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화산 폭발로 죽은, 벨릭스의 아내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폼페이를 방문하면 21세기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2000년 전에 거주했던 사람들도 놀라운 문명의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당시 폼페이에는 세탁소와 극장, 약국이나 경기장도 있었다. 집집마다 수도관을 연결했고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만들었을 정도다. 전문가에 의하면 선거 벽보도 발굴되었는데, “나를 찍어 주면 시민들을 위해 이런 일을 하겠다”는 구호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씀이 새롭게 와 닿게 된다.

이곳은 BC 8-7세기경에 그리스 사람들이 지배했던 도시다. 그 후 BC 89년에 로마의 장군 술라에게 정복되어 로마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스 사람들이 나폴리를 지배했고, 거기서 가까운 이곳 역시 그리스 사람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사실 나폴리라는 말은 헬라어 네오폴리시(신도시)라는 의미다. 그들의 후예라서 그런지, 나폴리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과 키가 작다는 공통점이 있다.

폼페이에서 멀지 않은 살레르노의 파에스툼(Paestum)도 그리스 사람들이 BC 5세기에 세운 도시다. 거기에 있는 두 신전은 얼마나 원형이 잘 보존되었는지, 아테네에 있는 신전보다 더 완벽한 모습이다. 이런 여러 면을 볼 때, 항해술이 뛰어났던 그리스 사람들이 일찍이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녔고, 도착하는 항구들마다 신도시를 건설한 것 같다. 그리스에는 섬이 약 5천 개나 존재하기에,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을 내야 했고, 그것은 항해술의 발달로 이어지게 되었다.

▲폼페이 유적지. ⓒ한평우 목사
▲폼페이 유적지. ⓒ한평우 목사

그런데 폼페이를 공중에서 보면 생선 모양으로 설계되어 있다. 경기장은 그 머리 부분에 있기에 마치 생선의 눈처럼 구성되었다. 그런데 꼬리 부분에는 치미테로(Cimitero, 공동묘지)가 있다. 이런 건설은 인생의 종착역은 죽음이라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웬일인지 폼페이 멸망 전에 살다가 죽은 이들의 무덤들에 대한 관심이 간다. 역사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 무리들 중에는 대단했던 인물들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도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존재라는 동질감도 작용할 것이고……

폼페이는 화산재로 묻혀 잊힌 도시였다가, 1549년에 운하 공사를 하던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나폴리를 지배했던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발굴한 유물들을 가져갔고, 그 후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룬 1856년경에 본격적으로 발굴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되었다. 이 유물들을 통해 2천 년 전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가 화산재로 멸망한 것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티투스 장군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그는 유대인 여자를 불같이 사랑했지만 황제라는 신분 때문에 원로원의 허락을 얻을 수 없자, 홀로 지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동생 도미티아누스(Domitianus)는 야망이 세조 만큼이나 많았던 인물이었기에, 아버지가 형에게만 세자 교육을 시키는 것에 대해 평소에 불만이 많았었다. 그는 황제가 되고 싶어 안달했는데, 형이 2년 만에 죽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황제가 되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냥 두면 반란도 불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서와 관련된 내용이 폼페이에 존재하기에 그 부분을 써 보려고 서론을 길게 나열했다.

사도행전 24장 24절 이하에 보면 로마의 총독 벨릭스가 나오는데, 그의 아내는 유대인 여자 드루실라였다. 총독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개인적으로 복음을 들었으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겠다”고 미뤄,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천금의 기회를 흘려보내고 말았다. 그는 복음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뇌물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바울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행 24:25).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한다.

그런데 총독 벨릭스가 유대인 여자 드루실라와 결혼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굉장한 미녀였기 때문이었다. 드루실라는 AD 39-44년 유대를 통치했던 아그립바 1세의 셋째 딸이자 아그립바 2세의 막내 누이로, 버니게(행 25:13)와 자매였다. 그녀는 콤바게네(Commagene)의 왕자 에피파네스(Epiphanes)와 약혼하였으나, 그가 할례를 거절하고 유대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파혼했다. 그녀는 15살이 되던 해에 에메사(Emesa)의 왕 아지주스(Azizus)와 그가 할례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결혼했다. 그 후 그녀의 미모에 미혹된 총독 벨릭스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녀와 결혼했다. 유대인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드루실라는 벨릭스에게서 아그립바라는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옥스퍼드성경원어대전에서 인용함).

당시 폼페이는 바닷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였으며, 로마인들의 별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들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환락이 함께한다. 남편이 유대 총독 출신이었고 평소 탐욕이 대단했던 자였기에 많은 돈을 모았을 것이고, 그 결과 이런 별장 지대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당시에 로마 사람들의 로망이었던 이곳 폼페이에 거주했다. 요즘으로 본다면 폼페이는 우리의 제주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수려한 환경과 시원하고 맑은 공기는 휴양지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폼페이에 살던 중, 아들과 함께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재앙을 만났다. 당시 폼페이에는 약 3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날은 폼페이 사람들이 불의 신 ‘불칸’(Vulcan)을 섬기는 축제의 날이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폼페이는 불을 섬기는 축제 중에 불로 망하고 말았다.

보통 이탈리아의 8월은 더위가 최고로 치닫는 때니, 이때 화산이 폭발했다는 것은 뜨거운 화산재, 또는 유독가스가 무더운 기온을 더욱 상승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폼페이 뒤에는 두 개의 산, 즉 베수비오(Vesuvio, 1,277m)와 솜마(Somma, 1,132m) 산이 쌍둥이처럼 있는데, 불을 뿜은 것은 솜마산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 많은 화산재가 그곳에서 12km나 떨어진 폼페이까지 날아와 이 도시를 수 미터나 덮어 버렸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화산으로 인해 2천여 명이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런데 폼페이가 화산재와 가스로 멸망하는 광경을 똑똑하게 목격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해군 사령관으로 마즈노 곶(사도 바울이 하선했던 보디올 근처)에 있었던 대 플리니우스(Plinius)였다. 그는 검은 연기와 함께 화산재가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구조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유독가스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함께 있었던 그의 조카 소 플리니우스는 당시 18세의 나이로 그 처절한 광경을 자세히 기록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국인 리튼 발워가 ‘폼페이 최후의 날’을 썼다.

폼페이는 아주 방탕했던 도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유적들을 보면 당시 이곳에 술집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술에 취하면 가는 곳이 정해져 있었는데,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매춘소였다. 매춘소를 방문하면 손님들이 다양하게 선택하도록 매춘부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지금 봐도 얼굴이 붉어진다. 죄의 양태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이 배가 부르게 되면 추구하는 길은 방탕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방향을 분간할 수 없게 하는 검은 구름과 가스 속에서, 술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살려 달라고 울부짖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폼페이가 화산 폭발로 멸망을 당할 때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과 함께 삶을 마무리해야 했던, 총독 벨릭스의 아내 드루실라. 그녀의 날카로운 절규가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 듯하다. 이런 처참한 소리들을 듣고 삶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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