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에서 쫓겨나신 성령, 강단에서 내침 받으신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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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개혁신학] 강단에서 성령을 내치지 말라

▲이경섭 목사.

▲이경섭 목사.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오시네(찬송가 325장)"라는 찬송시는 성도의 근본 마음에서 쫓겨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지만,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 홀대받는 성령의 처지를 빗댄 것 같기도 합니다. 강단은 성령이 중생과 구원 역사를 도모하는 주된 사역지입니다. 전통적으로 청교도와 개혁교회가 강단을 중시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개혁신학자 스프로울(R. C. Sproul)은 "강단은 때로는 위선과 불신으로 가득 찬 곳이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강단이라는 방편을 택하셨다. 어떤 협잡꾼도, 선동자도, 경건한 자도, 불경한 자도, 하나님이 강단에 부여하신 위엄을 깨뜨릴 수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강단이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음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복음의 권위와 복음이 불러오는 성령의 현현 때문입니다. 반대로 강단이 카리스마를 잃고 무력해지는 것 역시 복음의 결핍으로 성령이 현현해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성령이 강단을 탈취당한 때가 있었는데, 곧 중세 암흑기 1,000년간 입니다. 복음이 배제되고 스콜라 철학과 미신이 강단을 점령했을 때 성령은 강단에서 설 자리를 잃었고, 그 결과 기독교는 무력함과 타락의 늪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업적을 든다면, 강단을 미신과 지성의 향연장으로 만든 스콜라 철학을 퇴출시키고, 본래의 주인인 성령께 되돌려드린 일일 것입니다. 그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스콜라철학과 사투를 벌인, 터툴리안(Tertullianus, 155-230)의 제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입니다.

이성을 경멸하는 루터의 태도가 일부 기독교인들을 광신자로 내몰게 한 원흉처럼 비치기도 하나, 그는 다만 복음의 비의성(秘意性)을 강조한 것이지 근본 지성을 배척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그러했듯, 루터는 복음을 인간 이성으로 알아차릴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로 여겼습니다(고전 2:11, 골 1:26). 그는 복음을 이해하는 데 이성이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여겼고, 이성을 '살해해야 할 음녀(淫女)'로까지 지칭했습니다. 루터에게 있어 복음은 '비밀'을 말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에게는 복음을 해득해 줄 조력자(성령)가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500년 전 종교개혁 전야처럼, 강단에서 복음이 홀대받고 성령이 내쳐지고 있습니다. 강단에서 거처를 찾지 못한 성령은 귀신을 쫓고 은사를 행하는 음습한 지하 예배실이나 기도원으로 숨어들어, 은사자들의 '조무사(a assistant)'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초림하신 예수가 "세상에서 머리 둘 곳이 없으셨듯(마 8:20)", 오늘 성령이 교회 강단에서 머리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복음이 강단에서 홀대를 받는 것은, 복음을 기독교 입문 시에나 필요한 초보 지식쯤으로 여기는 무지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나 사실 가장 고차원적인 진리는 복음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복음은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고전 2:9)"이고, 사람의 지혜로 해득 불가한 것입니다(고전 2:8, 3:20). 바울이 복음을 성령과 능력과 결부시키고(살전 1:5) 복음을 가르칠 때 "사람의 지혜의 말이 아닌 오직 성령으로(고전2:13)" 한 것도, 복음은 오직 성령으로만 해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시들이 복음과 성령을 연결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닙니다.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게 하소서… /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맘에 교훈 되도다(찬 506장)".

문자적 의미야 국문을 깨친 정도면 다 알 수 있지만, 행간에 감추인 구속의 도리는 성령만이 깨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 전도자 폴 워셔(Paul Washer)는 그의 저서 <복음>에서 "유대인에게 십자가에서 죽은 나사렛 사람을 메시아라고 선포하는 복음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었고, 헬라인에게 유대의 메시아가 육신을 입고 나타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복음은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었다. 바울은 성령께서 개입하시어 청중의 생각과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면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할 때마다 멸시와 조롱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초월적인 복음은 성령의 설득으로만 받아들여진다는 뜻입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버니언(John Bunyan)은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그곳이 성령 임재의 현장이 됐는지를 명확하게 우리에게 전합니다. "내가 설교할 때, 특히 공로 없이 그리스도에 의해 생명을 받고 싶다는 가르침을 말할 때는 마치 하나님의 사자가 내 뒤에서 나에게 힘을 주시는 것처럼 생각됐다. 내가 그것을 설명하고 증거를 들어 사람들의 양심에 그것을 새겨두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에는 아아! 이상한 힘과 하늘로부터 이 증표가 내 영혼에 임했으므로, 나는 '나는 믿는다. 이것은 확실한 것이다'라고 했다." 복음을 선포하면 반드시 성령의 증거가 따르고, 성령의 증거가 따르는 복음 선포의 현장은 성령 임재의 현장이 됩니다.

동일한 복음을 늘상 듣지만, 양파 벗기듯 늘 새롭고 비의(秘意)하여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 주시오 / 평생에 듣던 말씀 또 들려 주시오(찬 236)"라고 간청하게 됨도, 복음에 따르는 성령의 임재 때문입니다. 복음을 초보 입문쯤으로 간주하여 홀대하는 지성주의자들에게는 '언감생심'의 체험들입니다. 거듭 설교되는 복음이 그들에겐 '설교 준비를 하지 않은 목사의 허구헌 날 타령'으로만 들리고 신물만 일으킬 뿐입니다. 이런 '복음의 문외한'들이 강단을 점유할 때, 그 강단은 지성의 향연장이 되고 종교다원주의의 전파장이 되어 결국은 성령이 내침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교회의 속화와 타락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以信稱義)'는 초보 입문 교리를 강조해 가르친 설교자 탓으로 돌리는 자들이 바로 이들이 아닐까?"라는 추정이 생기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려 만지작거리는 카드가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가 결정했던, 복음과 율법을 섞은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바울신학의 새 관점 주의자들의 주장 -편집자 주)' 같을 것이라는 추정 역시 억지스러워 보이질 않습니다. 그들다운 선택이요, 또한 그들이 가진 한계로 보입니다.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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