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칼럼] 슬픔아, 슬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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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면서, 뜨겁던 공기도 가라앉고 열에 들떠 있던 거리도 가라앉고 사람들의 표정도 차분히 가라앉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고즈넉한 가을비가 내리고 있는 거리를 걷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통유리창이 사방의 벽처럼 둘러싸여 있는, 조그만 카페 안쪽에 앉아 비오는 풍경을 구경하며 내 마음도 가라앉히고 있는 중이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을 견디는 동안 오지 않을 것 같은 계절이, 시의 언어를 담고 비와 함께 오고 있나 보다. 불에 달구어진 인두에 데인 것 같던, 뜨거운 통증의 계절 끝에 다시 평화가 오고 있나 보다. 

행복해지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늘 헛되이 돌아가는 듯하다. 수많은 방송 채널에서는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방영하고 있다. 몸에 좋은 음식, 건강해지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의사들의 경고성 프로그램들, 즐겁게 살기 위한 다양한 여행담과 맛있는 음식점 투어 등, 요즘처럼 방송 채널이 많았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사람들은 행복해졌을까?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 밀쳐 두었던 우리의 감정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거짓 행복감을 꾸미느라 에너지를 소진하며 오히려 더 심각한 부작용을 낳지는 않았을까? 잠시 동안 TV에서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팔려 낄낄거리며 웃다가, 금세 의기소침해져서 자신의 현실을 힘들어하지는 않는가?

이렇게 골목 안 조그만 카페의 통유리 창으로 비 오는 작은 골목을 바라보고 있자니, ‘슬픔’이 슬픔을 밀어 올리며 가슴을 적시는 느낌이 치유로 다가오는 것을 마음으로 보고 있다. 한여름, 너무 뜨거워서, 차갑게 식힌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뛰어다녔던 시간들을 뒤로하며, 이제야 슬픔을 맞이한다. 이제 막 시작된 가을의 문 앞에서.

슬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억지 웃음과 억지 즐거움을 오래 가지면 심리적인 문제가 생긴다. 슬픔은 슬픔으로 느껴야 하고, 강물처럼 흘려 보내야 한다. 그래야 거짓 기쁨이 아닌 진정한 기쁨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살아가는 동안 늘 부딪히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골목 어귀를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직관적으로 감지된다. 그들의 표정 속에 흐르는 슬픔을 잡아내며, 내 슬픔도 깊고 깊은 무의식의 기저에서 건져내는 중이다. 그리고 가늘게 흐르는 가을비 속으로 흘려 보낸다. 

어떤 감정이든 나쁘지 않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외로움이든 행복이든 간에 나쁜 것은 없다. 인간 감정의 다양성은 그 감정들을 그대로 느끼고 드러내고 표현해야 치유로 이어질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억압해 두면, 그것들이 심리적 병증을 불러일으키고 정상적인 슬픔을 벗어나 ‘병적 슬픔’으로 이어진다. 병적 슬픔은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슬픔아, 슬픔아! 괜찮으니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지 말고 흘러나와 내가 느낄 수 있게 해 줘…!, 이렇게 말해도 된다. 그래야 당신 내면의 깊은 슬픔이 치유될 수 있다.

슬픔을 품고 있는 마음의 병들,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 강박증, 편집증 등등…. 무수히 많은 마음의 병들이 낫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슬픔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처럼 천천히 흘러내린다. 아주 천천히. 

슬픔이 슬픔에게 말을 걸도록 내버려 둬야 슬픔이 기쁨에게도 말을 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 같았지만, 결국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당신은 슬픔이 없는가. 우리 주님도 슬픔을 크게 느끼며 울기도 하셨는데, 쉽게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슬픔이 왜 없겠는가. 

나는 매일 매 순간 슬픔을 느낀다. 그 슬픔이 나의 영혼을 정화하고, 그 슬픔이 나의 욕심을 씻어내며, 그 슬픔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마치 땅 밑 거름이 옥토를 만들듯이, 슬픔은 내게 소중한 성장의 자양분이다. 

역설적으로, “나는 슬프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이 가장 슬프게 보인다. 

그냥 말해도 된다. 슬프다고, 몹시 슬프다고 말해도 된다. 거짓 웃음 대신 진실한 눈물을 흘려도 된다. 그래야 분노가 씻겨 나가고 온유하고 따스한 기쁨이 햇살처럼 영혼에 흘러 들어오게 된다. 슬픔 가득한 나도, 슬픔을 모르는 당신도, 이제 슬픔에게 말을 걸고 슬픔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슬픔을 흘려 보내자. 그렇게 치유를 불러 오자. 이 가을비의 계절이 다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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