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생로병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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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유수와 같다.

잠시의 젊은 시절이 분주한 경주 속에 지나가고, 일가의 가장으로 동분서주하다 보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중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큰 등짐 몇 개 내려놓고 기지개라도 한번 켜 볼라 치면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은 쾌속의 세월 앞에 서게 된다.

허무할 수 있다.

제대로 몇 날 살아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장년이다. 노후를 준비할 겨를도 없이 분주하게 살아 왔다. 하늘조차 편한 마음으로 묵시해 보지 못한 시간이다.

걸음걸이는 느려졌고, 작은 높이의 장애물 앞에서조차 뛰어넘으려다 멈추게 된다. 혈압은 높아지고,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체지방은 위험수위를 코앞에 두고 있다. 운동과 절제만을 강조하는 건강검진 담당의사의 획일적 경고가 귓불을 스친다.

12월이다.

떡국 한 사발 유쾌하게 비운 설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2월이다. 한 해와 인생의 끝자락이 손아귀에 잡히는 듯하다. 귀밑머리가 희어진 세월은 이제 육십의 재를 넘어야 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생.

절체절명의 사(死) 앞에 누워 있는 사람, 병사(病死)를 앞에 두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직은 더 늙을 시간 앞에 서 있으니 말이다.

기도 제목이 생겼다.

병(病)의 시간을 뛰어넘는 사(死)의 시간을 허락하옵소서!

늙어가는 시간을 어찌 피할 수 있으랴.

수분이 증발된 얼굴 주름은 더 깊어지고, 소변 줄기는 가늘어지면서, 미래를 꿈꾸는 시간보다 과거를 돌아보는 잔소리로 젊은이들을 지루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젊은이의 시간이나 늙은이의 시간이나 매일반인 것은, 생명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공통된 환경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라도 꿈과 소망이 없으면 병(病)의 시간이고, 늙은이라도 꿈과 소망이 있다면 생(生)의 시간이다.

늙어가는 시간을 현명하게 소일할 수 있게 하는 목적과 비전을 찾아야 한다. 경륜에 따라 쓰시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열정을 실천해야 한다.

동(動)적인 열정만이 큰 힘은 아니다. 눈 내리는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고 묻는 고은 시인의 '고요의 힘'을 느껴 보고 싶다. 새벽 미명에 오르신 그리스도 예수의 산 기도와,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충언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정중동(靜中動)이다.

어지간한 일로 갈등과 반목의 환경에 휩쓸리지 않는 자제력과, 어떠한 불의의 환경도 이겨낼 수 있는 경륜의 저력이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생.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한 일생이라면 아름다운 생(生)이고,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한 늙음이라면 아름다운 소멸의 섭리 안에서 순리의 시간이다.

그러나 앞날이 구만 리 같은 젊은이들일지라도, 교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성도일지라도, 그리스도 예수를 가르치는 목회자들일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밖에서의 기상과 타락은 병(病)의 시간일 뿐이다.

성도에게 사(死)의 시간은 없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날에 우리들의 죽음은 소멸되었다. 사(死)의 시간을 멸하여 주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병(病)의 시간에 머물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신다.

성도에게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세상 시간 중 생로(生老) 뿐이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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