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프랑스의 위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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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종교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야만적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추악하고 잔인하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한다. 이런 일들은 과거에 있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언제나 기회만 되면 폭탄처럼 수많은 인명을 삽시간에 살상할 수 있는 무기 같은 것이다.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는 IS의 만행들과, 그 연장선인 프랑스에서의 테러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인 윤리조차 거절하는 무자비한 폭거다.

16세기 당시 교황권의 부패로 시민들의 원망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특별히 인문주의의 진흥과 인쇄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점점 더 학문에 눈을 뜨고 무지에서 벗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로마가 멸망해 수많은 학자들이 대거 구라파로 탈출함으로, 저들이 지니고 있던 찬란한 학문은 서방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들 중에는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한 학자들이 많았기에 성경을 원어로 보려는 운동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성서의 의미는 좀 더 분명해지게 되었다. 또한 개혁자들의 외침은 사람들을 깊은 영적 잠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

이런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앙리 3세가 죽어 왕통이 끊기게 되었다. 이때 앙리 2세의 부인이었던,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왕후 카테리나(Caterina de Medici, 1519-1589)는 위그노(Huguenot: 친구, 동맹자, 서약을 지키는 자)의 리더요 나바르의 왕 앙리를 자신의 딸인 공주 마르그리트와 정략결혼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공주는 프랑스의 대표적 귀족 기즈(Guise) 공작과 사랑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카테리나는 이런 정략결혼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구교와 위그노의 화합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왕권을 우습게 여기며 왕 위에 군림하는 구교의 귀족 기즈 가문도 부르봉 왕가의 사위를 통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싶었다. 이런 정치적 술수는 친정 피렌체에서 읽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통해 터득했는지 모른다.

독실한 구교도인 공주의 안목으로 볼 때, 앙리는 미남도 아니고 신교도인 위그노였기에 그에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고로 내키지 않는 결혼식에서 주교에게 "이 사람을 남편으로 맞아 사랑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묵묵부답하자 오빠인 프랑스 왕 샤를 9세가 억지로 그녀의 머리를 숙이게 했으니, 불행한 결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앙리 4세 역시 결혼을 엄청나게 반대하는 파리의 귀족들을 무마하기 위해, 내키지 않았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했다. 아무튼 앙리는 결혼식을 위해 1592년 8월 호위병 8백여 명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오랜만에 찾아온 '신교의 자유'에 대한 큰 소망을 가지고 말이다.

결혼식을 위해 위그노와의 화합을 도모하는 축제가 벌어지던 8월 24일 밤이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에 기즈 공작은, 결혼식에 참석한, 앙리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위그노의 지도자 콜리니(Gaspard Ⅱ de Coligny, 1519-1572) 제독을 비밀리에 살해했다. 기즈 가는 이번 기회에 핵심 위그노 몇 명을 죽임으로 본때를 보여 주려고 했으나, 한번 피를 본 구교도들은 야수가 되었다. 결혼식은 엉망이 되었고, 주인공 앙리조차 체포되어 무려 4년 동안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후에 앙리 4세는 아내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했고, 위그노의 수장이 되어 구교 세력에 대항하게 되었다.

▲위그노들이 예배를 드리던, 파리 동부에 있는 Wassy 곡물 창고. 이곳에 구교도들이 불을 질러 250명이 순교당했다. ⓒ한평우 목사 제공

▲위그노들이 예배를 드리던, 파리 동부에 있는 Wassy 곡물 창고. 이곳에 구교도들이 불을 질러 250명이 순교당했다. ⓒ한평우 목사 제공

그 후 왕권을 허수아비로 만든 기즈 공작은 앙리 3세에게 죽임을 당했고, 앙리 3세 역시 광적인 수도사에게 암살을 당하자, 나바르는 어부지리로 정당하게 프랑스 왕위를 얻었고 후에 앙리 4세가 되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에 일어난 살상으로 파리에서만 3천여 명이,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신앙을 부인하게 하는 압박에 대해서는 싸울 수 있다는 칼빈의 교훈을 좇아, 위그노들은 드디어 무기를 들고 구교도에 격렬하게 대항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이 된 앙리 4세를 파리의 구교도 귀족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양분된 상황이었다.

