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칼럼] 살아남아야 희망도 있으니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최근 한 자료를 접하고 몹시 마음이 아프고 어지러웠다.

보건복지부 통계 결과,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 수는 7만 1,916명이며, 이는 최근 전 세계에서 발생한 주요 전쟁 사망자(민간인+연합군) 수보다 2~5배 많다. 이라크전쟁 사망자 3만 8,625명보다 약 2배, 아프가니스탄전쟁 사망자 1만 4,719명에 비하면 약 5배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미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10만명당 자살률 29.1명으로, OECD 평균 12.0명보다 훨씬 높다.

너무 많은 자살 사건을 접하게 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누가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예전처럼 놀라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자식을 죽인 후 부모가 자살하거나,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참혹한 일가족 자살 사건이 계속되고 있어도, 금세 다른 뉴스에 묻혀 버리고 만다.

자살을 막지 못하는 것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 모두의 책임이다. 또한 종교적 관점에서는 교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자살을 단순히 개인의 나약한 정신이나 의지 박약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면 점차 자살률은 줄어들 것이다.

밤의 길이가 길어지고 기온이 내려가는 요즘, 평소 심각한 우울증이나 불안증으로 힘든 사람들은 더욱더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죽어야 끝날 것 같은 몸과 마음의 고통은, 앓아 보지 않으면 그 정도의 심각성을 알 수 없다.

인품이 훌륭하고 신앙심도 깊은 노년의 어느 교수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제가 이런 아픔을 겪기 전에는 자살 충동이 있는 사람들을 비난했고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찾아 온 심한 우울 불안 증세가 두세 달 이어지면서, 왜 사람들이 죽고 싶어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자신이 직접 겪지 않으면 결코 이해하지 못해요.”

자신이 그 정도의 아픔을 앓지 않았다고 해서 함부로 사람을 재단하고 비판하면 안 된다.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과 단풍의 아름다움이 온 산을 뒤덮어도 마음에는 볕이 들지 않는 불쌍한 사람들, 그들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치유되지 않고 쌓여만 온 깊은 상처는, 낫지 않고 종기가 되고 암덩어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해도, 생각은 어둠 속에서 마비되고 미래는 절망적인 생각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면서 점점 생명까지 빼앗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한도 내에서 타인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아픔을 많이 겪고 극복해낸 사람이 현재 아픔을 앓고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도 더 많은 수의 자살자들이 있는 이런 나라를 훌륭한 나라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삶이 팍팍하고 다들 힘들다 보니,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도 너무 적다. 부모도 자식의 아픔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부부도 서로 간에 보듬어 주지 않는다.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지 몰라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살 방법을 찾고 있는 이들이 많다.

살아 있어야 희망도 있다. 죽어 버리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너무 아픈 상태에서는 자신에게 희망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우선 살아만 있어 보자. 그래서 고통을 살아내 보자. 고통은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다. 육체의 죽음이 끝이 아니다. 인간은 존엄하고 존귀하며,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해도, 혹시라도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자살한 이후에 더 큰 고통이 있다면 어떡하겠는가. 성경은 분명히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존귀한 자신을 스스로 살해하는 것은 분명히 죄다. 자살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감지하게 된다면, 반드시 자신이 큰 질병에 걸렸다고 생각해야 한다.

병증이 너무 심해서 정신없이 자살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약도 먹어야 하고 심리치료도 받아야 한다. 가만 있으면 정말 자살할지도 모른다. 자살은 용기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흘려 듣지 말고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먹어 주고, 세상에 적어도 한 사람은 자신의 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바란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다. 자살로 잃는 목숨이 더 이상 없기를 기도한다. 나 역시 살아 있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역시 살아 있어야, 머지 않은 미래에 기쁨과 감사 속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는 당신이 있을 것이다. 그날이 더디게 올지라도 분명히 온다고 믿고, 살아서 치유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마음이 아픈 이들의 손을 잡아 주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비난과 악플에 목숨 걸지 말고 함께 가슴 아파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괴로움 속에서 죽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 지금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살아서, 부디 살아서 희망을 노래하는 순간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www.kclat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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