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33] 성급하게 짝을 찾아다니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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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분 중에 예쁜 두 딸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 두 딸 모두 성공한 직장인으로, 각각 아나운서와 작가로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큰딸은 오래 연애를 해서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20대 중반인 작은딸은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고 한다.
큰딸의 안정적인 연애에서 남자친구와 서로 아끼며 발전해가는 모습이 무척 흡족했던 엄마는 작은딸에게도 좋은 인연과의 연애를 권하며, "너는 왜 남자친구가 없냐?", "왜 안 사귀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딸이 진지하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엄마, 아직은 내가 더 일해서 좀 더 경험도 쌓고, 나를 완성할 시기인 것 같아. 그게 먼저지, 지금 다듬어지지도 않았는데 사람부터 만나려고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어."
이 말을 들은 엄마는 작은딸의 지혜가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정도 나이에 이런 성숙한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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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일단 누군가를 찾고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나 만나려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막연히 잘 보고 신중하게 임하면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자기에게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올라가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기도 하는데, 이보다는 비슷하거나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이 대화도 잘 통하고 접촉점이 훨씬 많을 수 있다. 때문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사귀기는 쉽지 않고, 자기보다 좀 못한 사람이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연결될 확률이 높다.
반드시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레벨업'한 뒤에 노는 물이 좋은 곳에서 배우자나 연인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내면과 상식과 수준이 괜찮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며, 그래야 아직은 큰 역할을 못해도 미래가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세상을 좀 알고 나면, 누구에게나 과거에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땐 왜 그랬는지 후회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잘못 만난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당시 수준에 자신도 부족하고 보는 눈이 없어 중요한 것들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경험과 연륜 등을 통해 업그레이드된 상태라서, 예전을 생각해 보니 지금의 생각과 괴리가 일어나는 것일 뿐,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거나 그냥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이성'을 얻기 위해 성형을 하고, 식스팩을 만들고, 화장을 하고, 개인기를 쌓고, 돈을 벌고, 졸업장을 따고,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진짜 괜찮은 사람들은 그들이 치중하는 요건들에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조건부터 신경 쓰는 이성들을 진지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가 신경 쓰는 쪽과 비슷한 부류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본인은 외모만 신경쓰면서 진지하고 속 깊은 사람이 자기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서점에서 살면 책 보는 사람과 인연이 닿고, 클럽에서 살면 춤추는 사람을 만난다. 자기는 클럽을 전전하면서 배우자는 춤도 잘 추고 외모도 멋지고 책도 읽어서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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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작은딸은 지혜로운 여자다. 그녀가 지혜롭다는 것은 좋은 남친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스스로를 가다듬는 자세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자기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미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그에게 축복이 되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미래의 연인을 위해 이 정도 생각할 수 있다면, 정말 지혜로운 20대가 아닐까? 그것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서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이며, 불필요한 소모적 연애와 값싼 선택으로 인한 불행을 막는 길임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어떻게 만나도 다툼과 어려움과 좌충우돌이 있는 것이 사랑이고 만남이다. 성숙하고 기본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은 그것을 헤쳐나가고 대처할 지혜와 상식이 있다. 그러나 일차원적인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가 많은 사람들은 늘 문제가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자의 문제·조건·여건·능력·태도·돈·시댁 혹은 처가..., 모두 문제가 있어서 지금 안 풀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해도, 자기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었다면 해결될 일도 많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자기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지금처럼 흘러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그런 시간이 지나갔다면 서로를 업그레이드 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아직 기회가 있는 젊은이나 싱글들은 그녀의 말을 잘 들어 둘 필요가 있겠다.
좋은 사람이 되자. 나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내게도 좋은 사람이다. 성급하게 사람을 찾아다닐 시간에 나를 가꾸는 것, 그것이 자기뿐 아니라 미래의 한 몸인 자신의 반쪽을 동시에 '레벨업'시키는 비밀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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