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詩] 가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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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붐한 밤하늘
보이지 않아도 구름 속 달 있듯
날마다 걷고 지나도 낯설고 생경한 세상입니다
땅에 있어도 하늘에 속한 생명
거친 호흡 밖에 내뿜지 못할 세상이더이다
허울 가득한 세상이더이다
어찌 그리 졸렬한지 이론뿐인 사랑과 용서
제 밥그릇 한결 재에 밴댕이 속이더이다.

많이 힘드신 중에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명 안에서
고락의 깊은 숨 호흡하시는 모습 그려봅니다.
성큼 다가온 가을 들길을 바라보니 깊은 시름 왜 없겠습니까?
힘드시지요?

예식장엘 다녀왔습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의 혼례나 믿지 않는 자들의 혼례가
별반 구별 없이 치러지는 말세의 일각을 목격하고 돌아오는 길
여러 번 차를 세워 하늘을 우러렀습니다.

녹록치 못한 환경들이 쓰라린 상처 위를 짓누를 때마다
한바탕 불신의 세상 마당에서 탈춤을 추어볼까?
세상만사 재물에 목숨 건 사람들과 한바탕 진흙놀이 앞장서서
허허실실 뒹굴어 볼까나?
그렇게 얻은 재물 애곡의 시대 옷소매로 눈물 숨겨 닦고
큰소리 한번 외치고 싶은 심정 토닥이는 목자들께
푸짐한 저녁이라도 한상 차려볼까?
허한 기와집을 서른 채나 지었는데
실미소 한 자락으로 허물어지더이다.

속히 오실 그 분은 오늘도 먼 메아리
아직도 영생 얻은 생명 무수히 남아
마음이사 벌써 번갯불로 다 쓸어야 할 진노 참으시니
한 영혼 달 길에 새 생명 얻는구려.

때로는 꿈결처럼 그리운 거
다정이 병인 양 다가와
녹이 슨 철대 같은 삶의 골격 사이로
헤픈 웃음 뭉게뭉게 거들먹거릴 때
어디선가 들리는 듯 육자배기 장탄가에
술청에 드러눕던 창기의 애수마저 가을조각으로 두둥실 떠다닙디다
팔각 오금이 저리도록 한 많고 죄 많은 그날들
오, 주님이시여 거두어 주소서!

밤이 깊어갑니다. 내일은 주일이지요
풀숲 깊어 잃어버린 양 보이지 않고, 이리들은 울타리를 넘습니다
식당 중식값 같은 삼 년째 만원, 쓰고 남는 시간만 고개 처박는 자리
성도 아니지요, 헌금 아니지요.

부질 없는 세상.
부질 없는 중에 영생 사실 전하는 목자라서
바보, 천치, 위선자, 처세 가득한 자, 내가 복음 들고 목사님 부르는데
그 중 천사 같은 장로, 권사, 진짜 집사, 떡잎 좋은 성도
함께 목사님 부르니 하얀 성의 입어야겠지요.

아는 것이라고는 그리스도 예수, 영생뿐이니
어디 가서 막노동도 못할 팔푼이 인생
일생이 소중한 거, 그리스도 예수의 영생 얻을 기회의 시간이어서
인생이 축복인 거, 그리스도 예수께서 영생 주셨으므로
믿음의 주체, 그리스도 예수라는 거,
그리스도 예수 아니면 복음 아니라는 거, 거품 물고 소리쳐 가르치렵니다.

월요일엔 장례식을 갑니다.
백 원 동전 두 개 눈두덩에 올려놓고
아홉 구멍 흐르는 악취, 두루마리 통째로 구겨 박고
그리스도 예수의 영생 얻은 자
천사가 영접하니 기뻐하며 따라간 천국 생명
팔 다리 잘 움직여 가지런히 두 손 모아 염(殮)할 때는 참으로 기쁘지요.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건성으로 믿는 척한 자
마귀 따라 안 가려고 버둥대다가 뻣뻣하게 굳어 지옥 갔으니
팔 다리 우두둑 분질러 배꼽에 가지런히 모아 염하면서
불쌍한 영혼, 능지처참할 사탄의 궤계, 서글픈 심사 비통하지요.

그나저나 곧장 재가 될 육골
비싼 베옷 입히고, 비싼 옥관 왜 쓰는지
세상 울림 한 귀로 흘리고,
세상 휘황한 거 눈감으면 어둠인 거
세상 자랑 헛웃음으로 돌리고,
고사리 육개장 먹고 천국의 주인님께 찬송 부르는 날
마음이사 늘 521장이지만, 내일 부를 찬송은 545장입니다
영생 주시고, 우리들의 처소
예비하러 가신 그리스도 예수만 찬미하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도 누군가가 눈두덩에 백 원 두 개 덮어주고
배꼽에 두 손 가지런히 모아 염할 때
잠자듯 잘 움직이면 할렐루야 천국 가셨네.
기다리던 그날 곧 올 것이니이다.
샬롬!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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