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많이 아프다. 심장이 오그라든다. 겨울 내내 이부자리를 걷지 못했다. 병원을 가야 할 때만 겨우 추스른 몸은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떨리는 손바닥을 가득 채운 약들을 털어 삼키면 천정이 빙글 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잘 낳아 놓고 어느 풍파에 얻어 걸린 병마인지 지긋지긋하다. 차라리 죽고 싶다. 입술까지 차오르는 절규 앞에 어린아이들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럴 때마다 차마 부르짖지 못하고 가래침을 삼킨다. 눈물 범벅이다. 심장이 오그라들 때마다 머리카락까지 쭈뼛 서게 하는 통증은 온몸을 전율케 한다.
불안하다. 언제 심장에 통증이 유발될지 모르는 폭풍전야와 같은 불안함이 온몸을 경직시킨다. 고압전류 같은 통증이 지나가면 온몸은 식은땀에 젖어 한기를 몰고 온다. 가뭄의 논바닥 같은 입술은 어느새 하늘 메아리를 기다린다. 하늘이시여, 불러 주시옵소서.
남편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국내 굴지의 항공사에 근무하는 남편은 회식 한 번 참석하지 못하고 퇴근한다. 퇴근길에 장을 보고, 집에 들어서면 주방에서 넥타이를 풀고 다음 날까지 먹을 음식을 조리한다. 남편을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본 기억이 아득하다.
가슴이 답답하게 옥죄어오기 시작하면서 여러 차례 정밀 검사를 받아 보았지만, 통증의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병명이 없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병명이라도 아는 것이 나을 성싶다. 선천적으로 심장 기능이 약하다고만 한다. 심리적 요인도 있을 수 있다는 심장내과 의사는 신경정신과와 연계해서 치료하기를 권장한다.
돌이켜 보면, 햇살 좋은 5월의 신부가 된 후부터 계획하는 일마다 파탄의 불씨가 된 시간이었다. 남편을 돕는답시고 투자한 주식은 연일 하향세를 면치 못했고, 건강식품을 파는 회사는 다단계 판매로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
해외여행을 함께 다니던 이웃에게 보증을 선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이웃은 이미 도피해 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범 여부를 의심받아 수사 대상까지 되었다. 남편 월급과 집안 집기들까지 압류당했다.
병명을 모른 채 앓아 누운 세월이 길다 보니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주변 사람들은 무병(巫病)이라는 입방아를 찧어댔다. 소문은 일파만파 무당집을 드나드는 친척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다. 굿을 하란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자는 생각에 눈물샘이 마르도록 울어댔다.
꿈을 꾸었다. 고사리손을 벌려 한 움큼 얻은 사탕을 주머니에 넣고 찬송과 율동을 배우는 여자아이를 하나님께서 안고 계셨다. 자상하고 인자한 품에서 여자아이는 모처럼 고른 숨을 내쉬었다. 실로 오랜 만에 느껴보는 평안의 호흡으로 잠든 여자아이는, 이마에 손을 얹으신 하나님의 체온을 느꼈다. 항상 곁에 계신다는 약속의 말씀은 여자아이를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잊고 살아온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 그랬다. 하나님을 잊고 살아온 결혼생활의 풍파가 일순간 하얀 물거품으로 부서졌다. 엉거주춤 상반신을 일으켜 앉았다. 잠에서 깨어 남편을 불렀다. 집안을 정돈하던 남편이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내일 우리 가족 모두 가까운 교회에 나가요." 토요일 정오의 햇살은 유난히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남편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고갤 끄덕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잊고 살았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게 재생된다. 고사리손을 모으고 간구한, 유년기의 기도들을 잊지 않고 계신 하나님을 만나면서 심장의 울림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기적이다.
그날부터 기도를 했다. 하나님과 소통하면 생기가 돈다. 먹자. 먹어야 산다. 병마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섭생이다. 한 달 만에 앉아서 기도를 하게 됐다. 남편의 고액 월급으로 사치를 부리며 해외여행깨나 다니던 호사가 부끄럽다. 가족에게 주는 항공료 할인 혜택을 핑계로 주야장천 싸돌아 다니던 호들갑이 후회스럽다.
기도는 거울이다. 내면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특별한 거울이다. 기도가 삶을 지배하면서 호흡은 평안해졌다. 기도는 창조주와의 소통이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기도의 신비는 언제나 환경과 관계없는 평안을 제공한다. 기도하면 기쁘다. 기도하면 인생의 진실한 가치를 깨닫는다. 기도의 끝은 언제나 감사한 풍요로움이다.
기도의 시간이 호흡을 주장하면서, 인생의 가치들이 새롭게 정립되었다. 신학대학원 원서를 접수하고 돌아오는 길에 낯익은 승용차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목회자의 길을 만류하던 남편이다. 이번 달부터 월급을 다 수령할 수 있게 되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기도는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아우르는 무풍지대의 평안이다.
남편과 신학대학원 교정에서 무릎을 꿇고 우러른 하늘에, 이름 모를 새 떼들이 날아오른다. 마치 해바라기가 만개한 들녘과 같은 하늘에 밀짚모자를 쓰고 걷는 농부처럼 해바라기 숲으로 모습을 감춘다. 오, 하나님 아버지!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