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트(Clement) 교회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감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땅따먹기하던 어린 시절, 그 때의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그리움. 나이가 들수록 그런 그리움을 갉아 먹으며, 앞을 보기보다는 자꾸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 인생이지 싶다.

그런데 로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워하는 1세기의 교회가 남아 있다. 복음이 아주 따끈따끈하던 시절이요, 신앙의 열정과 순수함이 사람들을 삼켜버렸던 시대다. 그 시절에 존재했던 교회를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은, 성도에게 분명 큰 의미가 있다 싶다.

콜로세움에서 요한 성당(SanGiovanni) 쪽으로 난 길(Via Labicana)을 따라 약 3백 미터쯤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교회당의 탑이 보인다. 그곳에 가면 로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초대 교회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산 클레멘트 교회. ⓒ한평우 목사 제공
▲산 클레멘트 교회. ⓒ한평우 목사 제공

그곳이 산 클레멘트(San Clement) 교회인데, 클레멘트는(95년경) 4대 교황으로 언급돼 있다. 바울이 로마서에 언급한 클레멘트일 수도 있고, 그러나 교황이라기보다는 로마의 주교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싶다. 당시에는 교황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고린도 감독에게 보낸 편지에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개혁자들도 이를 근거로 베드로가 로마에 왔다는 사실을 수용했다. 현재의 교회 모습은 12세기에 건축했고 17세기에 보수를 했다. 이곳은 클레멘트(Clement) 주교의 개인 예배처로 사용됐었다.

로마 시대에는 기존에 있던 건물 위에 건축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지하 3층으로 구성되었는데, 지하 1층은 4세기에 건설된 구조물로,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단지 상층을 지지하기 위한 돌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거기서 또 한 층을 내려가면, 1세기 때 건축된 구조물들을 볼 수 있다. 

이 구조물 중 아치형의 작은 신전이 있는데, 이곳은 이방 신인 미트라(Mitra)를 섬기기 위한 곳이다. 여기서 마지막 층인 지하 3층으로 내려가면 네로 황제 시대에 불탔던 로마 시대 주거지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오면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이 깊은 곳에 물이 흐르다니 신비한 일이다. 이곳은 로마의 일곱 개 언덕 중 하나로, 예부터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냇물이 지하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오래 전에 영국 관광객 소녀가 이곳에서 사라졌는데 후에 오스티아(Ostia) 바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얘기도 있어, 그러잖아도 으스스한데 물소리까지 한층 더 요란하게 들려와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게 만든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이곳에는 미트라 종교의 부조물들이 있는데, 이 종교는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다. 미트라는 페르시아에서 발원한 종교로, 바위에서 난 빛의 신이다. 그 신은 로마의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되기도 했는데,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스에서는 빛의 신으로, 로마에서는 광명과 진실의 신으로 예찬되었다. 그 종교는 수확의 풍요를 기원하고 신께 감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로마의 신들 대부분은 풍요와 행운을 도모하기 위한 대상들이었다.

▲교회 지하에 있는 미트라 신전. ⓒ한평우 목사 제공
▲교회 지하에 있는 미트라 신전. ⓒ한평우 목사 제공

미트라는 쓰러트린 황소 위에 무릎을 대고, 한 손으로는 뿔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단도로 목을 찌르는 상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예식은 남자들만 참석하도록 엄격하게 규제됐고, 참석한 사람들은 그 비밀을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됐다. 발설한 자는 큰 벌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또한 예식에 참가한 자는 지하세계에서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믿었다.  

예식은 맑은 샘이 솟아나는 바위 굴 안에서 행했다. 기원전 2000년 전부터 시작한 이 종교는, 테오도시우스(Theodosius379-395) 황제가 금지하기까지 계속될 정도로 생명력이 끈질겼다. 4세기에 군인들 사이에서 크게 흥왕했고, 미트라를 황제의 수호신으로 모시기까지 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함으로, 미트라교는 급히 쇠하게 되었다. 이런 신전 위에 초대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생명이 찾아올 때 어두움은 항상 물러가도록 되어 있음을 뜻한다.  

60년대에 이스라엘 축구팀이 와서 우리와 친선경기를 할 때, 어느 권사님이 관람하셨다. 그 권사님은 축구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사랑하는 예수님의 혈통적 후손이 온다는 사실 때문에 처음 축구경기장을 찾았다고 한다. 경기하러 온 이스라엘 청년들의 모습을 통해서 주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초대 교회의 형상이 남아 있는 건물이야말로 복음의 순수성의 편린이지 싶다. 남아 있는 건축물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고난을 벗 삼으며 오직 신앙의 길을 걸어가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왔다. 굴을 걸어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신앙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그들은 말하는 것 같다. “어떤 경우에서도 진리를 붙잡고 충성을 다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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