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공인하게 만든 밀비오(Ponte Milvio) 전투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테베레 강에 놓인 폰테 밀비오 다리.
▲테베레 강에 놓인 폰테 밀비오 다리.

봄이 오는 길목, 햇빛 따사하게 비추는 어느 날, 폰테 밀비오(Ponte Milvio) 다리를 찾았다. 오래 전부터 이 부분에 대하여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막상 생각만 하고 실행은 미루고 있었다. 사람이 어떤 일을 계획하기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어렵다.

폰테 밀비오 다리는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신앙의 변곡점이 되는 장소다. 줄자를 가지고 재어 보았더니 폭은 7.70m였다. 테베레(Tevere) 강의 현재 폭은 170m다. 조국의 크고 아름다운 한강에 비하면 아주 작은 강이다.

안내판에 쓰인 문구를 보니, BC 534년에 나무로 다리를 만든 이후, 현재는 네 번째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다리는 같은 자리에서 2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로마의 수많은 역사적 질곡을 껴안고 살아온 셈이다. 이 다리를 왕래한 사람들의 수는 지난 2500여 년 동안 얼마나 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들 모두에게 지금도 이 다리를 향한 연민이 있겠지 싶다.

이 다리에 관한 관심이 큰 것은, 콘스탄틴(Constantinus)과 막센티우스(Maxentius)의 전쟁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승리로 인해 콘스탄틴은 단독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고 믿어 AD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다. 이 칙령으로 더 이상 기독교는 음습한 카타콤베로 숨을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다. 저 팔레스타인에서 미미하게 출발한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영적으로 점령하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런데 이 전쟁의 개요는 이렇다. 정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는 현 유고 출신의 장군으로서 황제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빈천한 가정에서 출생했는데, 당시는 신분 상승 방법이 군대에서 출세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는 군대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부하들의 신임도 높았기에 승승장구하게 되었고, 결국 부하들의 천거에 의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유고 출신 미천한 사람이 말이다.

그는 황제가 된 후 막시미아누스를 공동 황제로, 또 두 사람을 부제(Caesar)로 임명했다. 막시미아누스의 근위대장인 콘스탄틴의 아버지 콘스탄티우스를 아들로 입양(293년 3월 1일)하여 부제로 임명했고, 같은 날 니코메디아에서 갈레리우스를 부제로 임명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각각 임무를 부여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동부, 막시미아누스는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콘스탄티우스는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갈레리우스는 도나우를 각각 맡게 됐다.

이렇게 네 황제가 전 로마제국을 나누어, 효율적인 통치를 도모하도록 했다. 이런 체제가 얼마 동안은 순탄할 수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막강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황제의 자리에서 퇴위한다는 선포를 한 것이었다. 물론 평안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있지만,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권력욕이 대단하기에 이런 일은 아주 드물다. 역사적으로 보면 권력욕 때문에 자식이나, 아내, 심지어는 형제도 죽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말이다.

하물며 아직 기력이 팔팔한 황제가 막강한 자리를 스스로 내놓는다는 것은, 로마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1700년이 지난 이 시대에도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몇 년 전 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자진 퇴위한 사건이 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자리를 말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가 하기 싫어졌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절대 권력을 향유하던 시절에 황제 스스로 그 막강한 권력을 놓고 은퇴를 선언하였으니, 분명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결과, 부제들이 자동적으로 공동 황제의 자리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콘스탄틴의 아버지 콘스탄티누스가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 콘스탄틴은 부하들의 천거로 황제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자 야심이 대단했던 막센티우스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다가 스스로 황제를 참칭하였다. 물론 군부의 지지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아버지의 통치 영역인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통치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향하여 반기를 든 셈이다. 갈레리우스는 막센티우스의 아버지 막시미아누스가 임명한 부제 세베루스를 보내 막센티우스를 제거하라고 했으나 오히려 막센티우스에게 죽임을 당할 정도로, 막센티우스의 세력은 막강하였다.

로마는 당시 수도였기에 중요한 거점이었다. 수도를 장악하고 자신이 황제라고 일어선 막센티우스를 그냥 둘 때, 콘스탄틴은 어쩌면 닭 쫓던 개 같은 신세가 될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을 따르던 휘하 장병 5만과 기병 8천을 인솔하여 급히 로마로 진격했다. 권력은 항상 골육상잔의 피비린내를 풍기게 한다. 일찍이 시저와 폼페이우스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오도 그랬다.

