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병문안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찬바람 한가득 새벽달이 둥글다. 어스름 여명에 코스모스 길이 어둑하다. 어머니가 다가온다.
“송영애 님 보호자님, 첫 번째 수술입니다.”

모진 풍파 등짐 지고 걸어 오신 어머니의 가녀린 무릎이 기어코 망가졌다. 이미 연골이 파괴된 고통을 감내하면서 팔순까지 버티고 버틴 무릎이다. 의술 발달로 괴사된 뼈의 일부를 이식하고 인공 연골을 삽입할 수 있다는 진단 결과가 천만다행이다.

왼쪽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넓은 운동장을 들어설 때의 당혹스러움은 식은땀이 배인 손을 움켜쥐신 어머니의 미소로 넉넉히 이길 수 있었고, 동태머리만 고집하시던 그분의 국그릇에 투실한 동태살을 넣어드리기까지 오십 년을 넘어왔다.

어머니의 가슴에 먹물을 엉기게 한 말썽 많던 청소년기에서부터, 사업 실패로 수감자가 되었던 암울한 기억들까지 어머니는 극한 상황마다 항상 곁을 지켰다.

마음 편히 잡수세요, 아들.
세상 별거 없습니다.
열 번, 백 번 뜻대로 안 되도 나쁜 마음먹으면 절대 안 됩니다.
다 지나고 나면 잘했다 싶은 게 인생살입니다, 아들.

지혜로운 여동생들 세 명의 미래보다 더 소중했던 외아들은 언제나 밖으로 나돌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결국 위험천만한 청소년기의 방황을 물리치셨다. 두 아들을 둔 가장의 입장에서 실패한 참담함은 자살의 유혹을 쓸어안았고, 철길 변에 앉아 막소주를 들이킬 때 엄습해 오던 죽음의 그림자마저도 끝내 어머니를 이길 수는 없었다.

가슴속에 씨앗을 뿌린 어머니의 사랑은 귀밑머리 희어진 오십에서야 새순이 돋는다. 1백 년은 족히 지나야 싹을 튼다는, 아마 살아서는 보지 못하는 꽃이 어머니의 사랑꽃이라는 전설이 가설만은 아닌 듯싶다.

어머니는 그 많은 씨앗을 언제 뿌렸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뿌린 씨앗의 이름이 사랑이라면, 어머니는 언제나 씨앗 주머니를 매달고 다녔을 것이다. 긴 세월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동굴의 종유석처럼, 어머니의 씨앗은 가슴 속에서 아주 작은 미립자로 인고의 시간을 지나왔다.

아들의 존재만으로도 기쁨임을 느끼게 한 어머니의 씨앗은 결국 새로운 지평을 열게 했다. 우상숭배 가문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큰 사랑인 줄 모르고 시작한 신학대학원은, 그저 세상살이를 잊으려는 도피처였다. 그러나 사십일 기도 끝에 집안에 있던 염주, 불경을 모두 소각하고 가문 복음화를 이루신, 하나님의 장대하신 인도하심인 줄, 가족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송 권사님 힘내십시오. 이젠 권사님이 힘을 내셔야 합니다.
맛난 반찬 짐을 들고 기다리는 엘리베이터가 오늘따라 유난히 느리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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