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지진
과학은 계속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깜깜한 분야도 많다. 그 중 하나가 갑자기 일어나는 지진에 대해 현대 과학이 예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진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당한다. 전혀 손 써볼 수 없이 말이다.
지진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은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져 가는 현상인지 모른다. 이번 지진이 일어난 곳에서 가까운 아퀼라(Aquila) 에서 몇 년 전 지진이 일어나 많은 피해를 당했고, 아직도 완전한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진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앱을 깔아 놓았더니, 지진이 발생한 지역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여진을 도표로 실감할 수 있었다. 다만 강력한 파워가 아닌 지진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러울 뿐....
8월 24일, 로마 북쪽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아마트리체(Amatrice)라는 곳에서 강도 6.2의 지진이 일어났다. 그곳은 기원전 4세기부터 동해 바다에서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닦여진 소금길(Via Salalia: 여기에서 샐러리라는 영어 단어가 나왔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그곳에서 산 너머에 있는 노르차(Norcia)는 구라파의 첫 수도사 베네딕토가 태어난 곳이기에, 지진이 있기 한 주간 전에도 다녀온 곳이었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난 아마트리체 마을은 '스파게티의 탄생지'로 유명한 곳이다. 훈제로 된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볶고 그 위에 크림과 토마토 소스와 파스타를 넣어 만든 요리로, 우리도 즐겨 먹는 부담 없는 음식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 파스타 축제가 열린다.
이번에 피해가 컸던 이유는 지진이 새벽 3시경 일어나 사람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파게티 축제를 관람하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호텔은 방이 40여 개인데 방마다 여행객으로 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시골 마을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을 예약하고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작은 호텔인데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예약했다는 승리감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호텔이 무너졌고 겨우 네 사람만 살아나왔다고 하니, 오히려 예약에서 탈락된 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겠다 싶다. 인생도 결산의 날에 그런 현상들이 수없이 일어날 것이다.
마을 사람들만이 아니고 타지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였기에, 신분확인이 어려웠다고 한다. 심지어 저 멀리 영국에서 참석했다가 희생당한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뉴스를 본 교우는 국제결혼한 부부가 죽었는데 아내의 이름이 한국 사람 같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부부가 죽고 아이만 겨우 살았다고 들었다고 한다. 확인하기 어렵지만, 무사하기를 기도한다.
그곳은 깊은 산골이기 때문에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걱정이다. 여진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정말 예기치 못한 사고, 이 시대 지진의 피해는 상상을 불허하는 것 같다. 현재 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그 숫자가 얼마나 더할지 모른다.
무너진 건물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데, 여진 때문에 큰 장애가 된다고 한다. 고난당한 사람들의 염려와 걱정은 돈이 적다는 것, 차가 낡았는데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 애인에게 선물할 돈이 없어 하지 못한다는 것, 이런 유의 염려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과연 무사한가? 저 건너편에 살고 있는 부모님은 과연 무사하신가?' 하는 본질적 염려일 것이다.
밀라노에 살고 있는 친구 목사는 말한다. 신앙적으로 볼 때 자다가 죽었으니 평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겠으나, 평소 믿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은 어찌되겠느냐고. 그렇지 싶다. 전혀 예기치 못한 고난이 찾아오는 것이 우리네 삶의 현 주소다.
그렇다면 오늘 살아있을 때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아이들, 하루 아침에 부모님을 잃은 자녀들,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을 잃은 사람들..., 그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정부는 식당에서 아마트리체 스파게티를 주문하면, 이윤의 일부가 지진으로 고난당한 주민들에게 주어지도록 했다고 한다. 이번 주에는 우정 식당에 가서 아마트리체 스파게티를 주문해야겠다.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