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성 칼럼] 황금률 정치: 샌더스의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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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돈이 인간을 섬겨야지, 인간이 돈을 섬겨서 되겠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 이를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한다(성경 원문은 '너희는 타인에게 바라는 대로 그에게 해 주어라'고 기록돼 있다).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는 것, 이것이 황금률이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을 스스로 먼저 실천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기독인의 행동강령 가운데 황금과 같이 중요한 교훈이다. 황금률을 정치나 사회 정의에 적용해 보라. 정의의 기본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을 자신이 먼저 행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민주당 대권 후보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황금률 정치'를 외치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2016년 2월 2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샌더스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전 국무장관과 불과 4표 차이로 차점자가 되었다. 높은 지명도와 정치 경력을 가진, 퍼스트 레이디였으며 국무장관이었던 '주류 엄친딸'과,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미국 대통령 선거를 흥미로운 드라마로 이끌고 있다. 대선 민주당 경선 2차 관문인 2016년 2월 9일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 경이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1위가 되었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520만 달러(약 62억 3천만 원)의 선거 자금을 모금했다.

샌더스는 유명세를 가진 정치인이 아니다. 버몬트주에서 정치 활동을 했고, 무소속으로 상원의원을 지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한다. 사회주의를 꿈꾸는 샌더스가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올라 큰 지지를 얻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젊은이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고, '사회정의 구현'을 주요 모토로 내걸고 있다.

샌더스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텔레비전 토론(2016. 1. 17)에서, 2008년 금융 위기를 언급하며 월스트리트의 부도덕성을 강하게 질타했다. "대형 금융기관이 법을 위반해서 벌금을 50억 달러나 내는데도, 억만장자인 경영진 가운데 기소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청소년들은 마리화나만 피워도 감옥에 간다"고 말했다. 샌더스는 자본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매수하고 있다는 말로 청중의 환호를 끌어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그동안 받아 챙긴 거액의 강연료 등에도 날선 공격을 가했다.

샌더스는 사회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경찰의 과잉 대응에 대해 공정하게 수사하고 기소하겠습니까?" 하고 묻자, "사법 당국은 이런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경찰의 체포 도중에 사망한다면 법무장관의 지휘 하에 즉각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말로, 사법 당국의 엄정하고 공평한 법 집행을 재차 강조했다.

버지니아주 소재 리버티대학교(Liberty University)는 샌더스를 2015년 9월 14일에 초대해,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을 하게 했다. 이 학교는 보수적 기독교 대학으로, 공화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도덕적 다수'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활동한 제리 파웰 목사가 설립했다.

샌더스는 이 강연에서 미국 사회의 문제점, 정치 이슈,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 가치가 무엇인가를 말했다. 자신이 꿈꾸는 '황금률 정치 철학'을 소개했다. 그가 꿈꾸는 사회는 실상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마을이다. 샌더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하게 살아가는 미국을 질타한다. 위대한 미국에 '도덕'과 '정의'가 결여되어 있다. 국민 1%가 부를 독점하는 미국 경제 시스템 때문이다. 미국은 왜 범죄자를 가두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실업 상태에 빠진 청년들을 구제하는 데는 돈을 쓰지 않느냐며 부도덕한 사회라고 한다.

샌더스는 낙태나 동성결혼과 같이 논쟁적인 이슈에는 보수적인 리버티대학교의 입장과 이견을 가졌노라고 솔직히 말한다. 그러면서도 소득 재분배, 의료보험 제도, 청년 실업 등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문제 등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정의와 도덕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바라보길 바란다고 역설한다.

굴곡진 인생의 주인공 샌더스는, 자본주의의 본산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무모한 정치인으로 보인다. 그는 외모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영화 같은 삶을 살아왔다. 유대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친척들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학살당했다. 아버지와 함께 뉴욕에서 살다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에서 낙선을 맛보았다. 그의 '정치' 이력은 이 낙선을 한 것과, 뉴욕의 브루클린칼리지를 다니다 시카고대학교 정치학과로 옮기면서 본격화되었다.

샌더스는 인종 차별 금지 위원회, 비폭력 조직위원회, 청년 사회주의자 리그 같은 조직에 참여했다. 대학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했지만 2년 만에 헤어졌고, 28세 때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 레비 샌더스를 낳았다. 47세 때, 아이 셋 가진 현재의 부인과 재혼했다. 샌더스는 30대와 40대의 '황금기'를 변변한 고정 직업 없이 목수, 기고가, 조사원, 독립영화 제작자로 전전했다. 지역 신문사에 글을 보내고 라디오에 출연하며 자신의 신념을 알려나갔다. 40세에는 겨우 10표 차이로 버몬트주 최대 도시 벌링턴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10년간 이웃들의 문을 두드려 이야기를 나누며 쌓아 온 신뢰가 바탕이 됐다.

