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개혁신학] 신학·예배·사역의 근본적 일치조항을
한국인의 특질 중 하나로 자주 '모래알'이 거론됩니다. 모래알은 개체로는 작지만 단단한 돌로 나름대로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래알은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로 인해 갈등과 분열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입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모래는 건축자재로 널리 애용됩니다. 건물을 짓는데 모래가 사용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모래는 반드시 시멘트와 함께 버무러져야 건축자재가 됩니다.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안타깝지만 조국교회가 이런 모습입니다. 선교 130여 년 만에 조국교회는 사분오열도 모자라 갈갈이 찢어졌습니다. 심각한 것은 누구도 기독교의 실태에 대해 완전한 통계자료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어림잡아 추정하고 근사치로 말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교단 관계자들이나 기독교 사회단체, 혹은 기독교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현재 조국교회 안에는 약 300여 개의 교단이 실존하고, 신학교는 무인가까지 합하면 약 2천여 개에 달하며, 기독 언론만 80여 종에 달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자칭 언론으로 행세하는 인터넷 언론은 아예 파악조차 되지 않은 실정입니다. 가히 조국교회의 춘추전국 시대입니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이 정도로 난립하고 분열됐다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여러 개로 분립하고 서로 다른 위치에서 존재하고 사역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두 그만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이유와 명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우리가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논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의 모든 사역자들에게 치명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독선(獨善)'이라는 암입니다.
독선은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의 다른 이름입니다. 성경에서 '자기 의'는 신앙의 핵심적인 대적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16:24)"며 '자기 의'를 버리는 것이 주의 제자가 되는 지름길임을 천명하였습니다.
또 독선의 핵심은 '자기중심주의(egotism)'입니다. 자기중심은 하나님중심을 대적합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모든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는 한 사람의 죄인의 구원을 다른 길로 오도하는 주범입니다. 인본주의는 하나님과 죄인의 화합을 저해하는 독소입니다. 칼빈을 비롯한 위대한 우리의 종교개혁가들은 로마가톨릭의 인본주의를 혁파하기 위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슬로건을 내세우며 종교개혁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국교회 안에 독선과 자기의와 자기중심주의와 인본주의가 만연합니다. 모두가 우물 안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자기의 하늘이 유일한 하늘이라 주장합니다. 자기의 틀 안에 갇혀,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우물 안에서 자기가 잘 낫다고 우쭐댑니다. 이런 형태에 대해 장자는 '丼底之蛙(정저지와, 우물 안 개구리)'라고 꼬집었습니다. 조국교회 전체가 아니라 자기 교단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자기 교회의 사역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사역이며 최고의 사역이라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한 부분에 태어나고 자라고 살다가,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천국의 백성들입니다. 적어도 하나님 자녀는 이러한 역사적인 안목과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세우신 지상 교회의 전체적인 생태와 운거들에 눈을 뜨고 바라보아야 하며, 시대를 분별하여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과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는 헌신과 함께, 조국교회의 전체를 생각하며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고 공동체 사역에 매진하는 일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사역이 덜 중요하다거나 개교회와 개교단의 일을 제쳐두고 무조건 전체 공동체의 사역에만 매달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개인적으로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천국의 백성이기에, 독특한 소명과 사명들을 가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의 신비한 교리 중 하나가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라는 사실을 믿고 배웠으며 알고 있습니다. 워필드가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인은 이미 자연인이 아닙니다. 조직신학자 레이몬드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세계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며 그리스도인의 초자연성을 설명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소명과 공동체 소명을 내적으로 신비하게 연합하여, 주께서 맡기신 대(大)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조국교회가 위기입니다. 어떤 이는 기독교가 국민의 19.7%에 달하는 통계조사 결과에 고무되어 아직 조국교회가 죽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타락은 숫자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조국교회는 다음의 세 가지 방면에서 이미 타락하였습니다. 첫째, 목회자를 비롯한 사역자들의 질적인 타락입니다. 병원 의사들은 전공의가 되기까지 의대 4년, 인턴 1-2년, 레지던트 4년을 거친 다음 전공의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혹독한 훈련과 실습 등 매우 엄격한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 주변에 자질 없는 목회자들이 수두룩합니다. 목사를 마치 자격증 따듯 시험치고 합격하면 얻는 직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목회자들의 양산은 두고 두고 조국교회의 아픈 가시가 될 것입니다.
둘째, 예배의 타락입니다. 지금 근거도 없고 족보도 없는 예배가 횡행합니다. 같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교단 소속인 목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교회들의 주일 공예배가 중구난방입니다. 순서는커녕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준 예배 모범은 기억조차 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어 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회개와 기도와 찬양과 신앙고백과 예물의 봉헌과 설교와 성례와 축도'는 예배의 기본 골격입니다. 특히 시편 찬양과 강해설교는 개혁파 교회 예배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목적설교를 하고 기복설교를 하고, 무분별한 찬양으로 경건한 주일예배를 어지럽히고, 각종 헌금을 강요하여 교회건축을 유도하고, 심방예배를 빙자하여 목회자의 안주머니를 불리게 하고, 구역별로 나누고 셀교회화 시키고, 만인제사장 교리를 도용하여 평신도 사역자를 양산하고, 설교권을 분배하듯 성도들에게 나누어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들이 한 번이라도 웨스트민스터 교회회의(1643-1649)가 만들어 준 '5대 표준문서'를 읽기라도 했다면, 이렇게 무법과 무원칙, 무분별한 예배를 드리고 인본주의적인 설교를 설파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교리교육의 실종입니다. 기독교 교리는 성경 66권에 산재한 각종 진리의 보화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방마다 잘 저장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 7개로 정리하였다 하여 '7대 교리'라고 부릅니다. 이 교리를 중심으로 우리는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또 어린이를 위해 소요리문답을 가르치고 어른을 위해 대요리문답을 가르치며 교리의 기초를 쌓게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엡 2:8)인 믿음으로 거듭나 의인이라 칭함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중생한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성장과 인격적 성숙은 믿음의 반석을 단단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교리는 케케묵은 고전인 것처럼 취급하고, 교리교육이 교조주의를 생산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면서 교리를 팽개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침반 없는 선박이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듯, 교리 없는 기독교회가 길을 잃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러한 때, 교회 지도자들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더 이상 자기 교회, 자기 교단, 자기 신학교, 자기 사역장, 선교지에만 매달리지 말고, 먼저 자기의 것을 내려놓기를 간청합니다. 그리하여 하나가 되는 방안을 머리를 맞대고 모색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물론 여기 다른 복음, 다른 신학과 사상을 가진 자들까지 용납하고 일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신학의 일치와 예배의 일치와 사역의 일치라는 근본적 일치조항을 마련하여, 정치적인 교단이 아니라 하나의 신학으로 하나가 되는 교회 공동체의 새로운 탄생을 기원해 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에 우리의 개혁파들이 감당하고 이루어 내야 할 시대적 소명임을 확신합니다. 샬롬.
최더함(Th.D. 역사신학. 개혁신학포럼 총괄책임 및 학술위원. 마스터스 세미너리 책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