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소 총회들이 무너지고 있다. 권위와 세력 다툼으로 이단에게까지 침투의 빌미를 제공하다가 사분오열된 연합회에 이어, 군소 총회들마저 총무들의 그릇된 집착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 총회들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총무들의 오랜, 그릇된 관행의 결과이다.
총회 균열의 원흉은, 총무라는 직원 한 사람 때문이다. 총회마다 총회장의 업무를 보조하는 총무라는 직원을 두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큰 행사를 치르는 총회장을 보조하고 총회장의 사소한 심부름을 하는 직원이 총무이다. 총무는 언권(言權)이 없으며 대부분 총회장의 임기에 맞춰 업무를 보조하다 총회장의 퇴진과 함께 퇴임하는 것이 관례이고 총회 헌법 규정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총회의 유일한 유급 직원이다 보니, 물질에 대한 집착에 빠진 총무들이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총무들의 전횡은, 총무직을 유지하기 위한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는 불합리를 종용한다.
총무직을 종신직으로 여기며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반하장으로 자신의 총무직을 유지시켜 주는 사람을 차기 총회장으로 선출하는, 총무의 독재 체제가 군림하는 형국이 되었다.
총회장이 총무를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총무에게 잘 보여야 총회장이 되는, 아수라장이 된 실정이 군소 총회들의 자화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연합회를 오가며 총회장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총회의 총무들이 친근함으로 모여 무리를 이루며 세력화되어 있다.
비근한 예로 WS 총회는 다섯 총회로 분열되었다. 총회장 선출 때마다 전횡을 휘두른 총무의 불법에 항거하다 분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성결의 선택 결과이다. 총회가 다섯 총회로 분열되었지만, 그때나 이때나 여전히 총무는 특정인 한 사람이 직을 유지하고 있다.
총회는 제자를 양성하고, 미자립교회를 지원하며, 선교사를 파송하고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복음 전파에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임기 2년의 총무직을 종신직으로 여기는, 특정인 한 사람의 무지한 집착으로 많은 군소총회들이 선한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총무들의 전횡에 대하여 정의의 목소리를 내는 목회자들은 고사당하고, 실세로 등극한 총무의 세력에 빌붙어 총회장이 되려는 무리들의 명예욕은 총회를 어두운 막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특정인의 총무직 장기집권은 총회 분열의 악순환을 담보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총회장이 되려는 무리들의 욕망이 있는 한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인가 의구심이 든다.
고작 군소총회의 임원이 무슨 벼슬이라고, 언권도 없는 임기 2년의 총무 한 사람을 몰아내지 못하는 아첨꾼들이 되어 있으니,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건다고 목사가 되었는지 코웃음이 절로 난다.
지난달 연합회에 가입된 군소총회에서 웨민 총회와 합병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좋은 취지를 들고 양측 총회 회장들이 만남을 가졌다.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서로의 헌법을 교환하고 헌법을 수정한 총회 규칙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이메일로 받아본 상대 총회 규칙의 내용인즉, 보통 군소총회의 총무와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사무총장'이라 칭하고, 사무총장은 임원도 될 수 있으며, 실행위원도 될 수 있고, 임기는 4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사무총장은 임원회에서 정한 급여를 받아야 하는, 총회의 유일한 유급 직원이다.
규칙을 받아보고 욕설이라도 퍼붓고 싶은 울컥함을 겨우 참아내고 무언화답 중이다. 헌법을 보완한 것이 아니라, 헌법 위에 군림하는 규칙이다. 더 이상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
퇴임 후 자신의 노후 안락을 위해 가공할 재단을 만들어 부정축재를 도모한 역대 대통령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규모의 대소는 엄청난 차이가 나지만, 대통령이 노후 안락을 위해 편법을 저지른 것과 어려운 지교회 목사들의 회비로 급여를 받으며 장기적으로 총회 유급직을 유지하려는 사무총장의 발상은 전혀 다를 바 없다.
이제라도 군소총회들은 총무들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 총무의 꼭두각시놀음에 맞춰 추던 춤을 멈춰야 한다. 작은 정의도 실천하지 못하는 목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향한 양심에 따라 정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암 덩어리를 드러내야 생명을 지속할 수 있다. 그래서 수술을 한다. 의사가 암 덩어리를 도려내듯, 지게차 기사가 지게차로 물건을 드러내듯, 총무들의 부정을 냉큼 도려내야 한다.
하민국 목사(인천 서구 백석동 새로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