샌더스는 젊어서 마르크스와 레닌 트로츠키를 읽고 시위에 나섰다가 체포되기도 했단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부정하고 혁명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북유럽식 복지국가를 이상으로 삼는 '사회민주주의자'라고 함이 옳을 것 같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다고 해도, 미국인들이 '홧김에 서방질'하는 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꼴통 사회주의자'를 지지할 리 없다는 어느 분의 지적이 옳은 듯하다.

가난한 대중은 부를 축적한 1%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그들의 부를 대중과 나눠 모두가 함께 잘 살자는 그의 공약에 열광한다. 그러나 기독교 일각에서는 역사적으로 무지하고 부질 없는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그의 공약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고, 소득재분배론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정부가 권력을 이용해 부를 재분배하는 사회주의를 권한 적이 없다. 사회주의는 실현 불가능함이 검증되어 폐기된 정치 이데올로기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양립하거나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마치 이 둘이 연결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해방신학 때문으로 보인다.

▲버니 샌더스의 연설 모습. ⓒ페이스북

▲버니 샌더스의 연설 모습. ⓒ페이스북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되지 않든,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려 온 그의 75년 삶과 미국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그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우리가 정작 샌더스에게 배울 것은, 정치철학만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의 중요성이다. 왜 정치를 시작했느냐 하는 질문에 그는 답한다. "1932년 히틀러라는 자가 선거에서 당선됐다. 그 결과 유대인 600만 명을 포함, 5,000만 명이 학살당했다." 정치와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준다. 기독인이 정치 영역을 등한시하지 않아야 할 까닭을 보여 준다. 정치인을 뽑는 투표용지 안에 나라의 번영과 개인의 복지, 그리고 경제의 발전과 통일이 담겨 있다. 희망, 절망 등이 들어 있다.

샌더스가 일으키는 황금률 돌풍을 보면서, 나는 그의 정치철학의 옳고 그름이나 가치를 떠나, 과연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정치철학이 있는가 하고 질문하고 싶다. 식상한 정치구호를 외치면서 오로지 권력과 지위를 탐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탁월한 아이디어를 가진 것처럼 나서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는 썰렁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금률 정치철학'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한국에 등장하면 단연코 대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는 철학자의 몫이다. 그 철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신이며, 하나님의 나라 실현에 대한 갈망이다. 정치 영역은 인간 생활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세속적 영역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하나님은 종교적인 면에서만 인간과 관계를 가지는 분이 아니시다. 기독교적 정치원리의 근원은 모든 가시적 또는 불가시적 영역을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이다. 이 하나님의 주권은 국가, 사회, 교회 등에 나타난다. 인류에게 주어진 근본적인 주권이다. 인간에게는 죄가 있다. 하나님은 죄 때문에 행정관을 세웠다. 정부의 모든 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서 나온다.

대권을 탐내는 한국의 정치가들이 샌더스 따라잡기, 샌더스 벤치마킹을 할 법한데, 그렇지 않다. 샌더스가 핵무기를 가진 고립된 나라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로 보기 때문인가? 햇볕정책의 완패로 의기소침한 탓인가? 도대체 정치인들이 황금률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나 했을까? 하나님의 주권이 무엇이며, 죄가 없으면 정치나 국가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이해하는가? 국가의 권위는 긍극적으로 국민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지역과 나라의 경계를 정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샌더스가 기독교계에 던지는 메시지도 무시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복음 없이 사회정의만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교회는 복음만을 가진 방주가 아니다. 기독인은 황금률, 황금률 정치를 고무하고 실천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기독인이 부자와 빈자의 불평등을 좁히는 정치활동에 앞장서야 함은 마땅하다. 칼빈주의 기독교 문화관은 기독인의 사회, 정치, 문화, 예술 등 각 영역 활동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님이 모든 선한 영역의 주시라고 선포한다.

교회의 에너지를 복음이 아닌 것에 소진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주께서는 기독인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명하신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되고, 황금률에 따른 철저한 실천을 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 가르침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중요한 영역이 다름 아닌 정치와 국가이다. 산상보훈과 황금률 정치철학을 가진 기독 정치인은 비기독인들에게도 환영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윤리를 기준으로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최덕성 박사

글쓴이 최덕성은 신학자다. 현재 브니엘신학교 총장(2013-)이며, 교의학 석좌교수이다. 고신대학교-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1997-1998)였다.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쓰기>,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정통신학과 경건>, <신학충돌>, <교황신드롬>, , <위대한 이단자들> 등 약 20권을 저술했다. 미국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를 졸업했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로부터 '신학자대상(2001)'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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