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추방당한 선교사들이 개인적으로 학생들 가르쳐
잘 아는 목사님이 제주도에 교회를 설립한다 하여 축하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의 방문이고 다행히 일정에 여유가 있어 2박 3일을 제주도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부족한 저를 위해 제주시 황사평 마을에서 7년째 목회를 하고 계시는 K목사님이 가이드를 자처하며 헌신 봉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섬기시는 교회 이름이 독특했습니다. 이 이름으로 인해 일약 제주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한 이 교회 이름은 '시편교회'입니다. 사람들은 도시에 있는 교회 이름으론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황사평 마을은 제주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곳으로, 아직 사람들의 손때가 덜 묻은 청정 지역이었습니다. 산과 밭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이 마을의 중간쯤에 자리잡은 시편교회는 목사님이 손수 벽돌과 편백나무를 엮어 지은 약 30평의 1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말 그대로 시편 찬송이 절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저는 김 목사님을 통해 제주도의 속내를 조금 들여다 보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주도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괸당문화'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괸당'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종의 독특한 가족 문화이기도 하고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침범당하지 않으려는 이기주의적 행동이기도 하지만, 안으로는 아름다운 가족애가 듬뿍 묻어 있는 그런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한편 괸당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완강한 거부감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제주도 토박이들은 자기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모든 사람을 '삼촌'으로 호칭합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외지인을 '삼촌' 하고 부릅니다.
또 한번은 아이에게 전도를 하여 교회에 출석을 시켰는데, 그 다음 주일에 그 가족 모두 교회로 나와서 소동을 피우며 아이를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부터 집안 친척들 모두가 아이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집단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집안 어르신인 할아버지를 찾아가 설득하고 복음을 전한 결과, 지금은 그 가족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이렇듯 '괸당문화'는 외지인의 입장에선 참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의 하나입니다.
또 제주도엔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행위가 여전합니다. 가령 제주도 동북 해안에 위치한 김녕 같은 지역은 아직도 뱀신을 섬기고 있고, 남부 해안의 차귀도에선 용왕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제주도 전역에는 현재 약 450개의 교회가 설립되어 있지만, 도심에서 외지인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몇몇 대형교회들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교회들은 지금도 이런 괸당문화와 우상숭배, 미신적 행위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제주도는 여전히 복음의 미개척지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주도에 불과 2-3년 전부터 갑자기 신학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기존에도 제주도에 신학교는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언급하는 이 신학교 열풍은 중국발입니다.
알다시피 현재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은 당국의 교묘한 방해 정책으로 인해 많은 제약과 압박을 받고 있고, 심지어 노골적으로 선교사들이 추방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중국 곳곳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며 신학교를 운영하던 선교사들이 갑자기 터전을 잃자, 대안으로 택한 곳이 바로 국제화 도시를 꿈꾸는 제주도였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제주도에 무인가 신학교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중국 학생들이 너도나도 제주도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K목사의 안내로 이런 신학교 현장을 방문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통역 봉사를 하는 한 청년은 학생들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한 달에 한 번씩 비자 문제로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입국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수진과 커리큘럼 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몇몇 목사님들이 돌아가며(혹은 혼자서) 서너 과목을 형식적으로 가르치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신학교는 소속 노회와 총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자, 독립적으로 법인화하여 운영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학생들이 진짜 신학을 목적으로 이곳에서 기숙을 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그 물음에 그냥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신학교가 지금 제주도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노회나 총회에서도 모르는 선교사 개인의 신학교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다른 한 곳의 신학교는 2년 과정인데, 이들은 이 과정을 제주도에서 이수하면 중국으로 돌아가 중국 교단의 안수를 받고 바로 목회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설립될 중국교회들이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삼척동자도 다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교는 주의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반드시 설립하고 운영해야 할 기관입니다. 그러나 신학교를 노회나 총회의 동의 혹은 인가 없이 개인이 운영할 경우, 그곳에서 가르칠 신학은 매우 왜곡·변질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계시해 주신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상과 비성경적인 복음을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또 신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선 반드시 3요소라고 하는 합의된 커리큘럼과 전공별 교수진, 그리고 학위수여와 안수 과정에 대한 명확한 법적 장치 혹은 인준 과정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이런 일로 인해 진짜 참된 신학교를 운영하고 계시는 주의 일꾼들의 명예와 효능이 삭감될까 두렵습니다. 한국교회 차원에서의 정립과 정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샬롬.
/최더함(Th.D., 역사신학, 개혁신학포럼 학술위원 및 총괄책임, 아리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