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칼럼] 자잘한 고마움들 늘 표현하기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거센 혼란의 찬바람을 넘어, 지독히 차가운 슬픔의 시절을 지나, 드디어 찬란한 오월이 되었다. 꽃들이 저마다 피어야할 시기를 알고 종류별로 피기 시작했고 바람은 점점 더 따뜻해지고 있다. 외롭고 슬픈 사람들도 조금씩 따뜻해진 가슴으로 봄 정경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열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가 살던 읍내에서 아이 걸음으로 두 시간을 가야하는 산골마을에 살던 단발머리 찰랑거리며 밝게 웃던 친구가 요즘 계속 떠오른다. 어느 여름날 휴일, 나는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섰다. 제법 햇살이 따가웠던 메마른 흙길에서 피어오르던 먼지 냄새를 맡으며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던 기억이 또렷이 떠오른다. 

그 먼길을 가며 생각했다. 그애는 어떻게 매일 이 먼길을 걸어 학교를 다닐까. 나는 한번 가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작은 산을 두 개나 넘어 계곡을 따라 이어진 작은 산길을 계속 걸으면서 점점 무서워지기도 했었다. 다행히 사람들이 밟은 흔적이 있는 길이 하나만 나 있었기 때문에 길을 잃지는 않았고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기에 지친 발걸음으로 아무도 없는 대낮의 산길을 끝도 없이 걸어 갔었다. 

몇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올리며 마침내 마을 입구로 접어 들었다. 저멀리 산골 마을의 집 몇 채가 눈에 들어오자 너무나 기뻤다. 그 아이는 맨발로 뛰어나와 놀란 얼굴을 하다 금새 활짝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어서 들어와. 배고프겠다. 마침 밥 먹으려던 참이야. 같이 먹자...... 

맑은 눈빛의 그 아이는 종달새처럼 밝은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너가 와서 정말 반가워' '너무 좋아' '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며 밥을 차려주었고 과일이며 곶감 등을 계속 내오며 불시에 방문한 반 친구인 나를 대접해 주었다. 매일 네 시간을 오가며 학교를 다니고 있던 그아이는 탄탄하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고 심성도 착하고 밝았다. 그때 나는 그 아이가 한없이 부러웠으며 또 고마웠다. 산골에 사는 가난한 그 아이가 그토록 부러웠던 이유는 수백가지였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순수한 그 아이의 눈부시게 빛나는 영혼의 빛이 어린 내 마음을 밝혀주었기 때문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아쉬움과 깊은 사색이 이어졌었다. 그러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고 얇은 옷은 금방 다 젖어버렸다. 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너머로 내리치는 것을 보며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무서웠지만, 그 애가 내게 베풀어준 친절과 따뜻한 환대로 내 마음은 고마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마음은 지금까지도 내게 남아 때때로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지금이라도 그 애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그때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을 마음껏 표현하고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것이다. 마음을 담은 선물도 주고 싶고 그 시절의 이야기꽃을 피우며 천진한 아이처럼 오랫동안 웃고 떠들고 싶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산골마을, 대곡동 그 소녀가 너무 보고싶은 오월의 하늘 아래에서, 나는 또다른 고마움들을 하나씩 나열해 본다.  

나는 조그만 고마움들을 잊지 못한다. 내게 친절한 미소를 보내준 사람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준 사람들, 지치고 힘들고 배고팠던 내게 밥 한 끼 대접해준 교회 어른들, 몽당연필을 쓰던 내가 안스러웠던지 자신의 새 연필을 수줍게 내밀어주었던 착하고 포동하던 손들..... 그 사소한 고마움들이 마음 한 가운데서 늘 출렁이고 있다. 

마음이 짓눌려 있고 슬픔에 빠져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돌아보면 자잘한 고마움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너무 사소해서 일일이 기억에 저장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마음의 주름 자락을 하나씩 펼쳐보면 고마움들은 진주알처럼 맺혀있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가득 채운 분노 때문에, 넘치는 슬픔 때문에, 억울함과 피해의식 때문에, 고마움은 깊이 묻혀 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상처만 준 것 같은 부모님에 대한 마음에도 수없는 자잘한 고마움이 묻혀있을 것이고 배우자, 자식, 친구들, 주위 모든 사람들을 향한 자잘하며 사소한 고마움들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깊이 묻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어려워한다. 표현해야한다고 하면 그런 걸 꼭 말을 해야 하나?,라고 말한다. 꼭, 말로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잘한 고마움을 말하기 시작해야 큰 고마움도 말할 수 있게 된다.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 자괴감에 빠지고 상대가 나를 나쁘게 생각할 거란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씩 문득 떠오르는 자잘한 고마움들이 그 고단하고 힘든 시기를 살아낼 힘을 주었다는 것을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때마다 고마움을 표현했다면 상대방에게도 기쁨과 힘이 되었을 것이다. 표현하지 못한 고마움들이 그리움을 만들고 아쉬움을 낳는다. 그때 하지 못했던 고마움의 표현들을 이제는 가까운 사람에게 하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자잘하고 사소한 그 무엇이라도 고마워하고 표현도 하면 되지 않을까. 

오월의 따뜻한 하늘 아래에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고마움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힐링과 기쁨의 순간을 자잘하게 많이 주게 될 것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고마워~" 이런 표현이 꽃잎처럼 흩날리면 마음이 아픈 이들의 마음에도 치유약으로 젖어들 것이다. 고마움은 사랑의 또다른 표현이다. 고마움에는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다는 표현이 표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 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가. 조금 수줍어도 하기 시작하면 계속 하게 된다.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든 일에, 무슨 일에라도, 사소할 지라도, 감사하라는 것. 감사의 달인 오월 뿐 아니라 열 두달 내내 고마움을 서로 표현하고 아주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길, 어린 날 내게 따뜻한 손 내밀어준 그 친구를 내내 고마워하고 그리워하게 된 나는 지금도 이렇게 바라고 있다.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수십년의 세월을 지난 지금도 남아 계속 안타까운 나처럼 되지 않길 바라게 된다. 

"맑은 눈빛으로 종달새처럼 밝게 나를 환대해준 친구야, 고마워. 보고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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