앙리 4세는 전쟁으로 점점 피폐해져 가는 조국을 수습하기 위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1593년 유명한 말을 했다. 즉 "파리는 종교를 바꾸어서라도 취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선언하고, 위그노를 버리고 공개적으로 가톨릭 신앙으로 갈아탄 것이다. 이런 행위는 파리의 귀족들을 안심하게 했고, 덕분에 그는 비로소 1594년 2월 27일 노트르담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30년 이상(1562-1598) 지속된 동족상잔의 전쟁을 낭트 칙령으로 종식시켰다.

그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을 일으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국민들에게서 앙리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는 국토도 넓혔는데, 캐나다의 퀘백은 그가 이룬 공적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나바라 여왕 쟌느달브레)에게서 신교도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구교와 신교를 여러 번이나 왔다갔다 했고 부인이 50여 명이나 되었다. 지금도 프랑스 대통령들은 이런 관습을 충실하게(?) 지켜 오는 것 같다.

그러나 앙리 4세는 후에 구교도 극렬분자의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증손자 루이 14세는 가톨릭의 중흥을 도모하는 자로서, 앙리 4세가 발표한 낭트 칙령을 무효화하고 위그노들에게 다시 엄청난 핍박을 가했다. 전국적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위그노들을 학살했다. 위그노 목사는 무조건 죽였고, 남자는 5인 1조로 평생 거룻배의 노 젓는 일을 시켰는데 그 노 하나의 무게는 무려 130Kg였다. 여자는 종신형에 처하고, 어린아이들은 수도원으로 보냈다. 이 박해는 시민전쟁으로 확산되어, 왕정이 무너지는 1798년까지 이어졌다.

▲위그노 교회의 십자가. ⓒ한평우 목사 제공

▲위그노 교회의 십자가. ⓒ한평우 목사 제공

이런 핍박 때문에 무려 30만 명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로 떠났다. 이 위그노의 후예들 중 스위스의 시계공들, 독일의 면직공들, 또는 영국의 수많은 기술자 및 기라성 같은 학자들, 여러 명의 대통령이 나왔다고 한다. 어떤 분은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는데, 만일 프랑스에서 위그노들이 떠나지 않았다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프랑스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200여 년 동안 산발적으로 일어난 '위그노에 대한 핍박'으로, 당시 프랑스 인구 1700만 중 약 4백만이 떠났다. 그로 인한 프랑스의 국가적 손실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루이 14세는 3년 만에 4명의 후계자들이 죽어가는 슬픔을 경험해야 했다. 그는 72세의 나이로 죽으면서 비로소 철이 들었는지, 처절한 유언을 했다. 무리한 전쟁을 하지 말라고 말이다. 종교적으로 위그노들을 잔인하게 핍박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루이 14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기는커녕 만세를 부를 정도였다.

진리를 파수하기 위한 길, 그 길은 항상 목숨을 담보로 한다. 위그노들이 얼마나 신실했던지, 구라파 여러 곳에서는 제발 위그노들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빈번했다고 한다. 한 도시에 위그노 2천 명만 거주하면 그 도시가 변했다고 한다. 도덕적으로 정직하고 근면한 도시로 말이다.

저들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았고, 진리를 따라 죽어갔다. 1562년 당시 파리에 1,200개의 위그노 교회들이 있었고 성도 수는 2백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많던 아름다운 신앙의 후예들인 위그노, 이들은 철저한 칼빈주의자들이었다.

하나님, 우리에게도 이런 성도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그래서 도시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게 하옵소서! 캄캄한 어둠에 짓눌려 있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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