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23] 참을 수 없는 연애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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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업체에서 근무할 때는 당연히 토요일이 제일 바빴다. 헤어 메이크업 팀에서는 분주하게 신부를 위한 화장을 해 주고, 웨딩플래너들은 기다리는 신랑들에게 비디오도 틀어주고 간식을 제공하는 등 무전기로 서로 연락하며 한치의 실수도 없도록 애쓰는 날이다. 한참 결혼 시즌에는 하루 50쌍 정도까지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하고 예식장으로 출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신랑이 턱시도까지 입은 채 계단을 들락거리면서 안절부절하는 것이었다. 연신 전화를 하면서 초조해하던 이 젊은이에게서 결혼의 흥분이나 행복한 기대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계속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하며 속닥대던 이 신랑이 급기야 흥분해서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좀 있으면 식장으로 출발하거든!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 진짜 식 올려 버린다. 내가 못할 거 같애? 나 이제 책임 못 져!! 진짜 이렇게 결혼해 버리라는 거야???"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별일이 다 많다지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그는 어쩌다 결혼을 하게 됐는데 미처 정리를 다 하지 못하고 결혼식 날까지 떠밀려 오게 된 것 같았다. 대체 그 신랑의 신부는 누구였을까. 그녀는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처럼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상대에 대한 확신도 없고 열심히 살려는 의지도 없고 일생을 건 고민도 없이 결혼을 결정하고 망설이고 어물쩡거리다 예식을 올리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기도하고 선택하고 고민하고 심사숙고해서 결혼을 할 것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지 못한 자세로 결혼과 교제에 임하고 있는 것 같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우기거나 '나름대로' 신중하고 진지했다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요즘같이 높은 이혼률과 복잡한 부부 간의 문제들은 결국 그런 현상들의 증거 중 하나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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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심각한 것을 싫어한다. 아니 요즘 사람들 자체가 그렇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이렇게 변한 조급증의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큰 일을 치르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은 괴롭고 힘든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힘든 교제의 상황들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괴롭고 복잡한 것은 자꾸 피하고 정면돌파하지 않는다. 그냥 덮어두고 묻어두고 지나쳐 버린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이야기하고 또 결론을 낸 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 인간관계 아닌가.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덮어버리면 그 모든 피해는 다시 눈덩이가 되어 나를, 또 함께 살게 될 가정을 덮치는 것이다.
나는 연애하는 젊은이들에게 "제발 진지해지자"고 말하고 싶다. 간혹 독서를 많이 하고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이들은 친구를 만나도 아까운 시간만 세다 허탈하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진지한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내심을 길렀으면 좋겠다.
친구를 만나면 유행하는 패션과 맛있는 음식, 잘 나가는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근황까지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진지한 주제들에 대해서는 아주 깜깜한 사람들은 오늘부터 '100분 토론'이라도 좀 끝까지 보고,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지식을 쌓으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지한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생을 진지하게 풀어갈 수 있고 앞서 예를 든 신랑처럼 불행에 빠지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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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어떤 커플은 남자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가진 것은 없어도 헤쳐 나가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자기 연인에게도 그렇게 프러포즈를 했다. 두 사람은 잘 사귀는 것 같았는데, 결혼 말이 오가면서 그만 흐지부지 이별하고 말았다. 놀랍게도 여자 쪽에서 그의 미래와 그것을 보는 자세 등을 신뢰하지 못하고 거부한 결과였다.
주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믿음직한 사람을 왜 차 버리느냐, 혹시 당장의 부족한 조건을 보고 그런 것이 아니냐고 좋지 않은 눈초리를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남자에게는 정말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저 자기 방식대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혼자만의 밥상 같은 삶에 숟가락 하나 더 놓고 아내를 동참시키려 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번지르르한 공약이나 비전, 자신감 등도 주변의 과대평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들이 연애를 하는 그녀에게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였던 것이다. 결국 결혼은 무산됐고, 그녀는 몇 년 후 목회자와 안정적인 결혼을 하여 잘 살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그녀를 잠시 비난한 이들도 있었지만, 이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됐다. 그녀는 애초부터 똑똑한 여자였고 신중한 여자였으므로, 섣불리 사귀고 간단히 헤어져 버린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진지하고 신중한 접근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남자의 설득에 그럭저럭 살면 되겠거니 했거나,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 떠밀려서 결혼을 하고 말았을 것이고, 결국 후회했을 것이다.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된 교제, 가벼운 마음으로 던진 프러포즈가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가벼운 남편, 가벼운 아내, 가벼운 가정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것인지 겪어보고 알게 된 후에는 땅을 치며 후회해도 늦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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