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2)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어떤 계기를 만날 때 새로운 결단을 합니다. 그러나 그 결심이 평생 자신을 지배하도록 만드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대체적으로 결심은 용두사미로 끝납니다. 그 이유는 결단을 이행하는 일에는 큰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지휘자 정명훈 선생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네 살 되던 해부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너무 어려 스스로 피아노 의자에 올라갈 수 없어, 어머니가 번쩍 들어 의자에 올려놓아야 비로소 피아노를 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될 때까지 어머니는 절대로 그를 의자에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네 살 때니 금방 피아노 치는 일에 싫증이 났고, 그래서 내려가고 싶어도 혼자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의자에서 내려 줄 때까지는 말입니다.

울거나 심지어는 떼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스스로 피아노와 친구가 되는 길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웃 친구와 놀면서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데, 그는 피아노와 깊은 교제를 나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 피아노의 건반을 세어 보았더니 흰 건반이 52개, 검은 건반이 36개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건반을 두드려야 했고, 그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반응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 길밖에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소리를 주의 깊게 들을 때 마음이 움직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그 소리들을 귀담아 듣게 되었고, 그 소리와 깊은 사귐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림이었고, 그 소리를 평생의 반려자로 삼아도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깨달은 행복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결코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아름다운 보석이었습니다.

그는 60이 넘어서까지, 4살 때 깨달았던 음악의 세계에 빠져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음악에 푹 빠져 살아가니, 음악이 그에게 충분한 보답을 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11월에 독일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평양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음악이 남북통일을 여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감옥에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그에게 겉사람은 변한 것이 전혀 없었으나, 그의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힘과 열정, 그리고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새들과 대화를 했다는 나무. ⓒ한평우 목사 제공
▲성 프란치스코가 새들과 대화를 했다는 나무. ⓒ한평우 목사 제공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천재적 재능을 지녔던 니체는, 연인과 헤어지고서 아버지처럼 따르던 바그너와 등을 돌리고 자살을 결심합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알프스의 산골 마을 질스 마리아(Sils Maria)라는 곳으로 휴양을 갔다가, 그곳에서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그것은 차라투스트라라는 분신의 발견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초월적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인본주의적이요, 기독교인이 깨닫는 진리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오직 인생이 추구하여야 하는 진정한 깨달음, 그것은 인간의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역사로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를 오가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살던 12세기 말 이탈리아는 연약한 도시국가였으나, 프랑스는 유럽의 최강국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경험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프랑스라는 의미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단순한 생각으로 지어 준 그 이름이, 8백 년이 지난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이름이요 자신의 자녀들에게 너나없이 붙여 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자녀의 이름을 뭐라고 지어 주고 싶으냐는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프란체스코(남아는 프란체스코, 여아는 프란체스카)라고 응답했습니다. 그 뿐입니까? 얼마나 많은 교황들도 그 이름을 사용했는지 모릅니다.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서양에는 그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프랑스를 기억하도록 하려 했던 단순한 의미의 이름, 그 이름은 이 시대 온 세상을 아우르는 놀라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름의 의미, 그것은 실로 대단하다 싶습니다.

그는 그 때부터 하늘을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가슴은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게 되었고, 그는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추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는 성서의 말씀대로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가난한 자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헐벗은 자를 만나면 자신의 입고 있던 고급스러운 옷을 기꺼이 벗어 주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집에 있는 것들을 가져다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은 상인인 아버지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집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은 아버지의 노력과 땀으로 얻은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집안에 있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자신이 먼 프랑스를 오가면서 땀 흘려 번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가치관의 충돌은 가정을 불화의 현장으로, 또는 싸움터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는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집안에 있는 비단과 질 좋은 옷감을 말에 싣고 16Km 떨어진 폴리노(Foligno)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물건들과 말까지 팔았습니다. 돈을 손에 쥐게 되자 고민했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에 대해 말입니다. 깊이 고민하며 걸어가던 중 아시시에 가까워 올 때, 길 옆에 허물어져 가는 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성 다미아노(S.Damiano)를 기념하여 세워졌지만, 오랫동안 손을 보지 않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교회에 들어가니 한 가난한 사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제의 손에 입을 맞춘 후, 지니고 있던 돈 전부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제는 처음에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얼마 전까지 프란치스코가 자유분방한 삶을 살던 청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끈질긴 설득을 했지만, 사제는 프란치스코의 부모를 두려워하여 돈만은 절대로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는 돈을 경멸하는 마음으로 창턱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는 돈보다 더 좋은 지혜를 소유하고 싶어했고, 은보다 더 보배로운 하늘의 것을 얻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돈은 하나님보다도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돈은 우리 곁에서 실질적인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돈 앞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비굴하게 되고 머리를 조아리게 되고, 부모·친척도, 심지어는 부부까지도 상관하지 않으려고 하게 되는 세상입니다. 상해하고 죽이는 일까지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순간부터, 돈의 막강한 힘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데에 있어서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돈과는 거리를 두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 삶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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