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모든 교회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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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기도를 하다가, 문득 '나는 지금 어떤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개의 돌이킴이 다가온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럴대로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명제는 가슴 언저리를 애이게 한다.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다. 폭풍우처럼 몰아쳤던 성령의 구원하심으로 기독교인 1천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축복을 받은지 불과 몇십 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는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한 소돔 고모라성과 같이 되었다.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세워지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교회는 세워지기도 하고 문을 닫기도 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존립되는 교회는 이 땅에 없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사명을 다한 곳은 문을 닫는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도 문을 닫는데 사람들이 세운 교회는 오죽하랴.

예루살렘 교회도 문을 닫았고, 안디옥 교회도 문을 닫았다. 하나님이 영구하시니 교회 또한 영구하다는 말로, 하나님의 영원성을 훼손해서야 아니 될 말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교회의 영원함은 본질이 다르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교회는 오염되고 변질되기 때문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세운다.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님과 무관한 교회인지도 모른다.

기독교인들이 혼돈하는 것은, 교회를 생각하는 의식이다. 교회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S교회라든지, M교회와 같은 현존하고 있는 교회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들은 그 소임을 다하거나 목회자가 타락하면 무너지는 교회들이다. 이런 의미의 교회는 팔고 사고 할 수도 있고, 헐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를 두고 하나님의 교회가 영원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비록 같은 단어로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하나는 지엽적인 교회(local church)를 뜻하고, 다른 하나는 공회(catholic church)라는 의미의 교회인데, 우리들의 의식은 구분 없이 혼용되고 있다.

'가톨릭'이라는 말이 '천주교회'라는 특정 교회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천주교회에서 '가톨릭 교회'가 마치 천주교회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가톨릭교회' 는 본래, '하나의 유일한 교회'란 뜻을 지닌 '공회'를 일컫는 말이다. 모든 지엽적 교회들이 근본적으로 한 뿌리에 있는 하나의 교회라는 뜻이다.

교회들이 각 지역에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세워졌지만, 이들 교회를 하나로 묶은 거대한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를 '공회' 즉 '가톨릭 교회'라고 부른다.

지금 천주교회에서 쓰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그들과 무관한 말이다. 공회라는 뜻의 '가톨릭 교회'와 '천주교회'를 구별하기 위해, 천주교회에는 '로만가톨릭교회'라고 'Roman'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인다.

그런데 '로만 가톨릭교회'가 '공회'의 의미인 '가톨릭 교회'라는 말과 혼용되어 사용하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지금 이단이 되어버린 천주교는 '가톨릭교회'가 아니다. '로만 가톨릭' 교회가 맞다.

원래 뜻대로, '가톨릭교회'는 어느 누구의 점유물이 아니다. 무너지거나 사고 팔 수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신 모든 교회를 하나로 묶은, '공회'를 뜻한다. 사도신경을 외울 때에, 거룩한 공회(holy catholic church)를 뜻한다.

거룩한 공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교회를 하나로 묶는 교회의 본질적 전체를 뜻한다. S교회, M교회로 호칭하고 있는 수많은 교회 이름들은, 성격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며 많은 상대적으로 비교되고 있는 교회들이다. 이런 교회들은 지역 교회 혹은 개 교회라고 불리면 된다.

이런 교회들은 아무리 그 이름을 의미 있게 붙인다고 해도, 하나님이 영원하니까 교회도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는 교회들이 아니다. 언제든지 무너지고 팔리는 교회들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않는 교회들은 기독교회의 범주에 들어 올 수 없다.

많은 교회들이 파당을 짓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각기 제 목소리를 내고, 아볼로니, 게바니, 바울이니 하면서 갈라지기 마련이다(고전 1:12, 3:4). 사람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교단과 지역과 성도에 따라 교회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분열되어 있다. 지역교회들은 다양하고 복음은 조금씩 왜곡되고 목회자는 타락한다. 그래서 모든 교회는 때와 시기는 다르지만 무너진다.

우리들은 공교회와 지역 교회를 혼돈 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는 공교회가 아니다.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지역교회를 일컫는다. 지역 교회는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교회를 세울 때 닫을 것도 예견해야 하는 이유이다. 초대에 세워진 여러 교회 중에 우리들이 교훈을 삼고 돌아볼 모형이 있다면,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의 교회였고, 안디옥 교회는 안디옥 지역에 있는 이방인의 교회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친동생 야고보가 수장이었고 (갈 1:19), 야고보 사후에는(행 12:19) 베드로가 자리를 지켰으니, 정통성이 이처럼 확실한 교회는 없다.

야고보는 무릎이 낙타 무릎 같았다고 할 만큼 늘 엎드리어 기도하던 사람이었으며, 야고보서를 남길 정도로 모든 면에서 본을 되었던 사람이다. 베드로 역시 예루살렘 교회의 실질적 지도자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터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대로, 이름도 '바위'이고 굳건한 초석이었으니, 야고보와 베드로가 버티고 섰던 예루살렘 교회는 정통 중의 정통이었다.

이런 연유로 로만가톨릭 교회는 베드로로부터 교권을 이어받아 지금껏 직분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야말로 명실상부한 교회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덧없이 사라졌다.

안디옥 교회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안디옥 교회가 어떠한 길을 걷다가 사라졌는가는 오늘날 교회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목회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긴다.

