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 바디스 도미네!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길에는 유명 배우들의 손자국과 발자국을 새겨 놓았다.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많다. 유심히 보니 어떤 배우의 발자국은 무척 작아 앙증맞은 모습이었다. 그곳을 찾아온 수많은 관광객들은, 과거 스크린에서 보았던 배우들이 찍어 놓은 자국에 자신의 손과 발을 맞춰보기도 한다.

그 손자국이나 발자국은 그가 살았던 일생이 집약된 형상인 듯하다. 그것은 결코 고치거나 돌이킬 수 없는, 한 인격의 완성품이다. 덧칠하거나 다시 그릴 수 없는, 개인이 걸어 온 삶의 전 과정이 스며든 족적이다. 그 삶의 내용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주님의 소관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분신을 길가에 찍어 놓으면서 과연 이런 생각을 했을까.

▲성문 밖 아피아 길로 나가는 문. ⓒ한평우 목사
▲성문 밖 아피아 길로 나가는 문. ⓒ한평우 목사

로마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에서 아피아 안티가 길을 따라 성문을 나가면, 왼편으로 ‘쿼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교회’를 만나게 된다. 그 교회 정면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규모가 가장 큰 칼리스토(Callisto) 카타콤베의 입구가 기다리고 있다.  그 주변으로 수많은 카타콤베들이 무리 지어 있다. 카타콤베들이 이 지역에 집단적으로 모여 있다는 것은, 그 당시 핍박받았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으로 피신하였음을 의미한다. 고로 당시의 지도자였던 바울이나 베드로도 이곳을 비밀리에 방문하여 그들을 위로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지역이야말로 주님이 위로가 충만했던 장소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베드로는 네로 황제 시대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더욱 거세어지자, 그를 좇는 수많은 사람들의 제의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우리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사도께서는 이 핍박을 모면하고 살아서 수많은 성도들을 인도해야 한다”는 요구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양떼들은 모두 실망하여 흩어져 버리게 된다는 충고다.

그 충고를 받아들인 베드로는 이 길을 따라 핍박의 현장에서 도망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길에서 로마를 향해 걸어가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베드로는 깜짝 놀라서 그 유명한 질문을 드렸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네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

그렇게 주님이 베드로를 만나 주신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의 발자국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크기를 줄자로 재어 보니 280cm였다. 나보다 15cm가 크다. 그렇다면 주님의 키는 나보다 크셨겠구나 싶다.

▲예수님께서 도망가는 베드로를 만나셨던 자리에 남은, 예수님의 발자국. ⓒ한평우 목사
▲예수님께서 도망가는 베드로를 만나셨던 자리에 남은, 예수님의 발자국. ⓒ한평우 목사

그런데 이 사실을 발굴하여 소설로 완성한 사람이 폴란드의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 1846-1916)다. 그는 이 소설로 노벨상을 받았고, 이 소설은 훗날 영화화돼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베드로가 로마에 왔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로마의 주교였던 클레멘트(Clement, 30-100)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터툴리안에 의하면 클레멘트는 베드로에게서 직접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빌립보서 4장 3절에 기록된 클레멘트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가톨릭에서는 베드로가 27년 동안 로마의 감독으로 있었다고 하나, 그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칼빈은 베드로가 로마를 방문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수용하였으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핍박을 피하기 위해 아피아(Appia) 가도로 도망갔다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보인다.

▲이 사실을 소설로 쓴 시엔키에비치. ⓒ한평우 목사
▲이 사실을 소설로 쓴 시엔키에비치. ⓒ한평우 목사

지금 내가 사진을 찍고 발을 맞춰 보는 이 형상도, 주님의 발일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설명서에는 “이 형상은 복사본이고 진품은 세바스티안 카타콤베에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우리기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형상이 진품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는 현재 핍박이 두려워 그 자리에서 도망가는 베드로가 아닌가를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사역하면서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당회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교인들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올바른 말을 전하기가 두려워 에둘러 말하기도 한다.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현실 때문에 입을 닫기도 한다. 그래서 그 자리를 점잖은 몸짓으로 비겁하게 도망치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는, 도망치던 베드로에게 찾아오셨듯이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그리고 우리 앞에 멈추어 서신다. 마치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과 동행하신 주님께서 지나쳐 가시려는 듯한 모습을 취하셨듯이 말이다. 주님의 발자국은 바로 그런 자리에 선명하게 찍히게 된다.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주님의 발자국. 그 발자국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도망가려고 할 때마다 말씀하신다.

“나는 네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네가 도망친 그 핍박의 현장으로 간다!”고.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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