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원기 교수의 회계세무 칼럼(13)] 비영리단체의 지배구조: 이사(理事)
영리기업의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에 관한 논의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본격화, 재벌 문제와 관련해 지배주주의 전횡과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 논의로 이어졌고, 제도적으로는 소수 주주권의 강화, 사외이사 제도의 법제화, 감사위원회 제도의 도입, 집중투표제의 도입, 회계 및 경영투명성 강화 등이 추진됐다.
이에 비해 비영리조직(비영리법인)의 지배구조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 논의는 계속되고 있으나, 사립학교법 및 사회복지사업법 외에 기본법이라 할 수 있는 민법의 개정을 통한 개편은 아직 없는 편이다. 비영리법인의 지배구조란 "비영리법인이 설립된 목적에 합당한 활동을 하는가를 감독하고 이에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또한 여러 이해당사자의 관점을 조정하는 구조"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편 비영리법인의 운영이나 경영은 기관을 통해 이뤄지고, 기관은 법인의 종류에 따라 일정하지는 않으나 의사결정기관, 업무집행기관, 감독기관의 세 가지 종류가 있고, 일반적으로 이사, 이사회, 감사라는 기관이 있다.
오늘은 먼저 이사라는 용어의 기원에 관하여 살펴본다. 이 이슈도 질문으로 시작한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 중 일본어로부터 들어온 말이 어느 정도 될까?
필자의 고교시절 국어순화운동을 주도하시던 은사님으로부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말 중 약 60% 내지 70%가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국어순화운동 차원으로 생각했는데, 공부를 할수록 '근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일본의 영향을 무척 많이 받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곤 한다.
일본이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서양 언어를 어떻게 번역했는지에 관하여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번역과 일본의 근대(최경옥, 살림출판사, 2005)', '번역과 일본의 근대(가토 슈이치, 이산, 2000)',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이종각, 서해문집, 2013)', '난학의 세계사(이종찬, 알마, 2014)' 등을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특히 이종찬 교수의 난학의 세계사라는 책에서는, 일본 서양의학 보급에 앞장섰던 해부학자인 스기타 겐파쿠가 노년에 쓴 회상록 '난학사시(蘭學事始)'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다. 난학사시(蘭學事始)라는 책은 해체신서(解體新書)라는 책의 번역 과정의 어려움과 출간의 기쁨, 난학 발전에 이바지한 학자들의 고민 등을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해체신서(解體新書)'라는 책은 스기타 겐파쿠가 지인들과 4년에 걸쳐 번역 작업을 걸쳐, 1773년 독일 쿨무스(J. A. Kulmus)의 '해부도보(解剖圖譜 Anatomische Tabellen)라는 책의 네덜란드어판인 'Ontleedkundige Tafelen'을 일본어로 중역(重譯)한 의학번역서로 일본 난학의 시작을 알린 책으로 유명하며, 일본의 메이지(明治)시대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이 책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그가 내세운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한다)론의 사상적 토대로 삼았다는 책이다.
