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직접 비텐베르크성 문에 붙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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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지상강좌] ⑥

*본지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의 논문 '종교개혁의 신학적 원리와 성경의 권위'를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지상강좌]라는 제목으로 연재합니다.

▲김재성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김재성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95개 논제들과 면죄부

독일지역 전체에 루터의 주장들이 알려지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물며 루터가 쓴 이 글이 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나가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1517년 10월 31일 고해성사의 문제점과 면죄부 판매에 항거하는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벽교회 문에 제시하였다.

이 사건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다소 논의가 있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직접 본인이 내걸었다고 언급한 증거자료가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건의 사실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만 하는가?

첫째로는 루터가 직접 논제들을 게시판에 내 걸었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멜랑히톤이다. 그는 루터가 사망한 후 몇 달 뒤에, 루터의 저작물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모아서 2권으로 출판하였는데, 그 책 서문에서 루터가 성문에 내 걸었다고 밝혀 놓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멜랑히톤은 루터가 이런 일을 벌이던 현장에 없었다. 왜냐면 그가 비텐베르크 대학에 부름을 받고 교수로 가르치기 위해서 이사를 온 것은 1518년 8월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제기된 학설은 루터가 게시판에 내다 걸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사건의 역사성에 대한 의문에서 나온 것이다. 로마 가톨릭에 속한 독일 역사학자 어윈 이셀로는 루터가 95개 조항을 교회당에다가 걸어놓은 것이 아니라, 고위 성직자들에게 편지로만 보냈다고 주장하였다. 교회의 공적인 사건이 아니라 개인적인 항의와 시정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주장은 이런 논쟁들을 검토한 후, 루터의 비서 혹은 학교 직원이 게시판에 부착시켰다는 매우 사실적인 해결책이다. 그가 직접 게재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내다 걸었다고 하더라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 당시에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들은 토론 주제를 대학교회 게시판에 내걸고 토론에 초대했었다. 그런데 토론주제를 게시하는 일은 주로 실무적인 일을 담당했던 학교 교직원이 수행했다. 헤르만 셀더하위스는 루터 전기에서 이런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했던 교직원이 토론 주제를 문에다가 공고문으로 내 걸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증거로는 루터의 비서였던 게오르그 뢰러(1492-1557)가 1540년 루터의 신약성경 개정판에 남겨놓은 기록에 보면,  루터가 공식문서를 알리는 방식으로 성벽교회에 게시판에 내걸었다고 언급되어있다. 11월 1일은 만성절이자 공휴일이었으므로, 하루 전에 깊은 신학적 토론을 하기에는 적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멜랑히톤이 남긴 증언을 거부할만한 다른 내용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학설들이 제기되어져 있으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 논제들을 당시 중요한 직위에 있었던 상부 성직자들에게 루터가 보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비텐베르크를 관할하던 주교 히에로니무스 슐츠와 브란덴부르크 알브레흐트에게 95개조항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이나 책임있는 조치가 없었다. 알브레흐트는 면죄부 판매 사업을 신중하게 관리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루터는 면죄부라는 것인 일시적이요 한정적인 죄에 대해서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제공하는 안전장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비판하였다.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사건들은 라틴어 번역본이 아니라, 헬라어 원어 성경을 파헤쳐서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던 스콜라주의 성례주의에 맞서서, 온전한 성경의 의미를 제시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다. 루터는 1501년부터 1505년까지 에르푸르트 대학교에서 라틴어, 수사학, 철학을 터득했고, 차츰 수도원에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읽고 해석하는 성경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인문주의는 종교개혁자들에게 원어성경을 해독하게 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루터만이 아니라 멜랑히톤, 츠빙글리, 부써, 불링거, 칼빈, 베자 등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기독교 인문주의 교육을 받고 탁월한 성경원어 학자들로 성장하였다.

이들 종교개혁자들은 교육적으로 인문주의 학문을 대학에서 습득하였지만, 여러 학식의 방법들을 무조건 수용한 것은 아니고 선별적으로 활용하였다.

1520년, 루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불행하게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학적인 기초가 되었음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화채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들로 규정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저주받아야만 하고, 오만하며, 이교도 악당이 진실을 호도하는 글을 써서 가장 우수한 그리스도인들을 호도하고 어리석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전염병으로 만들어서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보내신 것이다. 하지만, 이 죽은 이교도가 최고 권위가 되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경을 훼방하고 억압하였다. 내가 이런 통탄할 사건들을 생각할 때에, 악한 마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를 도입하였다고 믿지 않을 수 없다."

5) "불가타" 라틴어 번역본의 오류

유럽 최고의 인문주의 학자는 에라스무스였는데, 그의 저술들은 각 대학에서 널리 읽혀지고 교재로서 연구되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에라스무스의 책에 대해서 극렬히 비난하는 문서들이 나왔다. 인문주의자들의 학문적인 발전에 근거하여 에라스무스가 1516년에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했다.

