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칼럼] 한 해의 눈물을 닦으며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 너무 억눌려진 상처는 어디로 가는가

상담실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한 사람의 고통스러웠던 긴 스토리를 주의 깊게 경청하는 일이다. 억압된 정서를 풀어내어 눈물을 흘려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자신의 마음 속에 얼마나 큰 상처들이 쌓여 엉겨붙어 있는지 보게 하는 일이다.

아픔이 많을수록 억압의 강도가 세진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죽을 만큼의 공포와 고통이었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 억압해온 사람일수록 감정을 느끼는 것이 더디고 어렵다. 그래서 그것을 느끼게 될 때의 공포감 때문에 감정을 느끼게 하려는 상담전문가의 치료적 개입과 질문에 극도로 저항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느끼게 될 때의 고통에 대해 그만큼 두려움이 크다는 증거이다. 그만큼 상처가 깊고 무겁다는 뜻이다. 이처럼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다는 자기인식'과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자기인식을 만들어버리는 마음의 상처는 그토록 깊고 무섭다.

무의식적 저항이 길면 길수록 상처의 치료는 더디다. 그러면 오래도록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그녀)가 견고하게 묶어두었던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스스로 풀 수 있기까지 용납하며 기다려주어야 한다. 상담자들도 성격이 조급한 사람은 기다리기가 어려워 자꾸 채근하게 되는데 그러면 내담자는 너무 힘들어서 달아나려고 할 것이다.

상담자가 조급하면 안 된다. 기다려주는 시간도 치유의 시간이다. 때로는 상담자가 대신 울어주기도 한다. 이렇게 나는, 상담실에 있을 때는 거의 매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여 울어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속으로 울기도 하면서.

- 상처가 분노를 만들다

인경 씨가 상담실을 처음 찾아왔을 때 나는 너무나 놀랐다. 이제 서른을 갓 넘긴 아기 엄마인 인경씨의 얼굴은 온통 분노로 뒤덮여 흑빛이었다.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앉아 나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첫 만남의 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 왜 당장 안 낫게 하느냐고, 자기를 치료할 능력은 있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도 상처의 근원에 다가갈 질문을 하면 깜짝 놀라며 저항했다. 자기는 상처가 없다고 소리소리 질러댔다.

"상처가 없는데 여기는 왜 찾아왔지요?"
"그러니까 치료비 내고 전문가 찾아왔죠. 내가 왜 이런지 알려고!"
"인경씨는 계속 화만 내고 있는 것 같군요. 나한테 화가 나나요?"
"내가 언제 화냈다고 그러죠? 난 그냥 얘기하고 있어요."
"나는 인경씨가 화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화를 내고 있는 건 아니라고 하는군요."
"전문가니깐 빨리 알아내요! 나를 알아서 치료해줘야죠."

이런 식으로 인경 씨는 앞 뒤도 맞지 않는 말을 내지르며 막무가내로 다그쳤다. 이런 인경 씨의 모습은 남편에게도 똑같은 패턴으로 나타났고 시댁이나 친정의 가족에게도 그대로 나타났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아기에 대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계속 아기에게도 화를 냈다. 그러면서도 상처가 없다고 소리쳤다.

좀 더 기다려주어야 했다. 인경씨가 스스로 저항을 풀고 마음을 열 때까지.

어느 날, 인경 씨가 눈물을 터뜨리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욕하는 대상이 분명하지도 않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부모님과 남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며 욕을 하고 있었다. 한참 욕을 하다가 상담실 탁자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너무 심하게 흐느끼고 있어서 상담센터 전체가 울릴 정도였다. 나는 그녀 옆으로 다가가 등을 쓰다듬어주며, 울어도 괜찮다고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한번 울음 터지자 한 시간 내내 눈물 콧물이 쏟아졌다. 인경씨는 눈물을 닦아낼 엄두도 못 낸 채 심하게 울고 있었다. 나는 티슈로 인경씨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된 휴지가 산처럼 쌓여갔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실컷 울고나자 살벌하던 인경씨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지면서 목소리의 톤에도 분노가 조금 가신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의식적 저항이 풀어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놓았다.