(여담이지만, 1854년 미국 페리호가 일본에 와서 개방을 요구할 때 대응했던 일본인 중 네덜란드어를 하는 일본인들이 많았다는 점에 대해 미국인들이 놀랐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일본은 개방 전부터 네덜란드를 통하여 서영문명을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위에서 소개한 '번역과 일본의 근대'라는 책을 보면, 19세기 일본에서 서양 문명의 각종 언어를 어떻게 번역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는지에 관한 고민이나 토론 또는 신조어의 변천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social), 자유(liberty, freedom), 권리(right), 자연(nature), 개인(individual) 사진(photograph) 등의 단어들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그런데 19세기 말, 우리도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중국 및 일본의 번역어를 참고해 우리 나름대로의 신조어를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본식 용어를 대부분 그대로 수용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예를 들어, Baseball을 우리나라와 일본은 야구(野球), 중국과 대만은 봉구(棒球)라고 하는데, 1905년 YMCA를 통해 우리나라에 '베이스볼'이 들어올 때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타구(打球) 또는 격구(擊球)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중에 일본식으로 변한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오늘 일본의 서양문물의 번역을 살펴본 이유는 영리법인이나 비영리법인의 집행기관 영문 명칭인 'Director'를 어떤 용어로 번역하는 것이 좋은지를 음미해 보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민법이나 상법에서는 사단법인, 재단법인 및 영리법인인 회사의 집행기관을 모두 이사(理事)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민법상의 비영리 공익법인 집행기관은 이사(理事)라는 용어를, 영리법인 즉 회사의 집행기관은 취체역(取締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감사에 관하여도 민법과 상법에서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일본 민법에서는 감사(監事)라는 용어를, 일본 상법에서는 감사역(監査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동사(董事)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동(董)은 '감독하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나 일본의 이사(理事)의 뜻은 '일을 처리하다' 또는 '사무를 보다'는 뜻이고, 일본 상법상 취체역(取締役)의 취체(取締)라는 말 뜻은 "규칙이나 법령, 명령 따위를 지키도록 통제함" 또는 "단속함(取り締まり)"이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왜 일본은 민법과 상법에서 이사(理事), 취췌역(取締役), 감사(監事), 감사역(監査役)와 같이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일본의 문헌을 찾아보거나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그러나 아직 이에 관한 문헌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일본의 전문가들 중에서도 명쾌한 답을 가진 이들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Director'라는 영어를 영화업계나 문화계에서는 주로 '감독'이라고 번역하고, 음악계에서는 '지휘자'라고 번역하며, 경영학 분야에서도 'Directing'을 '지휘'라고 번역해 사용하고 있기에, 이 용어가 더 좋은 용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환언하면 이사(理事)라는 단어는 'Director'의 뜻을 정확하게 나타낸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70년 이상 사용했던 용어를 이제 와서 바꾸는 것이 불편하지만, 중국어 '동사(董事)'가 '감독이라는 뜻이 내재되었다'는 점에서 이사(理事) 또는 취체역(取締役)보다 더 충실한 용어로 보여진다는 개인 의견을 피력해 본다.
필자 주변에서는 영리법인, 즉 회사의 이사나 감사 직을 잘못 수행하거나 또는 제대로 수행했음에도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이사 또는 감사의 직무해태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사례가 많다는 점을 소개하고 싶다. 몇 주 후 무보수 비영리법인 이사가 이사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소돼 손해배상한 사례를 소개할 예정인데, 무보수 비영리법인 이사 및 감사의 직도 함부로 수락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가 잠시 비상근 감사로 봉사했던 예장 통합측 총회연금재단의 이사회에 관해 잠시 적는다. 오래 전 총회연금재단의 정관 및 연금규정에는 '연금운영에 지식과 경험이 있는 자를 이사로 선임한다'는 항목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역 안배 차원에서 연금재단 이사들이 선임되면서 이 규정은 유명무실화됐고 몇 년 전 규정 자체가 삭제되어 없어졌다.
이에 비춰볼 때, 연금 운영에 지식과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이 연금재단 이사로 선임된 것이 과거 연금재단의 문제 중 하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또 하나, 연금재단 이사 직이 보수도 없고 명예직이며 이사회 출석시 거마비 정도만 지급되는 자리임에도 왜 그 자리를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는지에 관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화제가 다른 곳으로 바뀌는데, 교회 장로 선거에서 장로로 피택되지 못해 시험받는 사례를 종종 본다. 필자 주변 어떤 부부 집사님께서 장로 선거에서 본인이 예상했던 표보다 훨씬 적게 나와 피택되지 못하셨는데, 처음에는 무척 실망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곧 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장로 같은 안수집사로 봉사하자'고 생각을 바꾼 분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다.
'불환인지불기지 환기불능야(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라는 논어(論語) 구절과 같이, 교회나 노회 또는 총회에서 자리를 갖고 다투는 일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한편으로는 본인의 능력 범위를 넘는 자리는 넘보지 않아야, 본인뿐 아니라 그 조직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배원기
공인회계사/홍대 경영대학원 세무학과 교수/신한회계법인 비영리 회계세무 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