콘스탄틴은 로마의 북쪽 외곽도로인 플라미니아(Via Flamina)에 진을 쳤다. 그 때 로마의 황제 막센티우스는 보병 17만, 기병 1만 8천의 군사로 밀비오(Ponte Milvio) 다리에 배수진을 형성했다. 수로 본다면 중과부적이었다. 현대전처럼 놀라운 병기를 동원하여 싸우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수적 우위는 전쟁의 승리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콘스탄틴은 전투에 앞서 수적 열세로 인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전쟁사에도 유례가 없다는 6,25전쟁 중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철원의 백마고지 전투였다고 한다. 중공군 44,000명이 인해전술로 공격해 오는데, 우리는 20,000명으로 막아야 했다. 350m 되는 작은 고지였는데, 이를 열네 번이나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이 10,000명, 우리 군도 3500여 명 전사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시체들을 밟아가며 싸워야 했다고 한다.

콘스탄틴은 아마도 이런 식의 참혹한 전투가 벌어질 것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섬기는 신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시여, 만일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시면 나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꿈에(어떤 책에서는 환상으로 표현하기도 함) “이 기를 가지고 정복하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기는 바로 ‘그리스투스’라는 헬라어 글자(Χρ)의 문양이었다.

콘스탄틴은 이튿날 자신이 꿈에서 보았던 기를 만들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그 기를 앞세우고 전쟁을 치렀다. 수적 열세였지만 콘스탄틴은 실전 경험이 풍부했고, 휘하 군대는 이제껏 전방을 지켰던 백전의 노장들이었다.

상대인 막센티우스(Maxentius)는 주간 전투를 하려고 했으나 점괘가 좋지 않았기에 야간 전투로 바꿨다. 그 날이 바로 자신이 황제에 취임한 날이었기에 행운이 깃들 것으로 믿었다. 그는 중무장한 누미디아(카르타고) 기병을 주력으로 삼았고, 콘스탄틴은 기동력이 우수한 골족 기병을 주력으로 맞섰다.

전투는 막센티우스가 초반에 선전했으나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막센티우스는 밀리는 정황에서 밀비오(Ponte Milvio) 다리를 건너가 테베르(Tevere) 강을 마주하여 진용을 구축하기로 작전을 바꿨다. 그래서 휘하 장병들에게 밀비오 다리를 건너가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밀비오 다리는 폭이 7미터밖에 안 되어, 18만 명이나 되는 군대가 신속하게 통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참으로 성공과 실패는 순간적인 작은 착각에서 비롯된다.

후퇴하는 병사는 마음이 급한 법이다. 그 많은 중무장한 군인들과 기병들이 한꺼번에 급히 건너가기에는 다리의 폭이 너무나 좁았다. 더구나 배후에는 공격하는 콘스탄틴 군대가 있었으니 엄마나 마음이 급했을까? 그 많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후퇴하게 되니 아비규환이 일어나고 말았다. 서로 먼저 건너려고 급한 마음에 밀어붙이게 되었고, 한꺼번에 밀고 당기는 엄청난 무리의 압력에 의해 다리 난간은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밀리던 수많은 사람들은 한꺼번에 강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투다운 전투를 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황제 막센티우스조차 사람들에 밀려 강으로 빠졌고, 허우적거리다가 익사하고 말았다. 그가 입고 있던 튼튼한 갑옷의 무게 때문에 헤엄쳐 나올 수가 없었다. 권력욕에 눈먼 지도자 막센티우스를 어떤 부하가 강으로 밀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은 로마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유는 그가 혹독하게 세금을 징수하였고, 몇 년 전 폭동이 일어나자 수천 명의 시민들을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른 아내를 탐한다는 소문들이 있어, 황제의 인가가 바닥을 쳤다. 한 마디로 그는 로마인들의 신망을 잃어버린 황제였다.

막센티우스 황제의 시신은 로마에 효수되었다가 그의 아버지가 있는 카르타고 보내졌고, 그의 아들들도 모조리 죽임을 당해야 했다. 특히 막센티우스는 콘스탄틴의 아내 파우스타(Pausta)의 친오빠였다. 친오빠의 죽음 앞에서 파우스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권력이란 인정사정 보지 않는 것임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권력 때문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삼복더위에 뒤주 안에 가두어, 굶어 죽게 했다.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콘스탄틴은 이 전투에서 깨끗이 승리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꿈에서 말씀하신 신의 도움을 크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약속한 대로 313년에 밀라노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핍박을 중지하고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선포했다. 결국 기독교는 네로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이르기까지 250여 년간의 치열한 핍박에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지금도 테베레 강은 이 모든 역사를 가슴에 품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구경하는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르치려는 듯 말이다. 흐르는 강물과 함께 수많은 군인들의 함성과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 참혹한 전투로 인해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 같다.

기독교는 이렇게 강물처럼 흘린 피로 자유를 얻게 되었고, 또 얻게 될 것이다. 그 엄청난 피를 흘려 얻은 신앙의 자유를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리는 신앙을 위해 또 다른 피를 흘려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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