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지리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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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생겼다.
뒤처지던 남자가 실족을 했다.
앞서 걷던 여자가 돌아온다.
실족한 남자는 십여 미터 바위 아래에서 연신 신음소리를 낸다.
떨어진 곳이 풀숲이라 다행이다.
허리를 다친 모양이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여인 곁으로 등산객들이 모인다.
손을 잡고 가셨어야지요?
깊은 숨을 몰아쉬고 여인은 덤덤하게 말을 꺼낸다.

어쩌면 손을 놓고 따로따로 걸었던 우리가 진실에 가까운지 모릅니다. 손을 잡고 걷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손을 잡은 만큼 서로에게 진실하고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진실하지 못한 마음을 망각하고 있거나, 진실하지 못한 서로의 격간을 통념 속에 가둔 채 가식적 습관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때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 진실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쓸데없는 환경을 수용하고 있거나,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않고 있거나, 실행해야 할 일들을 실행하지 않고 있는 과정들을 고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가 고뇌의 진원이면서도, 문제의 진원을 타성적 환경 때문인 양 핑계대고 모순의 당위성을 구축하면서 살아가지요. 자신이 설정해 놓은 가상의 당위성으로 자신의 허물까지 덮어버리려는 억지 속에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위험이 따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손을 놓고 걷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진실을 선택했지요. 물론 가식일지라도 손을 잡고 걷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고립될 것입니다. 각자 걸을 때 생각은 풍요롭습니다. 그 또한 외부의 개입이라면 더욱 커다란 고립이지만 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또한 정상에서 손을 잡기로 한 약속입니다. 목적은 같은 것이었지요. 생각은 비슷한 범주 속에 있었지만, 실천하는 방법의 차이랄까요? 시작부터 우리는 다른 연인들보다 힘들었던 건 분명합니다. 산행을 포기할 수도 있는 단약수 같은 과거의 집착들이 각자에게 많이 남아 있었지요. 어쩌면 산행을 왜 계획했는지 명분까지 망각될 정도로 서로가 다른 환경에 흡착되어 있었습니다.

결국은 한 사람이 먼저 미숙한 상대를 수용하거나 한 사람이 죽어야만 소멸될 수 있는 의식의 차이가 고립으로 이어진 겁니다. 서로가 과거의 습관이나 의식에 대하여 기꺼이 수용할 수 애정이 생성되지 않았다면 손을 잡지 않는 것이 진실 아니겠습니까? 손을 놓고 걸었던 건 지금의 환경에서 최선의 진실을 선택한 셈이지요.

우리의 미래가 어느 연인들보다 아름다운 동행이 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시작을 했으니까요. 실족은 산행의 끝이 아닙니다. 위선을 숨긴 채 손을 잡는 사람들보다, 진실한 시작 앞에서 함께 한 처절함이 가슴에 남아 있으니까요. 사고는 언제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고의 인자 속에서 살아갑니다. 지리산이요? 또 와야지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정상에서 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세석 평전.
실족한 남자를 후송하기 위한 헬기가 세찬 회리바람을 모은다.
주홍 원추리 꽃이 땅끝까지 허리를 뒤틀다가 이내 멀어지는 헬기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킨다.

지리산은,
여전히 지리산이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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