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모니카 여사여!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카르타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기원전 2세기에 힘차게 도약하던 로마의 웅지를 단칼에 꺾어버렸던 영웅 한니발이다. 그는 로마로 쳐들어와 거주하면서, 10여 년 동안 로마인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의 이름이 우리처럼 세 자이기에, 그에게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런 작은 것에 쉽게 동질감을 느끼고 친숙함을 찾으려 한다. 나의 종씨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한니발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놀랍게도 “바알을 사랑한다”는,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보면 좀 섬뜩하다. 한 선교사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런 이름이었기에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 BC 236-184)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런데 우리에게는 카르타고에서 정말 중요하게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분이 바로 기독교 역사에서 귀감이 되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다. 모니카 여사가 신앙생활을 했던 교회의 터가, 카르타고의 바다를 접한 곳에 지금도 남아 있다. 2세기에 카르타고 감독 키프리안(Cyprian, 200-258)이 순교당한 자리에 세워진 교회 터다.

▲오스티아 안티카(Ostia Antica). ⓒ한평우 목사 제공
▲오스티아 안티카(Ostia Antica). ⓒ한평우 목사 제공

그 교회의 터는 현재 강대상 자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나머지는 바다를 향해 넓은 잔디밭으로 펼쳐져 있다. 그는 교회를 말살하려는 강력한 박해의 태풍에 항전하면서,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외치던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리고 그 함성을 어거스틴이나 마틴 루터, 그리고 칼빈도 인정하고, 개혁의 기치를 들면서 똑같이 외쳤다.

키프리안은 북아프리카의 영적 거성으로, 복음의 진리를 지키다가 장렬하게 순교했다. 그 교회는 북아프리카의 수많은 영적 자녀들을 품었던 곳이었을 텐데, 지금은 그 자태를 찾을 길이 없는 쓸쓸한 모습으로 길손을 반기고 있다. 마치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신앙생활해야 한다”고 무언의 격려를 하는 것 같다.

교회를 둘러친 야트막한 담벼락에는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이곳을 지켰던 모니카 여사에 대한 동판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곳은 이제 이슬람 국가가 되어 버렸는데 말이다. 그 동판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383, 9, 11. 사랑하는 아들 어거스틴을 로마로 유학을 보내면서 눈물로 작별한 곳”

바로 교회 앞마당이 지중해다. 아들이 배를 타고 떠나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어머니 모니카 여사도 마주 손을 흔들며 눈물을 뿌렸으리라. 한 번의 눈물이 아니라, 아들을 로마로 유학 보내고 그를 위해 끊임없이 눈물로 기도한 어머니다. 방탕한 아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그녀는 아들을 시골에서 도시 카르타고로 유학을 보냈다. 어거스틴의 아버지는 시골의 관리였는데, 아들의 유학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꿈을 가진 어머니 모니카의 고집으로 아들을 도시 카르타고로, 카르타고에서 또다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로 멀리 유학을 보냈다. 오늘날 한국의 어머니 못지 않은, 대단한 교육열을 지닌 어머니였다. 지금도 카르타고에는 현대 문명의 혜택과 상관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하릴없이 길가에 앉아 있는데, 무려 1600년 전에 로마로 유학을 보냈다는 것은 학문에 대한 대단한 열정과 희생을 의미한다.

어거스틴은 베르베르족(누미디아)으로,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일찍이 누미디아 사람들은 로마의 용병으로 유명했다. 그런 전통은 로마 제국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지금 튀니지,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등에 수천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렇게 많은 수가 존재하면서 독립국을 형성하지 못한 민족은, 터키 북쪽과 이란 땅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과 함께 유일하다고 한다.

모니카 여사는 아들을 위해 눈물 어린 기도를 계속 드려야 했다. 그녀의 기도와는 다르게, 아들은 방탕의 길을 계속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이미 십 대 때부터 여인과 동거했고, 로마에서도 그런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급기야 어거스틴은 아들을 낳기까지 했다. 더더구나 그는 당시에 유행했던 마니교에 심취하고 있었다. 고로 인간적으로 보면 돌아오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로마에서 어거스틴은 수사학 교수가 될 정도로 성공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밀란(Milan)의 시 대변인이 되었다. 참으로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거스틴이 해결해야 했던 두 가지 문제로 인해 어머니는 기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니교에 집착하는 일과, 불신자 여인과 동거하는 일이었다. 세상적으로는 출세했기에 박수를 보내야 될 일이었지만, 모니카는 아들의 성공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그녀는 아들을 위해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먼 로마와 밀란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유학생 목회를 하면서 겪어 보니, 유학 보낸 자녀의 신앙을 위해 전화로 부탁하거나 메일을 보내는 부모님들은 거의 없었다. 하물며 1600년 전에 자녀의 신앙을 위해 그런 열정을 가지고 행동했다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북아프리카에서 로마나 밀란까지 가는 것은 너무 먼 길인데 말이다.

그녀의 끈질긴 기도로 결국 아들은 돌이키고, 당시 밀란의 감독 암브로시우스(Ambursius, 340-397)에게 세례를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결과를 통해 어거스틴은 명언을 남겼다. 즉 “눈물의 기도로 기른 자녀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니카 여사는 아들이 당시의 위대한 주교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받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까? 그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변화된 아들과 함께 고향 카르타고로 귀국하려고, 로마의 오스티아(Ostia) 항구로 왔다. 당시 오스티아 항구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화려한 도시였다. 인위적으로 만든 항구를 해군기지로 사용했고, 국제적 화물선이 왕래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에 군인들 사이에 봉급 문제로 황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황제를 제거하고 황제라고 참칭한 마그넨티우스(Flavius magnentius, 303-353)가 바닷길을 봉쇄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니카 여사는 오스티아 항구에서 머물면서 뱃길 봉쇄가 해제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기간에 모처럼 아들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계엄령이 풀리기를 기다리던 중 말라리아에 걸렸고, 소생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여기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다. 그러면서 “세상 끝날에 부활될 터인데 고향에 묻힐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아들이 자신의 장례로 힘들게 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어거스틴의 눈물 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9일 만에 오스티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때 그녀는 56세였고, 어거스틴은 33세였다.

어쩌면 임무를 마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러 가셨는지도 모른다. 방탕한 아들을 향한 끊임없는 기도로 돌아온 아들은, 그 후 위대한 신학자가 될 수 있었다. 반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으로 말이다.

지금 나는 오스티아 안티카(Ostia Antica)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1600년 전의 그때를 돌아보고 있다. 수많은 뱃사람들의 외침에 섞여 하염없이 흐느끼는 어거스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는 눈물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이제 순종하려고 하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말이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수도원을 세우고, 평생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함으로, 바울의 사상을 이해한 탁월한 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후배들에게 성경의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연약한 여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께서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하셨던 것이다.

그녀의 무덤일지 모르는 오스티아에 남아 있는, 작은 납골당의 도자기를 쓰다듬어 본다. 모니카 여사를 추억하면서…….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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