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마흔세 살 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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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순간 통증과 피 흘림, 그리고 칠흑의 어두움. 교통사고다.

마주 오던 대형 화물차가 중앙선을 넘었다. 여인의 차를 정면으로 덮친 화물차의 커다란 바퀴는 하늘을 향한 채 한참 동안 돌기를 멈추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모양이다. 화물차에서 쏟아진 화물과 자동차의 파편들로 거리는 아수라장이 됐다.

"죽었나 봐." 행인들이 몰려든다. 눈 깜빡이는 사이, 삼십팔 년 지나온 세월이 한 폭 그림으로 스쳐간다. 멀리서 '앵앵' 구급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인은 만신창이가 된 채 의식을 잃었다.

벌써 이틀이 지났다. 여인은 깨어나지 않는다. 아직 호흡은 붙어 있다. 무당의 말대로 마흔세 살도 못 돼 죽을 운명인가 보다. 경찰 조사 결과 화물차 운전사의 졸음 운전이다.

여인은 사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남편을 대신해 사찰 지붕을 개량할 돈을 사찰 주지에게 전하고, 내친 걸음에 불공을 드리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사찰 주지의 말을 믿고 길흉화복을 예감했다. 새로운 사업을 계획할 때마다 사찰 주지는 법당 미화를 위한 기부를 요구했다. 무리하다 싶은 사찰의 요구까지 다 들어 주었으나, 남편의 사업은 패망일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되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저렇게 하는 일마다 망할 수 있을까.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만취가 되어 새벽잠을 깨웠다. 무남독녀에게 목숨이라도 내어 줄 친정아버지는, 그런 사위를 지원하기 위해 아낌없이 전답을 팔아댔다.

친정아버지가 절간을 찾게 된 것은 타락한 목사 때문이었다. 친정아버지는 동대문 일대에서 제법 큰 토지를 소유한 거부였다. 마을에 들어선 개척교회를 도우며 신앙생활을 하던 친정아버지는, 어느 날 목사 놈들은 다 도둑놈들이라고 소리치며 분개했다.

친정아버지가 출석하던 교회 목사는 출석 교인 삼십 명이 되면서부터 성전 건축을 서둘렀다. 자영업을 하거나 직장에 다니는 교인들은 모두 대출을 받아 건축 헌금을 했다. 남전도회에서 열 한 명, 여전도회에서 여섯 명. 친정아버지는 성전을 지을 토지와 거액의 비용을 헌금했다.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예배를 드릴 임시 막사까지 제공했다. 

교회는 축제 분위기였다. 교인들은 성전 설계도를 임시 막사에 걸어 놓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교회 통장에 모인 성전 건축 헌금은 4억 원을 넘었다. 삼억 육천만 원이면 지을 성전이었다. 수요예배 다음 날, 건축위원장이 목사를 찾았다. 목사는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은 온종일 꺼져 있었다. 교인들이 성전에 모여들었다. 설마.

목사는 주일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여집사와 함께 도주했다는 풍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여집사의 남편은 임시 막사를 불태웠다. 성전이 잿더미가 됐다. 친정아버지는 잘했다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날 이후, 친정아버지는 사찰을 드나들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지 사흘이 지나도록 여인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미약한 맥박은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렸다. 부러지고 찢긴 몸을 수술하면서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단언했다. 출혈 과다. 수혈의 효과도 자신의 피가 절반 이상 남아 있을 때 기대할 수 있다고 가족들에게 전해 준 의사는,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장례를 치를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흘째 아침, 여인은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곁을 지키던 아들이 병실을 뛰쳐나가 소리쳤다. 의료진이 달려 왔다. 여인은 신음을 냈다. 낯선 병실 천장이 무너져내릴 듯 빙글 돈다. 웅성거림이 들린다. "기적입니다." 의사의 흰 가운이 여인의 허망한 시야를 덮었다.

"인생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소리치고 싶은데 입이 열리지 않는다.

