에 잠겨 있을 때에, 갑자기 한 신사가 찾아와 청혼을 한다. 멋진 양복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매우 빛이 나는 구두에 지팡이를 멋으로 들고 있는, 젊은 신사였다.

뜬금없는 청혼 요청에 아가씨는 기겁을 한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 외적으로는 모든 것을 갖춘 듯한 사람이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성품의 소유자인지 아무 것도 모른다. 무엇을 믿고 결혼을 한단 말인가? 시비가 오고 가는 순간에,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말없이 품속에 숨겨둔 시계를 보이고는 신사의 지팡이를 가져간다. 10분이 지나자 또 다시 시계를 든 사람이 나타나 모자를 벗겨간다. 그리고 또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그 사람이 시계를 보이며 양복을 벗겨가니 신사는 알거지가 되었다. 여인은 신사에게 속은 것을 알고서 “사기꾼, 도둑놈”이라고 소리치며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간다. 그 때 신사는 “잠깐만!” 외치면서 일장 연설을 한다.

“우리의 인생 모든 것이 하늘에게 또는 하나님께 잠시 빌려온 것이 아닌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 무엇 하나 빌리지 않는 것이 있는가?” 외치는 소리에 여인이 감동을 하면서 되돌아와 신사의 품에 안기는, 해피엔딩이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잠시 동안 빌려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과연 내 것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라는 존재에서 시작하여 나의 인생과 가족과 자녀와 소유물, 그리고 건강을 비롯하여 모든 것은 하나님께 일정 기간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꼭 이러한 내용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 작품을 통하여 깨달은 것은 우리의 소유는 결국 아무 것도 없으니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 아닌가?

고려 말 학자요 문신이었던 이곡이라는 사람은, 이웃에게 잠시 말을 빌려 사용한 후 경험을 바탕으로 차마설(借馬 設)을 썼다. 역시 ‘빌려 씀’에 대한 성찰이다. 느리고 둔한 말을 빌려 탈 때는 무척 조심스럽게 탔으나, 날래고 호쾌한 준마를 빌려 탈 때에는 의기양양하게 몰다가 오히려 후회로 남을 때가 많았다는 내용이다. 빌려 쓰는 것을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짧은 기간 백성에게 힘을 빌려 쓰는 대통령, 대통령에게 권세를 빌려 사용하는 권세자들, 아비에게 힘과 권세를 빌리는 아들, 돌려줄 책임을 모르고 자신의 소유로 여긴다면 큰 낭패가 돌아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빌려 씀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면 결국은 본분을 잊고 허세를 부리게 되고, 사람들과 불통하게 되어 침통한 인생을 살게 되며, 결국은 비통하게 인생을 끝낼 수 있음을 말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일정 기간 받은, 청지기적 삶에 불과하다. 이것을 아는 것이 인생의 본분일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를 걱정하며, 이렇게 얼마 동안 빌려 받은 목회를 생각하면서 “책임을 맡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잠시 동안 맡겨준 사명을 착각하여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고 누리는 태도 말이다. 온전히 주장하고, 개인의 지식과 경험과 생각대로 운영하고, 교인들 숫자가 좀 모인다고 허세를 부리고, 재정이 좀 여유 있다고 허탄한 생각에 빠져 무책임하게 지출하고 사용하는 일 말이다.

모든 것이 주께 빌려온 것임을 잊어버린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목회 인생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사역하였다면, 오늘날 세상은 한결 복되고 값진 인생과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유하는 신앙, 성공주의 신앙으로, 세상을 무서우리만큼 경쟁사회로 이기적인 사회로 물신(物神) 사회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니……,

우리가 물건을 사다 보면 상표에 반드시 붙어 있는 것이 있다. 유통기간이다. 모든 물건에는 제조일과 만료기간이 있다. 인생도 우리의 사명도 주어진 날이 있고 만료기간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주께 잠시 빌려 왔음을 인식한다면, 주어진 사역과 목회에 좀 더 정직해져야 한다.

어떤 자는 유효기간(정년)이 지났는데도 날짜를 변경하여 노욕을 드러내어 허세를 부리고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일정 기간 맡겨준 사명을 망각하고 교회를 자신의 소유로 이용하여 허탄한 일에 빠져있다가 망하는 꼴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라가 어렵고 세상의 소문이 흉흉하고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는 시대를 살면서, 세상에 보냄을 받고 사명을 받은 사역자들과 목회자들은 허락하신 사역 기간 동안 겸손함으로 감당하여야 하여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나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다. 보수적이고 개인 중심적이다. 많은 교회가 사유화 되어 있다. 이것이 잠시 빌려준 사역을 망각한 사례가 아닌가?

세상을 위한 교회, 세상을 위한 존재가 사회에 개방이 되어 있지 않다. 많은 백성들을 위한 구원하고 바른 인생의 길을 제시하여야 하는 사명 때문에 교회는 공적 기관이다. 그래서 교회는 공공화되어야 하고 소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잠시 우리에게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 미미한 인생 80년은 점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인생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모든 것을 위임하여 기회와 시간을 “빌려 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자.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lee709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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