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자전거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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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무지하게 덥다. 여름 정중앙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차라리 더위를 즐겨 보자는 심사가 절로 난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랴. 여름에만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행사들이 적지 않을 터, 큰마음 먹고 자전거의 쇠사슬을 풀었다.

아파트 복도 계단에 일 년여가 넘도록 쇠사슬로 묶어두었던 자전거의 먼지를 닦아내고, 바퀴에 바람을 넣기까지 사계절이 두 번이나 지났다. 자전거를 점검하는 내내 인생살이가 마치 쇠사슬에 묶여 있는 자전거와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자전거의 쇠사슬을 풀면서, 쌓인 먼지를 닦아내면서, 바퀴에 바람을 넣으면서, 체인에 기름을 바르면서 자전거에 오르기도 전에 숨이 턱에 차오른다. 오랜만에 타 보는 자전거다. 정오의 불볕이 이글거린다. 아라뱃길 자전거 전용도로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더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놀랍다.

얼마를 달렸을까. 도시 근교에 이러한 자연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주말농장으로 분양이 되었는지, 작은 토지마다 줄을 둘러 저마다 이름표를 붙여놓았다. 오이, 토마토, 가지, 고추, 상추, 옥수수, 호박, 갖가지 채소들이 풍성하다. 원두막을 오르내리는 남정네의 어깨에 참외가 한 보따리다. 목청이 터져라 외쳐대는 매미의 우렁찬 생명이 하늘에 닿을 듯하다.

어디선가 모시옷을 입고 느린 걸음으로 산수 정자를 오르는 선비의 모습이 나타날 것만 같다. 흐늘흐늘 부쳐대는 선비의 양선(부채)이 벌레를 쫓고, 낮잠을 이끄는 산들바람에 짙은 신록이 청정 기운을 실어 나르는 듯하다.

인생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불편한 환경을 감수하면서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는 당위성들은 어쩌면 모두 쇠사슬일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쇠사슬은 결국 원하는 결과가 아닐지라도 우리들은 일생 중에 스스로 채워놓은 쇠사슬들을 풀어내야만 한다.

질병의 쇠사슬, 욕망의 쇠사슬, 탐심의 쇠사슬, 인간관계의 쇠사슬, 회개의 눈물을 쏟아내야 할 쇠사슬까지,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크고 작은 굵기의 쇠사슬들을 끊어내야만 한다. 어쩌면 인생은 스스로 묶어 버린 매듭들을 풀어내는 과정이 전부일 수 있다.

모든 문제는 반드시 해답이 있다. 문제를 풀어내는 순간부터 인생들은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풀 수 없는 쇠사슬이 있다. 죽음의 쇠사슬이다. 각고의 노력과 치밀한 계획으로도 일말의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는 문제의 쇠사슬이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죽음의 쇠사슬이 끊어졌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들의 죽음의 쇠사슬을 끊어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신뢰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를 믿음으로 화답하는 삶을 살아간다.

나이 탓일까. 오르막길이 너무도 힘들다. 젊은이들조차 느린 속도로 지그재그 언덕을 오른다. 속도가 줄어든 자전거는 이내 멈추어 버린다. 자전거를 끌어안고 쓰러진다. 무릎의 상처가 쓰리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오른다.

오르막의 끝이 보인다. 도시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온다. 힘든 만큼 보람이 있다. 한강 줄기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아름다운 여름이다. 빠져버린 자전거 체인을 걸고 이제 내리막길을 달려야 할 기대감에 새 힘이 쏟는다.

가속이 붙은 자전거가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내달린다. 시원한 바람이 너무도 좋다. 방만하게 살아온 지난날들의 쇠사슬이 투둑투둑 끊어진다. 자유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끊어주신 죽음의 쇠사슬로 인하여, 비로소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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