여인은 나흘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지난날들이 차창의 풍경처럼 스쳐간다. 속았다. 사찰 주지에게 속고 무당에게 조롱당한 지난 세월들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하다. 이제라도 더 이상 속으면 안 된다. 사찰 주지의 얼굴이 교활한 미소로 다가 온다. 따귀라도 때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충동이 솟는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랴. 사찰 주지나 무당이나 모두 사탄의 피해자들인 걸. 후회와 감사가 연일 여인의 상처 위에 머물렀다.

여인은 의식을 잃은 나흘 동안 성가대였다. 학창 시절, 하나님을 찬송하던 교회 성가대의 모습이 또렷하게 재생되었다. 나머지 지나온 모든 흔적은 의미 없는 시간들로 기억에서 사라졌다.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듣고 계셨다. 덧없는 인생 중에 환희의 날이 있음을 일깨워 주셨다. 그날 여인은 의식을 회복했다. 꿈이 아니었다.

여인은 다섯 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하며 춥고 긴 겨울을 병실에서 보냈다. 의식을 회복하고 처음 입을 연 여인은 복음을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살아야 한다, 아들아."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나흘 동안, 여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목격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들이 반드시 믿어야 할 창조주임을 깨닫는, 각인의 시간 여행이었다.

남편은 결국 부도가 났다. 친정아버지 재산까지 몽땅 집어삼킨 남편의 사업은, 감당할 수 없는 빚만 남긴 채 도산했다. 공장은 물론, 살고 있는 집까지 경매에 넘어갔다. 사원들의 임금을 체납한 죄로 남편은 수감되었다.

낙엽이 수줍은 채색을 시작할 무렵, 여인은 아홉 달 만에 병원을 나섰다. "같이 살자." 친정부모가 마련한 집은 제법 마당이 넓었다. 서울 외곽, 마석이라는 곳이다. 동대문 거부였던 친정 부모는, 살아서 서울 갈 일 없을 거라며 귀촌을 선택했다. 마당에서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가 꼬리질을 쳤다.

여인은 날마다 강변을 걸었다. 유속이 느린 강물은 여인이 내버리는 과거의 허영들을 소리 없이 삼켜 주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사재기하던 백화점 VIP 고객, 여러 단체 모임에서 부리던 호기, 돈을 물 쓰듯 퍼 주며 쫓아다닌 우상 숭배의 행사장, 공권력을 지닌 부인들에게 빌붙었던 아첨의 웃음, 더 많이 가지려는 남편의 고군분투까지. 모두 부질없는 세상 놀이였다.

함박눈이 지천을 뒤덮은 연말연시, 철야기도를 하면서 여인의 작은 소망은 열정의 불씨로 바뀌었다. 목사의 타락을 목격한 친정아버지를 기도와 눈물로 설득한 여인은, 동네 작은 교회를 출석하며 이듬해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겨울이 깊어가면서 가족들은 평정을 되찾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평온함이 햇살처럼 나앉았다. 살 만하다. 부족해도 마음이 편안하다. 친정아버지는 교회 목사의 헌신으로 믿음을 회복했다. 목사는 여러 차례 남편을 면회하면서 복음을 전해 주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출소하는 날, 남편은 성경책을 옆구리에 낀 채 여인이 내민 두부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남편은 술을 끊고 온라인으로 덤핑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적은 수입이지만 가족 모두 화목한 풍요를 누렸다.

서울 인구가 급증하면서 남양주까지 확대된 서울 그림자는, 마석까지 부동산 값을 치솟게 했다. 가구단지가 들어서고부터 행락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귀촌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교회는 부흥했다. 친정아버지는 성전 건축위원장을 자청했다. 마을 입구에 아름다운 전원 교회가 완공되었다.

여인은 목사 안수를 받았다. 다음 날, 여 목사는 복음을 안고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없었다. 간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목사는 발걸음을 돌렸다. 작두를 탈 때마다, 칼 방울을 흔들어댈 때마다, 굿판 내내 독주를 마셔대던 무당이다. 지옥불에 떨어졌을 무당에 대한 안타까움이 밤을 새워 달길을 따라 흐르고, 영생 얻은 은혜와 감사는 새벽닭이 울도록 무심한 세월을 넘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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