에라스무스가 터득한 인문주의 학식들은 이미 로렌조 발라가 세워놓은 것들이었다. 에라스무스는 1505년에, 로렌조 발라의 주석을 인용하고 활용해서, 라틴어 번역본의 오류를 지적하는 책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헬라어 본문을 중요시하게 하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헬라어 성경을 읽게 된 종교개혁자들은 인문주의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던 인재들이었다.

1516년에 출판된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을 읽은 루터는 다른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자들도 동조하는 바와 같이, 라틴어 번역성경이 오류가 많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사용하던 역본이 원본과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음이 분명히 드러났던 것이다.

교회가 사용하던 불가타 라틴어 역본에서는 본문에도 없는 성례제도를 삽입하여서 행위조항으로 고쳐놓았다. 회개라는 내적 변화보다는 고해성사라는 노력과 행위로 바꿔놓았다. 결국, 12세기에 피터 롬바르드가 「명제집」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 성례들(견진, 고해, 세례, 성만찬, 혼례, 신품, 종부)에 대해서 과연 성경적으로 규정된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만들었던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이런 일곱 가지 성례들(sacramentum)이 "신비"를 의미한다고 무조건 맹신하도록 정당화하였다. 결국 헬라어 성경을 읽으면서 인문주의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지식인들이 배출되어 나오면서 성례제도의 성경적 근거에 대해서 의심을 갖게 되었다.

올바른 성경번역과 해석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는 개신교회의 신학을 낳게 하였다. 중세시대에는 단어적 의미에다가 영적인 해석들을 삽입하는 것이 너무나 만연되어 있었다. 그러나 루터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문자적 해석과 정경적 해석에 집중했다.

라틴어 번역 성경, "불가타"의 오류를 파악한 루터가 결정적으로 깨우친 것을 근거로 하여 올바른 믿음의 삶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이 루터의 초기 종교개혁 사상에 담겨있는 주요 내용이다. 루터가 비텐베르크에서 1517년 10월 31일에 발표한 95개 논제를 살펴보면, 기독교 신앙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면죄부 판매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들이다. 특히 면죄부를 구입하여 교회에 기여한다는 의미로서 돈을 지불해하였는데, 이것은 죄인의 내면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행동이었다. 루터는 상습적으로 시해되는 면죄부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진정으로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는 행태를 비판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확신은 성경을 통해서 복음의 진정한 근원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었다.

루터가 제시한 95개조의 논제 중에서, 첫 번째 조항은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마 4:17)고 말씀하신 것에 따라서, 일생동안 회개하는 것이 기독교 신자의 삶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1조항에서 가장 먼저 루터가 지적한 것은 "회개"(penitentia)가 왜곡되었다고 지적하면서, 2조항에서는 라틴어로 된 "고해 성사"(penitentia sacramentali)를 사제들이 집례하여 죄의 자복과 사면을 주도록 하는 것으로 왜곡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즉, 로마 교회의 고해성사라는 성례제도로 정착돼 버린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하였다.

성례에 참석하여서 스스로 의를 얻으려 노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움이 주어진다는 것은 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의롭게 된다고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따르는 방식이다.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만 베푸시는 것이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적으로 값없이 내려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루터가 어떻게 하여 이처럼 성경 본문의 왜곡을 지적하게 되었을까 라는 사상적 배경에 대한 추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루터가 "고해성사"라고 번역된 부분이 잘못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 루터가 성경의 번역과 해석에서 바른 교훈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불가타" 라틴어 번역본의 문제점을 강력하게 비판한 로렌조 발라의 선행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터는 발라의 주석서들을 읽었고, 여러 곳에서 참고하였다.

에라스무스가 편집하여 출간한 헬라어 성경에서 "회개"라는 것은 심리적으로 뉘우치는 상태와 태도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해석성경은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마태복음 4장 17절에 사용된 "회개"라는 헬라어의 뜻을 라틴어로 왜곡된 번역을 하였음에 대해서 곧바로 로렌조 발라가 지적하였다. 그가 이런 잘못된 번역들을 비평적으로 분석하여 연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발라는 고린도 후서 7장 10절에 나오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라는 것을 연관된 구절로 사용하면서, 회개란 슬픔 마음으로 거행하는 고해성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발라는 참된 회개를 설명하면서, "애통"하고, "고백"하고, "만족"을 드리는 것으로 구성된 세 가지 과정과 단계로서의 고해성사를 지지하는 구설이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로렌조 발라의 헬라어 본문에 기초한 설명이 이처럼 당시 스콜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용들이 담겨있게 된 데에는 그의 신학적인 함축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로마서 12장 1절로부터 13장 7절까지 해설한 부분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 신학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고해성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창조적으로 협력한다는 개념을 거부하였다. 발라는 회개라는 것이 어떤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개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예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발라는 "고해성사"라는 단어를 "회개"라는 단어로 근본적으로 교체하지는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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