수없이 많이 받아온 상처를 견뎌온 지난 시간 속에서, 그녀속의 어린아이는 치유가 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어린아이가 유치한 분노를 폭발하고 주위 가까운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 동안 스스로 새로운 상처를 쌓아갔다. 그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인경씨는 그후 몇 년간의 심리치료를 받았고 마침내 분노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운명적으로 상담자가 되다

나는 운명적으로 심리상담 전문가가 된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단 한번도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을 터치하는  아주 훌륭한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인생의 방향은 치유를 향한 노력과 함께 완전히 달라졌다.

내 마음의 아픔이 너무 극심하여 치유하고자 애쓴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까지 관심을 갖게 만든 이유와 동기가 되었다. 그토록 아픈 시간을 보내고 치유의 과정을 겪었으니, 나처럼 아픈 사람을 만져주고 치유의 여정에 동행자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의 아픔을 녹여내는 동안 곁에 머물러 주었고, 눈물로 상처를 씻는 동안 함께 그 고통을 견뎌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극심한 통증과 치유의 기쁨을 같은 마음으로 지켜 보았고, 지독한 우울증이나 불안증이나 심리적 병증에서 벗어나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해 왔다. 그 과정 속에서 모든 사람의 무겁고 참담한 고통을 혼자 다 뒤집어 쓴 것처럼 아프기도 했고, 반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람을 살려낸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깊고 복잡한 미로처럼 얽혀 있는지를. 그 미로 속에 갖가지 감정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 수없이 뒤얽혀서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며 파괴하고 있는지를 더욱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더욱 두려워지기도 했다. 내가 모든 사람의 상처를 다 치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탈진을 부르는 상담자의 고단한 삶과, 극심한 정신 노동으로 인한 몸의 한계를 알게 될수록 고뇌도 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이제는 그만해야지',라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발걸음을 상담실로 옮기게 된다. 너무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들이 나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필요하다면 결코 그만 둘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또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눈물이 마르도록 오래된 상처

부모로부터의 깊은 상처는 눈물조차 마르게 한다. 그것은 인간의 실존을 훼손하여 자기 존재감을 상실하게 하여 그 어떤 감정도 너무 아파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부모의 양육 태도에 의해 상처가 생기지만, 그 이후에는 스스로 계속해서 상처를 만들어가는 것이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의 특징이다.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 자신의 세계에 자신을 가두는 것. 이것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지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당신 속에는 이러한 상처가 없는가. 이 상처가 당신의 생을 어떤 무늬로 채색해왔는지, 또한 그 상처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오늘도 새로운 한 사람이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내 상담실을 노크했다.

나는 그의 눈물로 얼룩진 상처를 볼 때까지, 그 자신의 눈물 속에서 스스로 치유의 자원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줄 것이다. 길고, 고통스럽고, 신비로운 시간을 지나는 동안, 나는 그의 여정에 낯선 동행자가 되었다가 마침내 친밀한 친구로 서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상처받았던 고통의 긴 시간 속에 생긴 상처를 치유하고 충분한 눈물을 흘린 후,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될 그때까지 기다려줄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간에.

내 치유의 여정에서 기다려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듯이, 또 내가 누군가의 치유의 여정에 끝까지 동행해주고 있듯이, 당신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한 사람의 깊은 치유적 공감이 당신의 내면에 흘리지 못하고 갇혀 있는 상한 감정을 끌어내어 치유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상처를 씻어내어 더 이상 상처의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도 '상처 입은 치유자'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치유를 위한 자기 분석은 자신의 인생을 지나는 동안 반드시 해야 하는 생의 과제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깊고 깊은 깨달음이 자신을 깊은 고통이나 상처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자기 분석을 위해 일기를 쓸 수도 있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읽으면서 느낌을 쓸 수도 있다. 상처를 느끼면 아프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눌러놓았던 마음을 저항 없이 들여다볼 수 있으려면 조금씩 조금씩 상처에 접근해서 그때의 감정을 글로 써보면 된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자기 분석과 치유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된다. 자기 분석의 끝에서 우리는 희망과 자유를 만난다.

자유란 깊은 깨달음에 이른 치유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선물이다! 당신도 지금의 나처럼 절대로 걷어치울 수 없는 희망을 만나게 되길,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 해의 눈물을 닦으며, 그 눈물을 따라 난 새로운 치유의 길을 되짚어보며, 치유의 빛으로 함께 하신 신의 은총에 마음을 다해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치유와 따뜻한 동행 www.kclatc.com

~치유가 있는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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