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진관 주인공의 마지막 몇 달간의 삶을 그린 잔잔한 영화 입니다. 잔잔한 이야기만큼이나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 온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중반부에는 손주들과 딸, 아들, 며느리 그리고 홀 어머니 이렇게 3대에 걸친 가족들이 단란한 모습으로 가족사진을 찍는 사진이 나옵니다. 화목한 가족 사진을 찍고 스튜디오 밖으로 벗어나는데 큰아들로 보이는 한 남성이 홀어머니에게 독사진 찍을 것을 권합니다. 다 늙은 나이에 무슨 독사진이냐며 어머니는 거절을 하지만 아들의 요청이라 황망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아들들은 홀어머니에게 독사진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사실 그 사진은 영정용 사진을 찍은거였죠. 영정사진을 찍는 홀어머니를 바라보며 아들들은 담배를 나눠피며, 안타까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족사진 장면은 마무리 됩니다. 사람의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해가며 젊음을 꽃 피웠다가 점점 노화가 오고 늙어가며 서서히 마지막을 준비하며 결국 죽게 됩니다. 이 흐름은 인류 역사가 시작한 순간부터 반복되어 온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모든 사람들에게 드리우고 있어 아들들은 죽음을 앞둔 홀어머니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겁니다.
죽음은 사람이라면 모두다 겪어야 할 인생의 한 과정이므로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기 보단 차근 차근히 준비해야 할 일입니다. 영정사진을 찍는 건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에 진행될 장례 절차를 시작하는 단계인 셈이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영정사진 찍는 걸 ‘재수없는’ 일 이라고 여기는 시선이 아직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관혼상제 중 가장 엄숙하고 진지하게 해야 할 상례의 가장 첫 시작인 영정사진 찍는 일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부모님의 영정사진을 찍는 시간은 부모님의 죽음 이후를 미리 대비하며 그 이후의 가족 일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며, 죽음을 앞두고 자식 된 도리로서 더욱 더 마음을 다하고 조금 더 세심하게 부모님을 돌보는 효도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영정 사진을 찍는 본인도 그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며 앞으로의 삶의 마무리를 잘 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갈 수 있으며, 새로운 삶을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평소 기초수급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장수(영정)사진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비지팅엔젤스 아산지점 김유상지점장은 “장례식장을 가보면 미처 영정사진이 준비되지 못해 신분증의 사진을 확대해 놓은 영정사진을 보곤 하는데 증명사진의 대부분이 무표정한 모습이라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경우가 있다. 요즘은 DSLR 같은 고사양의 디지털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많이 보급되어 이를 활용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봉사활동이 참 많아졌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몹시 부끄러워하시는 어르신들이지만 막상 사진 찍기 직전이나 카메라 앞에서는 담담해 하시면서 찍으신다.’라고 전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을 보면 자신이 찍었던 독사진이 영정 사진임을 알게 된 할머니가 가족 사진을 찍을 때 입었던 단아했던 한복 대신 꽃분홍색 한복을 갈아입으시고, 얼굴 화장과 머리 매무새를 다시 하시고 늦은 밤중에 다시 사진관을 찾으십니다. 무언지도 모르고,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우울한 모습으로 찍혔을 당신의 모습을 조문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사진을 다시 찍으러 오신것입니다. 자신을 기억하고 마지막 모습을 보러 와준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자신의 밝고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주기 위해서 할머니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다시 사진기 앞에 앉았습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한 자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슬프고 무서운 일이라고 무작정 피하고 외면하기 보다는 진정성있게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그들에게 보일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는 영화 속 할머니의 모습은 슬프기보단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담담해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자신의 모습을 거울 앞에서 미리 한번 연습해보는 오늘하루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