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일 땐 했던 얘기 또 해도 재밌는데, 부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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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13] 남녀 간 사랑도 연애도… ‘들음’에서부터

▲ⓒ사진 박민호

▲ⓒ사진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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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일 때는 미주알고주알 대화도 참 많이 한다. 한 얘기 또 해도 재미있고, 즐겁고, 말하는 입조차 예쁘다. 그러나 부부가 되면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자기 말만 하는 부어터진 입술은 밉살맞아 보이고....

그렇게 서로 자기 말만 하다가 중년이 되면 말이 안 통해 못 살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기 배우자랑 말이 안 통한다는 사람도 밖에 나가면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왜냐하면 들을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말을 잘 들으라는 뜻으로 귀는 두 개이고 입은 하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귀가 하나뿐이었다면, 스테레오 서라운드 돌비 시스템 음향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듣고, 새겨들으라는 뜻도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듣는 것은 중요하다.

부부간의 소통에 실패한 사람들은 흔히 후회한다. "내 말에 좀 더 강력한 설득력이 있었더라면....", "내가 좀 더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내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었더라면...."

설득력과 자기표현력. 그것도 원인일 수 있지만, 사실 지혜가 부족했던 것은 대개 듣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솔로몬의 명판결 같은 것이 무슨 거창한 기술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바로 '듣는 것'이 그 출발선인 것이다.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은 내담자의 머리에 손을 대고 요술을 부려 뇌의 꼬인 부분을 확 풀어주는 것이 아니다. 대개의 치료나 상담은 듣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내담자가 자기 이야기를 다 끄집어낼 수 있도록 가끔 유도하는 질문만 할 뿐, 거의 듣고 있다. 실제로도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에게 꽤 많은 비용의 돈을 내고도, '가서 뭔가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한 치료법이다. 뭔가 꺼내놓아야 할 것을 꺼내놓지 못해, 마음의 병이 걸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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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출신인 우리 교회 박모 목사님도 가끔 어머니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드린다고 한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어지는 며느리 험담과 자식들에게 섭섭한 이야기들을 묵묵히 들어드리다가, 대략 마무리되면 묻는다고 한다.

"어무이, 다 댔심까?"
"...댔다."

어머니에게는 그 과정이 험담을 위한 험담을 하는 기회가 아니라, 말을 하면서 풀고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인 것이다.

부부간에도 연인 간에도 들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내가 생각한 것은 이러이러한 것이야. 그리고...."
"근데 그건 말이야, 내가 볼 때는...."
"나 아직 말 안 끝났거든. 다 듣고 얘기해 줄래?"
"다 듣고 하면 까먹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내가 볼 때는...."
"일단 마저 들어 봐. 내가 무슨 말 할 줄 알고 말을 막어, 막기는. 왜 날 무시해...."
"그게 아니구, 말을 빨리빨리 해야지 나도 말할 거 아냐. 말만 많아 가지고...."

이러다 보면 본질은 잊어버리고 엉뚱한 것으로 또 다투게 된다. 자기도 미안했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을 못 넘기고, 중간에 들이대서 일을 그르치는 일이 많다.

"다 얘기 한 거야? 더 할 얘기는 없고?" 이렇게 물어가면서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한 번 들어 보라.

사람은 말이 타인에 의해 막히면 불쾌감부터 느끼고 감정이 실린다. 하지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주장과 함께 상대방의 이견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시간이 충분하다면 자기 억울함을 호소한 뒤에는 천천히 그 이면도 인정하게 마련이다. 그런 것을 중간에 잘라버리면 논쟁이 감정대립의 양상으로 와전되기 일쑤다.

듣는 데는 인내심이 필수다. 들으면서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나는 백 가지도 넘는 반론과,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나' 하는 미운 생각과, 그때그때 지적하고픈 유혹 등등을 다 물리쳐야 한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딴 생각이나 하고 있어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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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듣는 것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듣고 수용하는 것에도 한계는 필요하다. 무조건 수용하고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을 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선을 긋고 대처해야 한다.

솔로몬은 훌륭한 왕이었고, 지혜를 구하여 다른 모든 것까지 받은 위대한 왕이었지만, 잘못한 일도 많다. 하나님의 성전을 화려하게 지어 바친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기의 왕궁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더욱 오랫동안 한층 화려하게 지었던 것이다. 또 그는 많은 이방의 왕족 여자들과 결혼하여 그들의 나라와 우방을 이루었고, 그렇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타협하고 이웃 나라와 평화를 도모했다.

그의 듣는 기술은 후에 도가 지나쳐 자기가 결혼한 여자들의 요구에 따라 그녀들의 신인 이방 신들을 함께 섬겼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도 자기의 욕심대로 쓰면 어떤 최후를 맞는지 보여준 솔로몬은 나라까지 둘로 나뉘게 만들고, 본인도 젊은 나이에 죽는 용의 꼬리와 같은 마무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듣고 동의하는 기술에는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상담자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그 한 가지 생각으로만 빠져들 때 바른길을 제시해서 치료를 해 나가듯,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것을 양보한다든지 옳고 그름까지 포기해 가면서 듣고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잘 들으라.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해결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롬 10:17, 흠정역)"

감히 생각해 본다. 남녀 간의 믿음 역시 '들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www.woogy68.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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