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칼럼] 애정결핍의 문제들과 치유의 여정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겨울의 입구에서 추위에 떨며 옷을 겹겹이 입고 너무 멀게 느끼던 봄이, 아랫 지방에서부터 전해져오고 있다. 벌써 입춘이다. 두꺼운 얼음처럼 드리운 계절이 언제 끝날까 싶었지만, 봄은 어김없이 오나 보다. 

인생의 봄도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그 시기가 사람에 따라 다를 뿐이다. 한겨울의 추위만 느끼는 사람은 오랫동안 애정결핍의 증세를 앓아왔을 것이다. 따뜻함을 찾아 헤매지만 그들에게 아직 봄은 멀리 있다.

인생 초반에 늘 봄을 누리던 사람이 중후반에 와서 혹독한 겨울을 맞기도 하고, 인생의 초반에는 끝날 것 같지 않던 혹한 뿐이던 사람이 후반기에 점점 따스한 봄을 누리며 살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공평한 것인지도 모른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추측하건대 인생 초반의 고통은 자신의 잘못이기보다는 부모와 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크며,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이후 겪는 인생 후반의 고통은 자신의 잘못으로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인생 초반에 상처나 학대로 얼룩져 있으면 견디느라 에너지가 고갈되고, 청년기나 장년기에 와서야 크나큰 정신적 문제에 부딪히기도 한다. 가난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행복한 모습을 보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여 자존감은 높아진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 앞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불행한 가장 큰 원인이다!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라. 나의 부모님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소통이 잘 되는 행복한 부부였는지.

부모가 자주 싸우거나 갈등이 심한 경우, 각방을 쓰는 모습을 오랫동안 자녀에게 보이는 경우, 자녀들은 불안을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는다. 쌓인 불안은 우울이 되거나 불행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한다. 방황이 길어지면 끊임없이 자책하며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불행한 기분 속에서 억지로 살게 된다. 부모의 불화는 사랑 부재를 부르고 심각한 결핍으로 인한 병을 만든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어린 시절 채우지 못한 애정결핍의 문제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심리적으로 미성숙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것이 미성숙의 전형적인 증거다. 마음이 아파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도. 

애정결핍은 부모의 사랑이 내면 깊숙이 스며들지 않았거나, 방임되어 있었거나, 학대가 있었거나, 여러 종류의 상처로 인해 생기는 증상이다. 어린 시절의 사랑 결핍의 문제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이다.

애정결핍이 여성에게 미치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행복한 결혼을 방해하고 성숙한 아내나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게 한다. 어릴 때 채우지 못한 사랑으로 너무 외롭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충분히 채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이성친구나 남편에게 완벽한 신적인 사랑을 기대하지만, 그들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 분노를 가장 만만한 자녀에게 풀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나 남편의 이미지를 아이들에게 투사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고통의 대물림 현상이다.  

애정결핍이 심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 완벽한 부모의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갈구하게 된다.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짜증과 화가 치솟게 된다. 왜 이렇게 화가 나고 때로 무기력해지는지 알지 못한 채, 늘 불행한 얼굴을 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소연 씨(가명)는 자신이 늘 외톨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는 집을 나가버렸다. 버림받은 상처가 괴롭혔지만, 반면에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도 많았다. 실제보다 훨씬 과장되고 이상화된 아버지를 상상 속에서 만들며 그리워했다. 20대 후반에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소연 씨의 아버지처럼, 그녀를 돌보지 않았고 차갑게 대했다. 늘 외롭게 하고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그녀의 무의식은 그를 늘 간절히 찾았다. 한번 헤어졌던 연인이 다시 만나도 또 같은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고 했던가. 여러 번 헤어졌다 만났다를 지속하며 더욱 외로워졌고 우울증은 심해졌다. 그녀가 상담실 탁자 저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며 “그가 그리워 미치겠어요…!”라며 눈물을 쏟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기독교인이었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 사랑은 주는 거라 했잖아요, 용서하는 거라 했잖아요. 그래서 그 남자가 저한테 잘못할 때마다 저는 용서해 주고 받아 주고 했어요. 제가 먼저 사랑을 주면 그 남자가 저에게 사랑을 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똑같아요. 그 남자는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헤어지자고 얼마 전에 제가 또 말했는데, 또다시 그 남자가 보고 싶고 미칠 것 같아요. 그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데…. 저는 왜 이럴까요?”   

큰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치유를 이어나가던 소연 씨는 그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 이미지와 닮은 사람이라는 것을 통찰했다.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그 남자에게서 받으려는 무의식적 갈망이 자신을 점점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늘 그리워했지만 볼 수 없었던 아버지를 돌봐 드리고 싶은 무의식의 욕구는, 그 남자의 집요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게 했다. 그 남자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소연 씨를 이용했고, 차갑게 돌아서곤 했다. 마치 소시오패스처럼, 사랑을 줄 줄 아는 남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소연 씨는 자신의 행동이 사랑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건강한 사랑도 아니었고, 애정결핍이 낳은 내적 불행의 결과였을 뿐이다. 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야만 했다.    

모든 여자가 무의식의 아버지와 같은 남자에게 끌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해결된 내적 욕구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나 어머니의 이미지를 닮은 사람에게 강렬하게 끌리게 된다고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고통스러운 내면의 문제를 불러일으키며 알게 된다. 

그래서 치유가 필요하다. 치유는 단절되었던 사랑의 통로가 열리고 사랑이 흘러들어오게 한다. 병적이고 편집증적인 감정이 아닌, 순수하고 치유적인 사랑 말이다. 자신의 내면의 결핍을 통찰하고 들여다 보는 것에서 치유는 시작된다. 그리고 치유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면은 성숙하게 된다. 혼자 하지 못할 정도로 중증일 경우에는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자신이 치유받을 것이 없다고 확언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리석다. 그런 사람을 보면 어리석고 미성숙하고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한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 상처, 결핍, 미성숙의 문제들…. 그런 것들을 드러내고 인정하는 사람이 가장 겸손하고 훌륭하다. 그리고 치유 이후에는 모세처럼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된다. 

나는 상처 없이 온실에서 자란 화초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처와 눈물이 많았으나, 그 사실을 깨닫고 깊이 치유의 여정을 걸어본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천상의 향기가 난다. 그 향기가 무척 그윽해서 그 사람 옆에 늘 있고 싶어진다. 

우리 모두는 아직 남아 있는 상처와 결핍의 문제를 진실하게 인정하고 들여다 보며 치유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내면 가득 차오르는 ‘온유한 사랑’으로 타인의 결핍까지 채워나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길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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