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개방 이후 선교 25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어떤 동역자가 이러한 질문을 한다. “앞으로의 러시아 선교사역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늘상 생각하는 일이지만, 간단하게 무엇이라 말할 수가 없다. 사역 현장이나 방법이 달라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지 진단을 해보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방향을 잡는데 어떤 이정표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역 현장의 모습
동부 사할린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역하는 어떤 분의 모습을 보면, 본교회에서 사역자를 양성하여 각 개척교회로 파송하여 일꾼도 키우고 개척도 하면서 지역복음화를 이루어나간다. 여러 지역을 돌아보지만 일꾼을 키우고 현장을 확장하는 것을 보면서 매우 합당하고 전략적인 사역이라고 생각하였다.
현지 교회 역시 조금만 규모가 형성되어도 즉시 개척교회를 세우고 일꾼을 파송하여 하나님나라를 확장하여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현장의 교회 사역자들은 제자훈련을 잘 받거나 정형화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사명으로 나아가서 배우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면서 사역자로 커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역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한인 사역자들의 사역 형태는, 대부분 교회 개척 사역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런데 2년에 한 개 혹은 3년에 한 개씩, 어떤 기준을 가지고 개척할 경우에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일반적으로 교회 강단을 지키면서 외국인 대상으로 목회하는 것을 개척 사역이라고 하지 않는다. 뻔한 사실을 가지고 교회 개척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또 다른 현장에서 모범적으로 사역하는 어떤 분의 모습을 보면, 중독자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치료하며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삶을 보면 개인의 생활은 거의 없다. 모두가 열린 공간에서 낡은 차를 끌고 이리저리 뛰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시도 적당하게 보내면서 쉬는 일이 없다. 사모의 수고는 말할 수 없다. 요즘 같은 개인주의 시대에, 집에 손님도 들이지 않는 현실인데, 날마다 손님과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정신이 없다. 참으로 대단한 헌신과 수고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모두가 모범적인 사역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러시아 선교 초기 10여년간 각 교단별로 우후죽순처럼 신학교가 난립하던 때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렇게 많은 학교들은 온데간데없다. 그나마 큰 건물을 가지고 형태만 남은 곳도 있고, 집중교육으로 전환한 곳도 있다. 몇몇의 학생들을 데리고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곳도 한 곳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 초창기부터 집중적으로 사역하던 한 곳은 자기 건물을 짓고 안정적으로 학생들을 받으며 교육한다.
반면에 현지 신학교가 더욱 안정적으로 커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행하였던 교육사역은 거의 실패로 마감 중인 상황이 아닌가 진단해 본다. 학생들이 모이지 않고, 물질주의가 젊은이들, 그리고 사역자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어서, 이제는 예전처럼 만회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현장에 있는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하는 한인사역자들이 많다. 7-8개의 크고 작은 한인교회가 모스크바에서 사역하고 있다. 계속하여 줄어들고 있는 유학생, 지사 직원들을 보면 한인교회의 부흥을 이루려 하기보다 현지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격려하며 신앙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정도일 것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가 있다. 헌신과 순종에 대한 의식이 분명하다. 은혜의 분량대로 사역지를 찾아 나간다. 삶의 안정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주님께 완전히 맡기고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찾아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존 전통에 묶여 있는 선교사들에 비하면 참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인 것을 느끼게 된다. 저들에게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은, 젊은이들을 전도하고 양육하여 개척을 지원하면서 하나님나라 확장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역의 전망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지고 신냉전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이전에 비하여 여러 가지 상황은 훨씬 나빠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언제나 한결같이 상황이 아주 나빠지고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실제로 나빠진 경우도 있다. 폭락한 루블화로 인하여 사업을 접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 고비를 잘 견디는 것이 살 길인 것을 알고 견디는 훈련으로 나가는 이들도 있다.
여기저기 소식을 들어보면 온통 위기의 세상이다. 세상이라는 안경을 끼고 인생을 바라보면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 러시아에서 25년을 지내며 어떤 사역이 필요한 것일까를 고민해본다.