스데반의 박해 이후 흩어진, 잡초 같은 무명의 유대인들이 목숨을 내걸고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세워진 교회가 안디옥 교회이다(행 11:19). 바나바의 지도로 굳건해진 안디옥 교회는 이름만 가지고 본다면 베드로나 야고보에 견줄 수 없는 교회였다. 이름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아무리 따져 봐도 정통성에 있어서 예루살렘 교회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 칭함을 받은 사실(행 11:26)은 오늘날의 교회들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교훈으로 다가온다.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듯 보이던 예루살렘 교회는 주후 70년 경 로마의 예루살렘 파괴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안디옥 교회는 고린도 교회와 로마 교회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3백여 년 이상 유지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 중심이었고, 바울의 서신을 통해 보면 유대인들은 할례를 아주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신 민족이었기 때문에, 선택받지 않은 이방인들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다는 의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사대부 정신 같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자신들만이 구별 받은 민족임을 자부할 표식이 필요했다. 그것이 할례이다. 할례도 안 받은 이방인들이 거룩한 예배에 참여하는 것조차 눈꼴시었을 그들의 마음은 차별의식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유대 전통에 어긋난 어떠한 것도 허용하지 않고 전통과 율법에 매달려 고집을 부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기쁨의 자유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율법의 복음을 만들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차별의 완전한 철폐였지만, 그들이 오염시킨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적 복음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의 구분이 무너진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들은, 복음을 유대 전통 안에서만 해석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할례도 있어야 하고, 안식일도 있어야 하고, 예루살렘도 있어야 했다. 눈에 보이는 행동과 전통에 매달리다보니,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곽이 무너질 때 예루살렘 교회도 결국 덧없이 무너진 것이다. 인간에 의해 가미되는 율법적, 전통적 사고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신 복음을 훼손시키고 있다.

성전이 무너진 또 다른 이유는, 예루살렘 교회는 행동하지 않는 교회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앉은뱅이 교회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찾아오는 성도들로 항상 북적댔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바울도 교회를 인정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을 두 번이나 찾아갔다.

물론 그 때는 예루살렘 교회가 온 교회의 중심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변화된 세상에 대처하지 못하는 교회, 복음이 왜곡시키는 교회, 복음 전파와 무관한 교회, 타락한 교회를 바라보고만 계시지 않는다. 예루살렘 교회의 몰락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와 반대로 안디옥 교회는 율법에 매이지 않았다. 그들은 늘 새로웠고 활기가 넘쳤다. 세상과 접촉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 자유주의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했지만, 자유로운 접촉만이 복음 전파를 위하여 유익하다는 실천적 신앙관을 굽히지 않았다.

안디옥 교인들은 결코 숨어있지 않았고, 자신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 세상에 당당하게 알리고자 했다.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세상에 보여줌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안디옥 교회는 지역적으로도 중심이 아니었다. 고린도 교회는 로마로 가는 큰 길목에 있었지만, 안디옥 교회는 작은 길목에 있었다. 그러나 모든 교회들은 자기 지역에서는 중심이었지만, 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정거장에 불과하다.

안디옥 교회는 후일 여러 차례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아 교회의 역사에서 사라져버리지만, 변방의 교회로서 복음이 로마로 향하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였다. 안디옥 교회는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다 마치고 주후 4세기 초에 문을 닫았다.

오늘날 교회들 역시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지역교회들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목적이 상실되었다면 굳이 피터지게 싸우면서, 탐심을 부리면서 지켜내야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교회를 사유재산처럼 여기는 풍조가 개탄스러움을 넘어 범죄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교회는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소유는 아무것도 없다. 교회당 건물은 물론 하나님의 헌금도 제 자식들의 것이 되었다. 억지와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정말 안 된다. 교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S교회도 아니고, M교회도 아니고, 예루살렘 교회도 아니고, 안디옥 교회도 아니다.

한강에 흐르는 물은 매일 다르지만 강의 이름은 여전히 한강이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이루신 영생의 복음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복음이다. 강물은 흐르기 때문에 늘 새로운 물이다. 범죄자가 강단에서 설쳐대고 있고, 이를 묵과하고 따르는 무리들은 쭉정이가 분명하다.

모든 교회는 무너진다. 베드로가 수장이라 해도 무너진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지 불과 30여 년 만에 문을 닫고 흔적조차 없어지지 않았는가.

앞선 자가 행한 행위를 이어가는 곳이 교회가 아니다. 타락한 목회자가 그대로 서 있는 곳이 교회가 아니다. 범법을 행한 목회자를 묵과하고 익숙한 환경과 습성을 유지해 나가는 곳이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상실할 때 무너지고, 전통이라는 미명을 내어버릴 때, 익숙함과 습관적인 행위를 벗어날 때, 정의를 위한 개혁을 실천할 때 세워진다.

교회는 인간이 혼합시킨 복음 의식이 진행되는 곳이 아니다. 저들끼리 익숙한 환경과 고장관념으로 합일된 마음을 표출하는 곳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영생의 길을 전파하는 곳이다. 죽음으로부터의 해방과 영생의 기쁨으로 솟아오르는 자유를 전파하는 곳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점진적이고 파격적인 개혁을 실천하시면서 영생의 길을 전파하셨다.

교회는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발휘하면서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다. 교회는 사람이 있는 한 무너지는 것을 전제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존립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뜻이 살아 있을 때만 교회이다.

하민국 목사(인천 서구 백석동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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