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칼럼
어린아이는 엄마가 안보이면 불안해져서 운다. 그러다가 엄마가 나타나면 방긋 웃는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초등학생 때까지 엄마가 자리를 잠시 비우면 괜히 불안해지고 엄마가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을 경험한다. 문제는 이러한 분리불안이 어린아이들에게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성인들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혼자 있을 때 마음이 불안하고 외로울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외로움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통해서만 달래려고 할 때, 정신장애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 대상이 배우자 또는 사랑하는 어떤 존재일 수도 있는데, 만약 상대방이 괴로울 정도로 과도한 집착증을 보이면 그것은 분리불안장애이다.
오토 랑크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은 갓난아이의 탯줄이 끊겨 어머니와 분리되면서 생긴 것이라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생후 6개월 정도의 유아가 의존 대상을 잃어버리면 분리불안이 생긴다고 보았다.
성경에서는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이 하나님께 받은 벌로 인해 에덴 동산에서 내쫓기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서 분리불안을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인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다는 분리불안을 겪는 것이다.
불안에 대응하는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첫째, 외부를 통해서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고자 하는 유형이 있다. 막연한 불안이 엄습할 때 물질적 소비나 구매, 육체적 탐닉 혹은 종교적 심취로 불안을 망각하고자 노력한다. 자기 내부에서 반성을 통해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나 타자의 반응을 통해 불안을 해소하고자 한다.
외부의 반응에 의해서 불안을 잠재우려고 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 잠시나마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분리불안의 상태로 있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집착에 빠지기 때문에 유연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둘째, 불안을 자각하지만 회피하는 유형이 있다. 불안을 잊기 위해서 사회활동과 종교활동에 모든 열정을 다한다. 정작 내면은 너무나 연약한 상태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외로움을 다른 사람과 쉽게 나누지 못하고 은폐하는 것이다.
셋째, 불안을 자각하고 이에 반항하는 유형이 있다. 불안을 직시하고 타자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 자신이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자 발버둥치지만 허공에 부유하는 모습과 같다.
한편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지만, 자신이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사실에 다시 절망하는 소극적인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종교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도움을 굴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사람은 불안 속에 살고 있다. 불안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는 미래를 지각한다는 의미이다. 불안과 절망은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을 직면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분리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석이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마 14:27) 베드로가 물에 빠져 두려움에 떨 때 주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건져 주셨다. 근본적인 해답은 오직 주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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