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셋집을 찾아가다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원시시대에는 누구나 자신의 움막을 손쉽게 소유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시대에는 자신의 거처인 움막이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수 년 전 베니스의 북쪽 해안가에 갔다가, 움막이 형성된 곳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오래 전 가난한 뱃사람들이 바닷가에 움막을 만들어 거주했던 모습을 유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그 움막은 기둥을 삼각형으로 세우고 긴 갈대로 둘러친 형태였다. 아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주거 형태였다.

우리는 지금 최고로 발전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데, 왜 집 없는 사람들이 그리 많을까? 나는 뉴욕 존에프케네디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 창밖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바라보면서, 뉴욕에 노숙자가 그리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기야 나 역시 서울에 살 때 월세방을 찾아 정처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이사를 셀 수 없이 많이 다녀야 했으니 말이다. 셋방살이는 언제나 한숨과 설움이 기다려 고달프다. 왜 그리 월세를 지불해야 하는 날은 빨리 돌아오는 건지…….

그런데 놀라운 것은 2천 년 전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입성한 바울도 이태 동안 셋집에서 살았다는 사실이다(행 28:30). 재판을 위해 로마에 왔기에 ‘내 집’에 대한 바람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 기간에 바울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돼 있다. 나 역사 로마에서 30년이 넘게 셋집을 전전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2년 동안 살았다는 말씀에 깊은 동질성을 느낀다.

▲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살았던 셋집 내부. ⓒ한평우 목사 제공
▲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살았던 셋집 내부. ⓒ한평우 목사 제공

바울이 로마에서 셋집에 살았다는 구절을 읽으며, 그 셋집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막연히 그곳을 로마시대에 유대인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던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지역의 어디쯤으로 이해하는 정도였다. 역사적으로 복음이 허락된 것은, 사도 바울이 순교하고 약 250년이 지난 AD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그 오랜 기간 동안 어떻게 바울의 셋집이 보호되어 이 시대까지 보존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바울의 셋집에 대한 관심을 애써 밀어내곤 했다.

그러던 차에 H집사가 그 셋집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무척 반가워서 당장 그와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그곳은 유대인 회당이 있는 곳 근처였다. 제정 로마시대에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강 주변은 유대인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았던 게토(Ghetto)였다고 한다. 물론 게토라는 이탈리아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중세인 1516년 베니스에서라고 하지만, 이미 로마시대에도 유대인들은 집단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특히 그 당시에 테베레 강이 바로 잇대어 흐르고 있었기에, 그곳에는 많은 곡물 창고들과 천막 공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천막은 배의 돛대로 공급되었고, 또한 군인들에게 필수 장비였다. 고로 그 당시에 천막에 대한 수요가 굉장했다고 한다. 바울은 천막 제조 기술자였고 또한 일을 해서 세를 지불해야 했기에, 이곳에 둥지를 트는 것은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곡물 창고에 딸린 방 한 칸을 월세로 얻었고, 곁에는 그를 지키는 로마의 군병이 있었다. 이곳은 강에 잇대어 있는 창고 건물이었기에 항상 습했다고 한다.

찾아가 보니 지금도 그 주변에는 유대인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식당, 바, 여러 종류의 상점들……. 아마도 이들은 2천 년 전부터 군락을 이루며 이곳에 살아 온 듯하다. 그곳에 주차를 하고 바울의 셋집을 찾아 나섰다. 여러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기를 계속하면서, 드디어 당도한 곳이 산 파올로 알라 레골라(San Paolo alla Regola)라는 곳이었다. 큰길을 건너 청소원에게 물어 보고서야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 사이로 서 있는 자그마한 성당이었다. 육중하게 닫혀 있는 성당 문의 초인종을 오랫동안 누르니 젊은 수사님이 나오기에,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담당자가 없으니 오후에 방문해 달라”고 한다. 낙심한 표정으로 돌아서는데,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더니 잠깐 들어오라고 한다. 아마도 먼 동양에서 온 방문객들을 그냥 돌려보내기가 안쓰러웠나 보다.

셋집으로 사용되던 자리는 제단 앞 우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다 허물어졌는데, 고고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밝혀냈다고 한다. 지하에서 4층 정도의 건물 유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지하에 있는 유적은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셋집은 열 평 정도 되는 방이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연금되어 있으면서 자유롭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여기서 썼다고 하니 감개가 무량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바울은 2년 동안 연금 생활 중에서도 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군인들을 전도했고, 자신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쳤다. 더구나 이곳에 2년 동안 수많은 제자들이 드나들었다고 생각하니, 주변에 있는 돌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바울이 머물렀던 바로 그 자리를 나도 방문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이 밀려온다. 바울은 이곳에 머물면서 오직 복음화만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또한 위대한 사도 바울이 셋집에 살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영적 나그네들이니 이 세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교훈이 아니었을까? 바울이 열악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준 말씀을 생각해 보았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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