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생명력은 대단한 것 같아. 저 나무들 좀 봐. 겨울 동안 죽은 것처럼 움츠리고 있다가 봄이 되었다는 것을 어찌 알고 저렇게 초록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낼까. 시커멓게 죽은 것 같던 나뭇가지에 어떻게 저런 예쁜 꽃잎들이 가득 피어날 수 있을까. 봄은 위대해. 나무도 대단한 것 같아. 참 놀라워."
상담센터가 있는 국회의사당 옆 벚꽃나무들 아래를 걸으며 내가 딸아이에게 한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겨우내 나무는 죽은 것처럼 보였다. 찬바람이 불자 모든 잎들을 다 땅으로 보내고 죽은 듯 움츠리고 있었다. 4월의 봄바람이 불어오자 꽃나무들은 일제히 앞다투어 꽃망울을 내밀더니, 드디어 온 힘을 다해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윤중로의 벚꽃나무는 무척이나 예쁘고 화사해서 수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아마도 겨울나무처럼 겨우내 움츠리고만 있던 사람들도, 꽃길을 거닐며 봄맞이를 하고 싶어 오랫동안 기다려 왔을 것이다. 위대한 봄. 모든 죽은 것들을 다시 살리는 계절이다.
조금 힘들어도, 혹은 죽고 싶을 만큼 힘들더라도, 조금만 힘을 내어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 흩날리는 벚꽃잎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 있다는 기쁨을 조금은 누려도 괜찮을 것이다. 이제 곧 진달래며 철쭉이며 빛깔 진한 꽃들로 봄동산은 더욱 화려하게 물들 것이다. 그곳에서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며 차갑고 어두운 기운도 털어내자. 마음의 병을 앓으며 힘겹게 치유의 한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고 있는 이들에게도 힐링이 되는 봄꽃을 선물하고 싶다. 그들 역시 꽃같이 어여쁘고 사랑스럽고 향기롭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이렇게 봄꽃이 지천으로 피고 온 땅이 향기로운 꽃향기에 물들어도, 여전히 우울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말없이 꽃 한 송이 내밀어 보면 좋겠다. "너는 왜 아직도 그 모양이냐?"라고 핀잔을 주지 말고, "너도 꽃처럼 아름답단다"라고 말해 주면 좋겠다.
깊은 우울이 병이 되어 깊어지면 꽃향기도 맡지 못한다. 오히려 봄 햇살이 원망스럽고, 다른 사람처럼 즐겁지 않은 자신을 책망하며 더욱 슬퍼하게 된다. 이렇게 깊은 우울과 슬픔 속에 있어 본 적이 없다면 함부로 조언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아프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말을 아껴야 한다. 말없이 햇빛 좋은 날 손을 잡고 꽃나무 아래를 함께 거닐어 주는 것이 백 마디의 조언보다 낫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으면 그래도 다행이다. 힘들다고 말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잘못된 조언을 하면, 가엾은 사람을 더 죽음으로 내몰게 되기도 한다.
기운이 너무 없으면 햇살 아래에서 나무둥치에 기대어, 나무의 생명력을 느끼고 눈을 감고 꽃잎이 나부끼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 내부에서 들끓는 아프고 슬픈 생각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 노력해 보라. 꽃잎 하나에 자신의 감정 하나씩 묻혀 날려 보라.
많이 아픈 사람들에 비해 조금은 더 건강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아픔에 대해 판단하지 말고 경청해 주어야 한다. 그 마음의 소리를 깊이 들어 주고 공감해 주는 일만 하면 된다. 꽃길 아래서 봄의 치유력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꽃길 아래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연이 치유하도록 가만히 서서 기다리면 된다.
흩날리는 꽃잎들이 아픈 마음에 가 닿아서 치유의 향기를 부어 주고 치유의 능력이 되어, 아프고 힘든 모든 사람이 봄나무들처럼 다시 살아나길 기도한다. 음울한 방안에서 나와서 봄길로 나가기를 바란다. 스스로 치유력이 생기고 회복탄력성이 커질 수 있도록 한 번만 더 용기를 낼 수 있길 바란다.
치유의 봄이 왔다. 절망에 빠져 있던 겨울의 찬 기운을 씻어내는 봄바람도 영혼을 흔들며 일렁인다. 연분홍색 야들야들한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날리며, 우리를 봄 한가운데로 복과 은총처럼 이끌고 있다. 잠깐이라도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그것도 괜찮은 것이다. 그 느낌에 감사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하며, 지금 봄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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