첫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것은 사람을 키우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고 본다. 다른 길이 없다. 이것이 성경적이라고 본다. 주님의 사역도 12제자 양성에 올인하시지 않았는가? 사람을 키워야 한다. 개인적으로 훈련하든지, 교육사역을 통해서 하든지, 목회자들을 재교육하든지, 우선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앙공동체를 존중하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다. 내 사람을 만들지 말고, 공동체와 역사와 세계를 위하여 넓은 마음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로 양육해야 한다. 지구촌 시대이다. 세계를 대상으로 목회지를 삼고 사역할 수 있는, 세상을 품은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라는 것이다. 자기 목사님과 교회만을 중심으로 울타리를 치고서 매우 편협한 신앙인을 만들어, 남의 교회 목사님께는 인사도 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현장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이어야 한다. 어디를 가든지 현지 사회가 요구하는 사역이 있다. 그것을 파악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역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에 했기에 반복되지만, 워낙 중요한 내용이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여야 할 듯싶다.
선교사와 한국교회가 원하는 사역이 있다. 그러나 현장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선교사의 역할이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깊이 모른다. 현장의 선교사가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정직하게 사역하려면 현장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당신 현장의 사회적 필요는 무엇인가에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 현지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지고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요즘은 개척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 그리고 어디든지 교회가 없는 지역이 거의 없다. 한인사역자들에게는 언제나 교회 개척은 그만두라고 말한다.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고 비전략적이기 때문이다. 선교사가 원하는 사역을 하려면, 한국교회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면, 개척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생각한다면 현장의 교회를 키우고 그들과 협력하여 전략적인 사역을 이루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선교사들의 사역이 현지 목회자들을 앞서가는 것이 별로 없지 않는가?’ 막말도 해본다. 다만 경험적으로 좀 앞서고, 발전된 한국교회에서 파송받았다는 것 외에는 현지 교회나 목회자들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언어를 그들보다 잘할 수도 없는 것이고, 교육을 잘하는 것도, 사역하는 교회가 탁월하게 부흥하는 것도 아니고, 헌신도가 뛰어나서 발로 뛰는 것도 아니고, 전략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고민하며 나누는 것도 아니고, 설교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정직하게 평가하고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도 한국의 어떤 지도자들은 선교사 파송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숫자놀음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심히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현장을 깊이 알지 못하고 현실을 냉철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기 때문이다. 파송을 계속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전략적 계획 파송이 되어야 한다.
발로 뛰는 현장, 소망을 본다
필자는 지방순회사역을 하면서 다양한 현장의 기도제목을 찾는다. 어느 곳은 사역의 기초가 되는 건물이 필요한 것을 보게 되고, 어떤 곳은 지도자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 경우도 본다. 어떤 곳은 말씀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여, 양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도 보게 된다. 모든 일에는 시간과 전략이 필요하다.
늘 감사하고 감동을 받는 것은 현장의 교회들이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외국인 선교사가 오면 처음에는 무엇을 얻을까 바라는 눈치였다. 늘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말씀을 나누고 가르치는 가운데, 이제는 현장의 교회가 선교사를 위하여 섬기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실제적으로 기쁘기 한이 없다.
말씀을 전하고 나면 연세 드신 할머니들이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손을 꼭 잡으면서 손에 무언가를 쥐어준다. 나중에 보면 500루블(10달러) 혹은 1000루블이다. 여기저기에서 이러한 일들이 생각지 않은 때에 일어나는 것을 본다.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을 보면서 기쁘기 한이 없는 것이다.
러시아 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얼마나 열심히 적는지 모른다. 말씀노트가 있다. 그들은 항상 성경과 함께 이 노트를 가지고 다닌다. 때로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씀을 듣고 기록한다. 이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성경을 찾고 질문하고 감사해 한다.
어떤 형제가 다가와서 하는 말, “사도 바울처럼 이곳에 와서 한 달이나 석 달 정도 거하면서 말씀을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까? 그렇게 하면 어렵습니까? 선교사로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해야 되지 않느냐고 은근히 압력을 가한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움찔한다. 기회를 찾아보겠다고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마음이 무겁고 나의 열정과 헌신이 부족함을 느끼며,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발로 뛰면서 현장을 누비는 일 속에 소망이 생기고 능력이 생기는 것을 안다. 이러한 일에 더욱 협력하며 나가는 것이 또한 멋진 사역의 퍼스펙티브라고 할까!
이제 또 한 해를 보내면서 사역을 점검하고 살필 때가 다가온다. 이것저것 정리할 것도 많다. ‘사역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무엇에 집중하였는가? 결과는 어떠한가? 이것을 바탕으로 신년도 사역의 계획은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 고민하는 시간이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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