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카르티에 시계를 찾으러 베니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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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우리나라의 형편이 좋아져서 신혼여행을 구라파로 오는 부부들이 많다. 그래서 신혼여행 오는 분들을 상대로 아르바이트하는 교우들이 있다. 이들에게서 듣는 생생한 경험담은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 이야기들을 듣노라면 내가 결혼했던 1970년대가 생각난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는 살기가 어려웠다. 결혼식 날 형님의 친구분이 승용차를 내 주어, 서울 주변을 드라이브할 수 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사진 찍으려면 워커힐이 좋다면서 사진작가인 친척분이 동승했다. 그런데 결혼식에 참석한 선배 목사님 내외분이 자신들은 신혼여행을 가 보지 못했다고 우리가 타는 승용차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그래서 5인승 차에 6명이 비좁게 타고 난생 처음 워커힐로 갔다. 사진사분이 거기서 찍는 것이 좋다고 인도하여 주었다. 워커힐에서 사진을 찍고 목이 말라 함께 주스를 마셨는데, 얼마나 비싸던지 경비로 받은 돈의 절반 가까이를 지불해야 했다. 그 후 동행했던 분들과 헤어지고 우리만 타고 홀가분하게 청평가도를 드라이브했는데, 마침 앞서가던 버스가 커브에서 졸음 운전으로 뒹구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냥 보고 갈 수가 없어서 팔을 걷어붙이고 그들을 구조했다. 그 후에 유성호텔에 갔는데, 그날 너무나 번잡스럽게 보내서 그랬는지 아내는 결혼 시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돈이 없어 값싼 시계를 사줬었기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었지만.

가이드의 즐거운 경험담이 이어졌다. 신혼여행팀을 맞이하기 위해 로마공항에서 기다리다 보면, 중년 부부가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저 사람은 아니겠지 싶은 나이 지긋한 사람들. 차일피일 미루다가 늦어진 경우도, 재혼한 경우도 있겠다 싶다.

그가 안내한 신혼부부는 재력이 있는 이들로, 남자는 40대 중반 정도 여자는 30대 초반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부가 쇼핑 도중 티격태격하더니 마침내 언성을 높이며 볼썽사납게 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생을 어느 정도 경험한 이들의 싸움이었기에 양보가 없었을 터!

▲베니스의 성마르코광장(Basilica di S.marco). ⓒ한평우 목사 제공

▲베니스의 성마르코광장(Basilica di S.marco). ⓒ한평우 목사 제공

싸움의 동기는 시집 식구들의 선물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다툼은 끝날 줄을 모르고 마냥 강물처럼 흘러갔다고 한다. 그래서 낭만이 흐르는 곳, 아름다운 베니스에 도착해서도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으니, 이런 때 제일 힘든 사람은 가이드라고 한다. 설명을 들르려고 하지도 않으니 설명하기도 어렵고 말이다.

모든 사람이 평생 한 번만이라도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낭만이 좔좔 흐르는 아름다운 곳에 신혼여행 올 정도면 복된 부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온 남편은 예약된 특급 호텔 더블룸을 마다하면서 "각방을 쓰고 싶으니 방을 하나 더 잡아 달라"고 고압적으로 나오고, 가이드는 난감할 수밖에 없을 터! 오호통재라!

잘못 대처했다가는 수당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배상 청구만 잔뜩 당하게 되겠으니 말이다. 화는 나는데 분풀이할 데가 없을 때 강아지 등때기라도 때려야 하는 게 우리네 속성이니 말이다. 이를 어쩔꼬? 경험 없는 목사가 죽네 사네 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부부를 보고 한쪽 편을 들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때 가이드는 "갑자기 방을 잡을 수 없으니 예약된 방을 이용해야 된다"고 설명하여 억지로 합방하도록 했다고 한다. 가이드는 이제 합방했으니 문제는 봉합되었다고 여기며, 그날 밤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가이드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이니 이제 끝났겠지"라 생각하고 중재자로서 뿌듯함을 느끼며 비릿한 바닷바람을 기분 좋게 온몸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부부가 그 방에서 얼마나 지칠 줄 모르고 크게 싸웠던지, 성질 급한 남편은 아내에게서 선물 받은 카르티에(Cartier) 시계를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고 한다. 당시 1천만 원이 훨씬 넘는 고급 시계였다고 한다. 그 사실을 로마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아 불어터진 몰골을 하고 있는 남편을 통해 듣게 되었다고 한다. 던지고 나서도 미련이 남아 있었을 터! 진작 알았다면 시계를 찾으러 차를 돌렸을 텐데 말이다. 아아, 그 비싼 시계를 누가 주웠을까? 그 넓은 호텔의 푸른 잔디밭을 기계로 깎을 텐데, 그 비싼 시계는 잘린 풀들과 함께 통 속으로 들어갔을 게 뻔하다. 오호통재라, 카르티에여!

신혼부부가 한번 다투면 안내하는 사람이 좌불안석이 된다고 한다. 팁도 못 받고 말이다. 남편이 운전석 옆자리에 타고 아내는 뒷자리에 떨어져 서로가 말없이 창밖에 시선을 두고,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게 되니 말이다. "이런 쪼잔한 사람과 결혼했으니 장래가 뻔하다" 그런 방정맞은 생각으로 충만할 터! 비싼 시계를 창밖으로 던져 버린 용감한(?) 신랑은 귀국하자마자 이혼한다고 방방 뛰었다고 한다. 신부는 조롱하는 눈빛으로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꼿꼿이 앉아 있었고.

귀국을 위해 휴미치노(Fiumicino)공항에 픽업해 주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남편이 "저런 여자와 같은 비행기를 탈 수 없으니 다른 비행기 표 한 장을 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가지고 있던 비행기 표는 버리겠다고 만용을 부리고. 그러나 지혜로운 가이드는 별 변명을 다 하여 예약된 비행기를 이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나는 저런 여자와 옆자리에 앉아서 갈 수 없으니, 내 표를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달라"고 하여, 그것까지 거절 수 없어 그렇게 해 줬다고 한다.

그 부부는 지금 어찌 되었을까? 헤어졌을까? 아니면 한층 더 깊어진 닭살 돋는 사랑을 과시하고 있을까? 여기까지 경험담을 듣던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자 갑시다, 카르티에 시계 찾으러 베니스로! 그 비싼 시계가 카사노바의 후손(베니스는 카사노바의 고향이다)들을 횡재하게 해서는 안 되지요. 말이 안 되지요! 불쌍한 카르티에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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